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선택 > 권장도서 > 청소년

권장도서

고향

지은이
이기영
출판사
문학사상사
페이지수
596
대상
[우리 삶의 뿌리인 농업] 우리가 매일 먹는 밥상을 눈여겨 보자. 쌀을 비롯한 곡식, 김치의 원료가 되는 배추, 마늘, 파, 고추, 그밖의 나물류 등 농산물들이 많다. 특히 쌀은 우리가 하루라도 먹지 않으면 기운을 차릴 수 없는 밥을 만들어내지 않는가? 이렇게 밥상을 대하면서 우리는 농사를 짓는 분들의 땀과 수고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서 우리는 '대체 언제부터 인류는 농사를 지었을까' 궁금해 진다.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 유적을 통해 구석기시대에 이미 보리를 재배하였던 흔적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신석기시대인 기원전 5000~4000년경에는 밀·보리·조·아마 등의 작물이 재배되었으며, 중국에서는 기원전 2700년경인 신농시대(神農時代)에 이미 5곡이 재배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농사를 짓지 않는다고 해 보자. 우리는 어디에서 쌀을 구해다 밥을 지어 먹을 것인가? 비타민을 공급해 주는 과일은 또 어디서 구할 것인가? 김치는 또 어떻게 만들어 먹을 것인가? 먹을 것만의 문제가 아니다. 농사를 짓지 않는 땅들은 황폐해지고 지구의 환경은 생태 균형을 잃어가고 말 것이다. 농업은 그렇게 우리 삶의 뿌리가 된다. 그리고 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우리 삶을 받쳐주는 기둥과도 같다. 그분들의 땀과 수고 덕택에 사람들은 삶을 이어가는 힘을 얻는 것이다. 그러나 농민의 삶은 늘 고난에 찬 삶이었다. 지금까지도 농민들은 힘겹게 살아간다. 자기 땅을 갖고 농사를 지어도, 한숨이 덜어질 날이 별로 없다. 애써 지은 농산물은 헐값에 팔리기 일쑤요. 갑자기 내린 비는 땀의 결실을 휩쓸어가기도 한다. 자기 땅에서 농사를 지어도 힘겨운데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던 사람들은 어땠을까? 기계 문명이 첨단을 달리는 지금도 하늘에서 쏟아지는 폭우를 막을 길 없는데, 수십년 전 수백년 전의 농민들은 어땠을까? 빼앗긴 나라에서, 남의 땅에서, 자연 앞에서 무력했던 시절에 농사를 짓던 일제 시대 농민들의 삶은 과연 어땠을까? 우리의 물음에 생생한 대답을 던져 주는 소설이 있다. 이기영의 [고향]이다. 조선일보에 1933년 11월 15일부터 1934년 9월 21일까지 연재된 장편소설이다. 이광수의 [흙] 심훈의 [상록수]와 함께 또다른 농촌소설의 면모를 보여준 빼어난 작품이다. [가난과 노동 속에서 참삶을 일구는 사람들] 원터는 소작인들이 대부분을 이루는 가난한 농촌 마을이다. 이 마을 사람들은 뼈빠지게 일해도 그저 입에 풀칠이나 하며 산다. 양조장에서 버리는 술지게미를 맛나게 먹고 끝없는 농삿일에 시달린다. 이런 농민의 대표적인 가족이 농부 원칠네 가족이다. 원칠은 부인 박성녀를 비롯 인동, 인순, 인학, 인성의 네 자녀와 함께 열심히 농사를 짓지만 늘 가난에서 헤어나오질 못한다. 그의 딸 인순은 읍내 공장의 직공이 된다. 못배운 사람들이 모여사는 마을이지만 동경 유학까지 하고 돌아온 젊은이가 있었다. 김희준이 바로 그다. 그는 버젓한 관청에 취직하길 바라는 식구들의 소망과 달리 농사를 지으며 마을 청년회 활동에 열심이다. 마을 두레를 조직하여 풍물패도 만들고 공동 경작을 통해 수확량을 늘이기도 한다. 야학을 통해 농촌 계몽에 힘쓰는 일도 그의 몫이다. 희준은 부모가 정해준 아내와 함께 정겹지 못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기에 야학에 다니는 음전이나, 마름 안승학의 딸 갑숙이에게 은근한 사모의 정을 품기도 한다. 마름 안승학은 탐욕에 가득찬 인물이다. 갖은 술수로 마름의 자리를 얻어 내고, 재산 늘이는 데 비상한 재주를 발휘하여 이 원터에서 가장 부유하게 살아간다. 