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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장도서

지은이
오정희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페이지수
154
대상
가정을 돌보지 않는 아빠와 집을 나간 엄마 때문에 친척집을 전전하는 우미와 우일은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결국 우일은 죽고 우미는 혼자 남겨진다. 우미는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없지만 어떤 구렁텅이에 던져져도 결코 삶을 포기하지 않을 질긴 힘을 가진 아이가 된다. 미디어 서평 세상의 밝음과 어둠, 그런 것들에 아직 길들여지지 않은 12살 소녀를 화자로 등장시켜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어린 남매의 짙은 상실감과 방황을 정갈한 언어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68년 「완구점 여인」으로 문단에 나온 오씨는 서정적인 문체와 구성적 완결성을 바탕으로 여성특유의 내면의식을 소설화한 작가.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대부분 지향할 세계, 혹은 삶의 의지를 상실한 상황에 직면해있다. 현실에서 거부당한 소설 속의 여성 주인공은 허무의 지평을 열어 보이기도 하고, 어둠과 같은 현실에서 초조해하거나 분노하기도 하며, 아주 냉담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오씨의 소설세계를 크게 보아 존재의 이면을 투시하는 것과 여성적 삶의 정체성을 문제삼는 것으로 나눌 경우 이번에 나온 <새>는 두 가지 흐름에서 다소 벗어난, 삶과 화해하지 못하는 한 소녀의 황폐한 내면과 존재의 어두운 심연을 들여다 보게 하는 작품이다. 아버지의 구타에 못이겨 어머니가 집을 나가자 `나`와 우일이는 친척집을 전전한다. `중풍을 맞으면 피도 뼈도 혀도 차갑고 딱딱하게 죽어버린다`고 믿는 외할머니, `불면증에 시달리며 미치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외숙모, `일수로 받은 비린내 나고 기름기 묻은 돈을 펴서 장롱 깊숙이 넣어두곤 하던` 큰어머니에게 `나`와 우일은 귀찮고 성가신 존재다. 몇 달에 한번씩 독한 소주냄새를 풍기며 옷가지를 사들고 찾고 오던 아버지는 `남의 바지입고 똥싼다더니 내가 왜 남의 새끼까지 맡아 골병들어야 하니`라는 말을 수없이 되뇌던 큰 어머니 집에서 `나`와 우일을 데리고 나온다. 아버지가 공사판에서 일한 돈으로 마련한 남루하기 짝이 없는 새집에 온 것은 `나`와 우일 뿐이 아니다. 아버지는 눈썹이 까맣고 입술은 빨간 젊은 여자를 데려와 `나`와 우일에게 `엄마`라고 부를 것을 강요한다. 매일 화투로 재수 점을 치며 공사판으로 일을 하러 간 아버지를 기다리던 그 여자는 도망가고 또다시 `나`와 우일만이 `새장 같은` 집에 남게 된다. 나쁜 친구들에 휩쓸려 눈썹을 밀고 팔뚝에 문신을 새기던 우일은 결국 싸늘하게 죽어간다. 작가가 이 작품에서 그려내고자 하는 것은 부모로부터, 친척으로부터,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한 소녀의 따뜻한 인간 세상에 대한 그리움이다. 소녀는 낮잠에서 깨어난 사람이 손아귀에 힘이 빠져서 아무 것도 거머쥘 수 없듯이 온전히 삶을 부여잡지 못한다. 소녀는 그러나 그 삶에 대해 단 한마디의 원망도 하지 않는다. 절망감과 막막함을 뚫고 소녀는 갈망하고 소망한다. 그리움과 외로움만을 느끼게 하는 새장을 벗어나 세상을 훨훨 나는 새가 되길…. 