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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땐 이런 책

* 잠 못 이루는 어느 날 - 명태


명태

감푸른 바다 바닷밑에서
줄지어 떼지어 찬물을 호흡하고
길이나 대구리가 클 대로 컸을 때

내 사랑하는 짝들과 노상
꼬리치고 춤추며 밀려다니다가

어떤 어진 어부의 그물에 걸리어
살기 좋다던 원산(元山)구경이나 한 후

이집트의 왕(王)처럼 미이라가 됐을 때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늦게 시를 쓰다가 소주를 마실 때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고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쨔악쨕 찢어지어
내 몸은 없어질지라도
내 이름만은 남아 있으리라.
‘명태’라고 이 세상에 남아 있으리라.





* 출처: 『화성인(火星人)』,장왕사, 1955

* 양명문(1913~1985): 평양 출생. 시집에는 『화성인』, 『송가』등.

* 도움말
캄차카 연안에서 놀다가 동해로 왔다. 어느 날 마음씨 착한 어부의 그물에 이 몸은 걸렸다. 나와 같이 놀던 친구들과 함께 어부의 식구가 되었다. 평생 소원이었던 아름다운 원산 구경을 오늘에야 하는 기쁨도 잠시 우리는 차가운 북풍을 맞으며 빨래처럼 산간 벽지에서 온몸을 떨어야 했다. 그러기를 수십 번 우리 모두는 피라미드 속의 이집트왕처럼 미이라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외롭거나 서러워하지 않아도 되었다. 더러는 연탄불 위에서 지독한 가스 냄새를 맞으며 괴로워하기도 했으나 다르게는 가난하고 외로운 시인과 친구가 되어 그의 고민과 쓰라림과 행복이 되기도 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를 생각하고 자부심을 느꼈다. 나는 비로소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까지 버리고 죽어서 도(道)를 발견하였다.

* 관련 내용
나는 지난해 여름까지 난초(蘭草) 두 분(盆)을 정성스레, 정말 정성을 다해 길렀었다. 3년 전 거처를 지금의 다래헌(茶來軒)으로 옮겨왔을 때 어떤 스님이 우리 방으로 보내준 것이다. 혼자 사는 거처라 살아 있는 생물이라고는 나하고 그애들뿐이었다. 그애들을 위해 관계 서적을 구해다 읽었고, 그애들의 건강을 위해 하이포넥슨가 하는 비료를 바다 건너가는 친지들에게 부탁하여 구해 오기도 했었다. 여름철이면 서늘한 그늘을 찾아 자리를 옮겨 주어야 했고, 겨울에는 필요 이상으로 실내 온도를 높이곤 했다. 이런 정성을 일찍이 부모에게 바쳤더라면 아마 효자 소리를 듣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렇듯 애지중지 가꾼 보람으로 이른봄이면 은은한 향기와 함께 연두빛 꽃을 피워 나를 설레게 했고, 잎은 초승달처럼 항시 청청했었다. 우리 다래헌을 찾아온 사람마다 싱싱한 난(蘭)을 보고 한결 같이 좋아라 했다.


지난해 여름 장마가 갠 어느 날 봉선사로 운허 노사(耘虛老師)를 뵈러 간 일이 있었다. 한낮이 되자 장마에 갇혔던 햇볕이 눈부시게 쏟아져내리고 앞 개울물 소리에 어울려 숲속에서는 매미들이 있는 대로 목청을 돋구었다. 아차! 이때에야 문득 생각이 난 것이다. 난초를 뜰에 내놓은 채 온 것이다. 모처럼 보인 찬란한 햇볕이 돌연 원망스러워졌다. 뜨거운 햇볕에 늘어져 있을 난초잎이 눈에 아른거려 더 지체할 수가 없었다. 허둥지둥 그 길로 돌아왔다. 아니나 다를까, 잎은 축 늘어져 있었다. 안타까워 안타까워하며 샘물을 길어다 축여 주고 했더니 겨우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어딘지 생생한 기운이 빠져 버린 것 같았다.


나는 이때 온몸으로 그리고 마음 속으로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집착(執着)이 괴로움인 것을. 그렇다, 나는 난초에게 너무 집착해 버린 것이다. 이 집착에서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했다. 난을 가꾸면서는 산철(僧家의 遊行期)에도 나그네길을 떠나지 못한 채 꼼짝 못하고 말았다. 밖에 볼 일이 있어 잠시 방을 비울 때면 환기가 되도록 들창문을 조금 열어 놓아야 했고, 분(盆)을 내놓은 채 나가다가 되미쳐 생각하고는 뒤돌아와 들여놓고 나간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말 지독한 집착이었다.


며칠 후, 난초처럼 말이 없는 친구가 놀러왔기에 선뜻 그의 품에 분을 안겨 주었다. 비로소 나는 얽매임에서 벗어난 것이다. 날 듯 홀가분한 해방감. 3년 가까이 함께 지낸 ‘유정(有情)’을 떠나 보냈는데도 서운하고 허전함보다 홀가분한 마음이 앞섰다. 이때부터 나는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난을 통해 무소유(無所有)의 의미 같은 걸 터득하게 됐다고나 할까.
인간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소유사(所有史)처럼 느껴진다. 보다 많은 자기네 몫을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있는 것 같다. 소유욕(所有慾)에는 한정도 없고 휴일도 없다. 그저 하나라도 더 많이 갖고자 하는 일념으로 출렁거리고 있는 것이다. 물건만으로는 성에 차질 않아 사람까지 소유하려 든다. 그 사람이 제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는 끔찍한 비극도 불사(不辭)하면서, 제정신도 갖지 못한 처지에 남을 가지려 하는 것이다.
(법정, 『무소유』, 범우사)

* 관련 어록 및 어휘
아무리 천추만세에 이름이 남을지라도 죽고 나면 적막하다.《두보》


유명인이란 무엇일까. 이름이 필요해지지 않은 사람들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이름은 그 개인에게 고유한 의미를 갖고 있다.《A.카뮈》


너무 일찍 이름을 떨치면 부담이 크다.《볼테르》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기고 범은 죽으면 가죽을 남긴다.《한국속담》


흔동일세(掀動一世) : 명성이 세상에 널리 알려짐

* 생각 거리
1. 자신을 희생한 뒤 크나큰 충만감을 얻은 적이 있는가?
2. 작은 것을 희생하고 큰 것을 얻는 경우를 주위에서 찾아보자.
3. 내가 가진 것을 버리고 새로이 가질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