본부인이 있는데도 또 부인을 들이는 일을 여러 번 반복한 부도덕한 인물이기도 하다. 안승학의 딸 갑숙은 서울의 친어머니 집에서 학교를 다니는데, 자기 집에서 하숙하는 경호와 사귄다. 그러다가 경호와 얼떨결에 육체 관계를 맺고는 그 일로 신경쇠약까지 걸리게 된다. 고향 집에 돌아와서 김희준을 만나보고는 그를 사모하는 마음에 자신의 과거를 더욱 괴로워한다. 원칠의 아들 인동이는 씩씩하고 거침없는 농촌 젊은이다. 그는 바람기 있고 발랄한 동네 처녀 방개와 사귀지만 희준의 중매로 음전이와 혼인한다. 방개 역시 다른 사람과 결혼한다. 그 뒤로 두 사람은 서로에게 본능적으로 이끌리는 정열을 느끼지만 힘겹게 참아낸다. 한편 갑숙을 사모하는 경호는 자기 아버지가 친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동네 머슴 곽첨지의 아들이었다. 이 사실을 둘러싸고 안승학과 경호의 의붓아버지 권성칠, 갑숙 사이에는 묘한 갈등과 대립이 생기게 된다. 경호와 갑숙의 사이를 알게 된 안승학을 불같이 화를 내며 갑숙의 친어머니를 칼로 찔러 상처를 내는가 하면 권상철을 위협하여 돈을 울궈낼 계획을 세운다. 갑숙은 아버지를 원망하며 집을 나가 인순이 다니는 공장에 취직을 하게 된다. 그곳에서 갑숙은 집을 나와 새 생활을 하고 있는 경호를 다시 만난다. 경호는 갑숙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하소연하고, 갑숙은 마음 속으로 희준을 사모하지만 경호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한다. 갑숙이 공장에서 직공들의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며 노동 운동에 힘을 기울이는 동안, 희준은 마을 청년회와 두레 활동을 통해 농촌의 새 길을 닦는데 힘쓴다. 그러는 가운데 원터 사람들은 풍년을 맞아 잠시 시름을 잊어보기도 하고, 수해를 겪으며 농촌살이의 고단함을 지겹도록 맛보는 가운데 점차 의식이 깨어간다. 소작료를 감해 달라는 소작쟁의를 벌이며 마을 사람들과 안승학의 갈등은 깊어 간다. 희준은 갑숙의 도움을 받아, 마을 사람들과 생활비를 나눠쓰고, 마름 안승학을 위협하기도 하면서 소작 쟁의를 성공적으로 이끈다. 희준과 갑숙은 서로를 향한 사랑으로 갈등하지만 올바른 사랑의 길은 곧 동지적인 사랑의 길이라는 걸 깨닫는다 [사실적인 농촌 묘사] 머리 수건을 쓴 채 일을 하다가 아이 젖을 먹이는 아낙네, 붉게 그을린 얼굴에 주름을 가득 지닌 채 땀흘리는 농부, 구불구불 이어진 논두렁길, 휘영청 달이 손에 잡힐 듯한 밤에 풀섶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젊은 남녀, 땀흘려 일해도 추수 때면 한숨 짓는 농촌 점경들.... [고향]을 읽다 보면 마치 내가 농촌 마을에 들어가 그 마을 구석구석을 살펴보는 느낌이 든다. 그 만큼 [고향]은 생생하게 농촌의 삶을 그려낸 작품이다. 농촌의 겉모습만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것이 아니다. 가난한 농민의 삶, 그들이 겪는 크고 작은 기쁨과 슬픔, 마름을 사이에 둔 농민과 지주와의 갈등, 농민과 노동자의 연결, 농촌과 공장에서 제 역할을 하는 지식인의 모습 등 농촌을 이루는 삶의 부분들이 모두 모여 작품 전체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가난한 농민의 삶은 이 소설의 핵심이다. 이 소설의 중심을 이루는 농민 가족인 원칠네, 가장 원칠은 하루도 쉼없이 들에 나가 일을 한다. 부인 역시 밀보리를 베고 지심하고, 방아를 찧어야 하고, 빨래를 해야 하고, 날마다 품앗이를 하고 품을 팔고, 아이들을 키워야 한다. 아들 인동이도 마찬가지다. 딸은 인순이는 공장에 나가 돈을 번다. 그러나 이 식구들이 풍족하게 먹고살기엔 어림없다. 보릿고개라 불리는 춘궁기에 농민들은 술을 짜고 남은 찌꺼기를 사다가 먹는다. 여름 장마철에 물난리라도 나면 농민들은 힘써 지은 곡식들을 물에 쓸려 보낸다. 살던 집마저 무너지고 주서진다. 가을이면 그나마 수확한 곡식들도 소작료에 빚갚기에 훌훌 날아가 버린다. 