작가는 `분절된 가족관계가 어린 아이들에게 남겨주는 깊은 상처를, 소년소녀 가장들의 고통스런 삶의 풍경을 속속들이 그려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가족으로부터, 세상으로부터 사랑받고 싶지만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이 땅에는 너무도 많은 것 같다`는 말을 덧붙였다. <경향신문 96/6/25 박구재 기자> 그가 등단 30년 가깝도록, 동화와 콩트, 산문집을 빼고는, 불과 4권의 작품집을 낸 과작의 작가라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이번 단행본이 비록 2백자 원고지 4백 50장 가량의 소품임을 고려에 넣는다 해도, 이토록 바투 2권의 단행본을 연이어 내는 것은 이례적이다. 아직 정식 장편을 내지 않은 그의 소설 쓰기에 어떤 변화가 오는 조짐일까? 그 변화가 어떤 것이건 간에, <새>에 나타난 작가의 작품세계는 여일하다. 한국소설에서 그 어떤 선례도 이렇다 할 경쟁자도 없이 오로지 그만의 특장이라 할, 존재의 불안한 순간을 포착하고 묘사하는 면모가 그러하다. `사진첩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오랜 시간 천천히 삭아가는 종이의 먼지가 갈피갈피 피어올라 입안을 가득 채운 비릿하고 찝찔한 맛과 함께 아득하게 뒤섞였다. 어렴풋한 빛 속에 엎드리거나 앉아 있는 우리들의 형체가 조금씩 허물어지고 부서지고 몽롱하게 풀렸다. 다락을 채우고 있던, 네모나고 둥그런 것들, 딱딱하고 물렁거리던 것들도 모두 사라졌다.` 오정희씨의 소설들은 소멸의 운명에 처한 존재의 허약한 본질을 아름답게 까발린다. 씩씩하고 굳건해 보이는 모든 것들은 실은 얼마나 나약하고 안쓰러운 존재들인가. 위풍 늠름한 성채에서 바람에 쓸리는 모래더미를 예감하고, 살 떨리는 젊음의 미모에서 주름과 검버섯을 느끼는 것은 생의 감추어진 기미를 보아내는 작가의 능력일 터이다. <새>에서 작가는 열 두살 소녀를 화자로 내세운다. 유년의 화자란 일찍이 「중국인 거리」와 「유년의 뜰」등의 가작에서 그 효과를 검증 받은 그의 득의의 방법론이기도 하다. 유년의 화자를 통해 생의 불안하고 불가해한 본질을 드러내는 그의 소설들은 존재론적 탐구를 겨냥하는 성장소설이라 할 수 있다. <새> 역시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데, 여기서 성장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화자인 박우미다. 막노동자인 아버지의 폭행을 못 견뎌 어머니가 집을 나간 뒤 남동생 우일과 함께 친척집을 전전하던 나날, 아버지가 데려온 술집 여자와 달동네의 단칸방을 얻어 꾸리는 생활, 그 과정에서 엿본 이웃사람들의 슬픈 삶, 술집 여자마저 집을 나가고 그 여자를 좇느라 아버지도 돌아오지 않는 가운데서 맞이한 동생의 죽음 등의 경험이 우미를 성장시키는 것이다. 성장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그의 삶은 가까스로 아물어 가는 피딱지 위에 또 다른 자상이 더해지는 상처의 연속이다. 게다가 주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상처투성이인 삶은 그로 하여금 생을 다만 비극과 고통 뿐으로 인식하게 만들기에 족하다. 우미는 삶을 비극으로 인식하는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그의 어조에서 그것을 짐작하기는 어렵다. 자신과 이웃의 상처를 관찰, 보고하는 그의 어조는 흔들림 없이 담담하다. 아니 차라리 천진난만하다. 어린애다운 천진함이라는 형식과, 그 형식에 담긴 현실의 불구성이라는 내용 사이의 극단적 대비가 소설 전체에 긴장을 불어넣는다. 그렇다면 우미를 비롯한 <새>의 인물들에게 희망은 없는 것인가? 사고로 척추를 다쳐 종일 누워지내야 하는 연숙 아줌마의 말은 삶과 죽음이, 생성과 소멸이, 상처와 치유가, 절망과 희망이 윤회 전생한다는 사실을 희망의 근거로 제시한다. `(연숙 아줌마는) 밤새 고이고 흐르던 세상의 물기가 해가 떠오르면 안개가 되고 구름이 되고 비가 되어 다시 내려서 땅속깊이 뿌리 적시는 맑은 물로 흐르고 강이 되고 바다가 된다고, 강물이, 바닷물이 나뭇잎의 향기로 뿜어지고 어느 날의 기쁨과 한숨과 눈물이 먼 훗날의 구름이 되는 거라고 말했다.` <한겨레신문 96/07/03 최재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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