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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장도서

이상한 나라의 리씨

지은이
모니카 펠츠/김경연역
출판사
한겨레신문사
페이지수
167
대상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현대판이라 할 만한 구성과 내용을 가진 책이다. 리씨가 비행기에서 추락하여 특별한 암호를 통해 들어간 세계에서 갖가지 체험을 하게 되는데 리씨가 상상한 일들이 모두 현실세계에서 이루어진다. 이 상상 속의 세계에서 현대과학문명을 은근히 풍자하고 있다. 미디어 서평 우리에게 이름이 익숙한 19세기 영국의 루이스 캐럴이 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사실 어린이를 위한 동화라기보다는 당시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겨냥한 문명비판서다.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에서 겪는 '전도된' 가치와 현상들은 '인간'이라는 중심개념이 점점 희석되는 그 시대의 사회관계를 조롱하는 도구이다. 독일의 청소년문학가 모니카 펠츠의 <이상한 나라의 리씨>는 제목부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리게 한다. 사실 이 작품은 요즘 유행하는 대중문화 기법을 빌리자면 '앨리스'를 패러디한 것이다. 토끼를 쫓다가 토끼굴로 해서 이상한 나라에 들어가는 앨리스처럼 주인공 리씨도 비행기에서 우체부를 쫓다가 새로운 세상에 들어가 앨리스와 유사한 체험을 한다. 앨리스의 하얀 토끼가 자전거를 탄 우체부로 바뀐 것처럼, 체서 고양이는 외계 고양이로, 하트의 여왕은 확장욕에 미친 회사의 여회장으로 나온다. 도둑맞은 것은 케이크가 아니라 컴퓨터 칩이다. 컴퓨터 칩은 리씨의 몸을 커졌다 작아졌다 하게 만든다. 재판은 토크쇼로 진행되며, 다과회 모임은 '체험 식도락' 파티이다. 작가의 의도는 '앨리스'에서보다 더욱 직접적이다. 모든 것이 컴퓨터와 로봇으로 통제된 작품 무대, 토크쇼 형식의 재판, 합병과 인수에 미친 하트의 여왕, 식도락 파티 등은 주객이 전도된 현대기계문명, 매스컴의 오염,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기업문화, 낭비적인 소비문화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앨리스가 발아하고 있는 부르주아 자본주의 문화의 전도되는 가치에 좌충우돌한 것을 이어받아 리씨는 이제 그 전도된 가치의 결과가 빚어내는 더욱 기괴해진 현대문명 전체를 횡단한다. 작품은 재미있다. 사회에 조금씩 눈을 뜨는 청소년이라면 작품이 전하는 재미를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판타지 소설의 황당무계한 상상력이 아니라 우리 사회 주위에 펼쳐지는 현상과 관계들이 상상력의 소재이기 때문이다. 옮긴이는 작품이 '앨리스'처럼 난센스 전통을 이어받아 독일어식 난센스의 재미를 살리기 위해 무척 고민했다고 밝힌다. 독자들이 '앨리스'가 생각만큼 재미없다고 느끼는 것은 아마 곳곳에 숨은 난센스의 재미를 우리말로 옮기는 데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리씨'는 현대라는 무대에 힘입어 '앨리스'보다는 훨씬 현실감 있는 재미를 전한다. 원래 사회학자인 작가 펠츠는 자신의 전공에 걸맞게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눈을 바탕으로 한 판타지를 이용해 문학적인 형상화 작업을 해왔다. 98년 <진실>로 오스트리아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했고, 이 작품으로 99년 오스트리아 빈 청소년문학상을 받았다. <한겨레신문 00/10/14 정의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