가난은 또한 그 대(代)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식에게 또 그 자식에게로 이어져 간다. 이런 농촌의 삶이 이 소설에서는 빠짐없이 그려진다. 우리는 이 소설 속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 농촌의 삶을 본다. 그것은 피상적으로 그려져 있지 않다. 원칠, 김선달, 인동 등 개성이 뚜렷한 농민들과 연결된 농촌의 삶이다. 책 속의 한 구절 은 수확기의 허망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모를 키워서 벼를 영글게 하면, 그놈은 마치 천길 나무 위에 길들여서 길러낸 새끼새가 어미를 버리고 공중으로 후루루 날아가듯이 하룻밤 사이에 없어지고 말았다. 그러면 그들은 마치 어미새의 자웅이 새끼새를 부르며 지저귀듯이 허공을 쳐다보며 탄식하였다. 그리고 그 이듬해 봄이 돌아오면 그들은 다시 작년의 하던 일을 되풀이하지 않는가?(12김선달) [한 배를 탄 노동자와 농민] 농촌의 가난은 도시의 노동 문제와 또 그대로 연결된다. 가난한 농부의 딸 인순은 공장에 들어간다. 그 공장의 다른 여직공들 역시 농민의 딸이거나 도시 빈민의 딸들인 것이다. 이것은 식민지자본주의 속에서 도시 빈민이 되어가는 농촌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이 소설이 같은 30년대 농촌소설인 [흙]이나 [상록수]보다 뛰어난 점은 변화하는 농촌 사회의 일단을 제대로 바라보았으며 농민과 노동자의 문제를 연결된 것으로 파악했다는 점이다. 그것은 이기영이 역사,사회적 맥락에서 농촌을 보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공장에서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내던 인순이 쉬는 날 집에 들렀을 때 인순의 눈을 빌어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하루를 시달리고 나면 두 손이 홍당무처럼 익고 눈은 아물아물하고 귀에서는 전봇대 우는 소리가 나고 목에는 침이 마르고 등허리는 부러지는 것같이 아프다. 수족은 장작같이 뻣뻣해서 도무지 자유를 듣지 않았다. 손등은 마른 논 터지듯 터졌다. 이것은 참으로 노동지옥 아닌가! 농촌에는 이와 같은 노동이 없는 대신에 거기는 기아가 대신하고 있다. 노동과 기아! 그 어느 편을 낫다 할 것이냐" 아니 그들에게도 농민만 못지 않은 기아가 있고 농민에게도 그들만 못지않은 노동이 있다. 결국 두 가지는 그들에게 공통된 운명이 아닐까? (6.새로운 우정) 이렇게 농민과 노동자의 운명을 같은 것으로, 서로 연결된 것으로 보았기에 작품 후반부에서 노동자가 된 갑숙은 농민을 대변하는 희준을 돕고, 희준에게서 활동의 방향을 배우기도 한다. [갈등하는 인간 군상] 가난과 노동 속에 신음하는 농민과 노동자가 같은 배를 타고 있다면 이들의 항해를 방해하는 것은 잘못된 사회 제도와 그 밑에서 자기 욕심을 채우는 지주와 자본가일 것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마름 안승학이다. 그는 대지주는 아니지만 지주의 이익을 대변하며 농민들을 괴롭히고 제 욕심을 채우는 인물이다. 그는 이 소설에서 빚어지는 숱한 갈등마다 한쪽 고리에는 그가 있다. 그는 농민들 속에서 농민으로 살며 농촌의 새 삶을 위해 노력하는 지식 청년 희준과 갈등한다. 그것은 곧 원터 농민들과의 갈등이기도 하다. 희준이 두레를 만들어 농민의 결속을 다지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추구하려 하자 안승학은 학삼을 시켜 두레를 반대하게 한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별 성과 없이 끝나고 만다. 수해로 수확이 떨어지던 해, 안승학과 농민들은 소작료 문제로 큰 갈등을 겪는다.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진 농민들이 소작료를 감해 달라고 하지만 안승학은 지주인 민판서보다 더 나서서 농민들을 수탈하려 한다. 의식이 단련되고 하나로 뭉쳐진 농민들과 갑숙의 도움으로 그는 또 한번 손을 들고 만다. 그는 또 딸 갑숙과 갈등한다. 경호와의 애정 문제에서 부녀간의 갈등인 비롯되지만, 두 사람의 삶의 태도는 정반대이다. 이런 외적인 갈등이 작품 전체의 줄기를 이룬다면 청년회와 희준이 겪는 갈등, 농민들 사이의 갈등, 여러 처첩을 둔 안승학 집안의 갈등, 경호와 의부의 갈등, 안승학과 경호 의부 권상철의 갈등도 작품의 내용을 풍성하게 하며 생각의 실마리들을 던져준다. 이런 외면적인 갈등 말고도 여러 인물들의 내면에서 여러 가지 갈등 상황이 우글거린다. 희준이 농민들에게 느끼는 절망과 희망, 여러 인물들이 겪는 사랑 문제도 작품의 내면적인 갈등이다. 삶이란 그렇게 숱한 얽힘과 풀림 속에서 저마다의 길을 가는 것인가보다. [사랑도 사회를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농촌이라고 사랑이 없겠는가? 사람의 삶에서 사랑은 핵심은 아니나 중요한 부분이라는 어느 작가의 말이 생각난다. 이 소설에서도 남녀간의 사랑이 작품의 핵심은 아니나 비중 있게 다루어지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 작품 속의 사랑은 불행하게도 미래가 있는 아름다운 사랑, 달콤한 사랑은 아니다. 아내가 있는 희준은 갑숙을 사랑한다. 인동과 방개는 서로 깊게 사귀지만 각자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고, 결혼 후에도 서로 못잊어 한다. 경호는 갑숙을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성관계를 가진 적도 있지만 갑숙의 마음 깊은 곳에는 희준이 있다. 그들의 어긋난 사랑은 안타까울 만큼 뜨겁다. 특히 방개와 인동의 사랑은 본능적인 감정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다. 각자 자기 배우자가 자기에게 맞지 않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서로를 그리워한다. 자칫하면 이 작품 속의 인물은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불륜의 주인공들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랑의 곡예를 작가는 아슬아슬하게 풀어간다. 대부분 사람들이 이겨낼 수 없는 열정을 그들은 끝내 참아내고야 만다. 사랑이란 신념과 연결된 것이며 사회적인 것이라는 작가의 사상이 그들에게 이성과 인내를 부여했기 때문일 것이다. 갑숙은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어 농촌 머슴인 친아버지를 찾게 된 경호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하며 이렇게 말한다. "아니지요. 조금도.... 당신은 아까 내 한몸을 위해서 사는 것은 하잘 것 없는 고통이라고 하시지 않았나요? 그럼 당신 아버지를 위해서 살아 주서요! 당신 아버지와 같은 모든 농민과 노동자를 위해서.... 참으로 로빈슨 크로소와 같은 열정으로 미개한 인간을 개척해 주서요.... 그래도 당신은 외롭다 하시겠습니까? 그때는 당신도 외롭지도 않고 또한 그것을 행복으로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 당신이 만일 그렇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굳게 약속해 주신다면 나도 당신에게 제일 가까운 동무가 되고 싶어요...." 역시 갑숙을 향한 사랑으로 고민하던 희준도 남녀간의 애정은 개인적인 것이면서 사회적인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육체적 결함을 초월한 동지적 애정이야말로 영원한 것이며 공동체의 화합을 깨뜨리는 그릇된 사랑은 이겨내야 한다는 것이다. [한평생 농촌소설을 쓰다간 민촌] 민촌 (民村) 이기영은 1895년 5월 29일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다. 서당의 수업료를 내기도 힘든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사립 영진학교에 다니던 그는 신소설을 읽으며 나라의 독립을 위해 활동하는 주인공처럼 될 꿈을 꾸기도 했다고 한다. 영진학교를 졸업한 그는 농사를 짓다가 농촌, 광산, 제방공사장을 떠돌기도 하고, 논산 영화여학교 교원을 거쳐, 은행에 근무하기도 했다. 1922년에는 일본 도쿄로 건너가 세이소쿠[正則]영어학교에서 공부하다가 관동대지진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했다. 그가 사회주의 사상을 알게 되고 러시아 문학을 즐겨 일기 시작한 것이 일본 유학 때라고 한다. 1924년 [개벽]지에 <오빠의 비밀편지>가 당선되면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1925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에 가담한 이후, 줄곧 농민과 노동자, 가난한 삶에 관심을 가진 작품 세계를 유지했다. 31년과 34년의 카프 검거 사건 당시 구속되어 감옥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들은 가난한 농촌의 현실을 사회의 모순과 연결시켜 총체적으로 그렸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의 작품 <고향>은 농촌에 대한 탁월한 인식과 사회의식이 결합하여 이뤄낸 '경향소설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평가받는 대작이다. 1938년에는 친일 지주와 자본가의 타락상과 소작 농민들의 참상을 그린 <신개지>를 발표했고, 1940년에는 충남의 한 양반 가정을 중심으로 변화는 사회상을 그려낸 <봄>등을 발표했다. 40년대 그 역시 창씨 개명의 압력을 받고, 다른 작가들처럼 친일 작품을 쓸 것을 강요받았으나 끝내 버티고 강원도로 이주하여 농사를 짓다가 해방을 맞았다. 해방 이후에는 카프의 결성에 주도적 역할을 하였고, 일찍이 월북하여 북조선 문학예술총동맹을 이끌면서 북한문예계의 중심인물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이후 <땅> <두만강> <조국> 등 여러 편의 장 편소설을 발표한 뒤 1984년 8월 9일 세상을 떠났다. 해방과 분단 뒤 남한에서 그의 작품은 사상적인 이유로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하다가 1989년에야 전집이 발간되었다. 평생 농촌을 다룬 농촌소설을 창작할 만큼 농촌에 창작을 두었던 이기영이 지금 아직 살아 농촌을 형상화한다면 어떤 작품을 쓸 것인가? 지금 우리의 농촌은 그가 <고향>을 쓸 때의 농촌처럼 기아에 시달리지는 않는다. 소작료에 시달리며 소작쟁의를 하지는 않는다. 그때처럼 식민지도 아니다. 그러나 농민의 한숨은 아직 덜어지지 않았다. 힘겹게 지은 농작물이 제값을 받지 못해 분노하는 농민들이 얼마나 많은가. 배추값이 턱없이 떨어질 때 자기가 지은 배추밭을 갈아엎으며 눈물 흘린 농민들도 있었다. 소값이 어처구니없게 떨어지고 사료값은 턱없이 올라, 자기 혈육같은 송아지를 길가에 갖다 버리며 억울함을 호소한 농민도 있었다. 아직도 수해가 나면 수만평 논밭이 물에 잠기는 일이 반복된다. 수많은 농가가 부채(빚)를 지고 갚을 길이 막막하다는 얘기가 들린다. 농촌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농촌을 떠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가? 농촌의 학교는 조그만 분교가 되었다가 끝내 폐교되기도 한다. 우리 삶의 근원인 농업을 존중하고 '농자는 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다-농사짓는 사람이 이 세상의 큰 바탕이다'는 말의 참뜻을 되새겨야 할 때다. 땅은 여전히 우리 삶의 근원이며 농촌은 영원한 우리의 고향인 것이다. <국어교사 강혜원,계득성 선생님 홈페이지 http://soback.kornet.net/~norae>
다음글
인간 문제
이전글
천변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