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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땐 이런 책

* 불행한 민족현실 - 오줌싸개 지도


오줌싸개 지도

빨래줄에 걸어 논
요에다 그린 지도
지난밤에 내동생
오줌싸 그린 지도

꿈에 가본 엄마 계신
별나라 지돈가?
돈벌러간 아빠계신
만주땅 지돈가?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정음사, 1948

* 윤동주(1917~1945): 만주 용정 출생,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도움말
동시는 순진무구한 아이의 마음을 드러내 보여준다. 그런데 식민지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순진한 아이의 마음에도 드리워져 있음을 이 시는 보여주고 있다. 시적 자아의 유년시절은 더 이상 아름다운 동화의 세계에 머물러 있지 않다. 죽음과 가난과 궁핍이 있는 우울한 시대 현실이 유년의 공간에 스며들어 있다. 순진한 어린아이의 눈으로 바라보는 ‘꿈에 가본 엄마 계신 / 별나라’, ‘돈 벌러 간 아빠 계신 / 만주땅’이라는 우울한 현실은 순수한 동심의 세계와 대비되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화해할 수 없는 현실에 차츰 눈을 떠가는 것. 이것도 세상을 배워가는 중요한 과정 중의 하나가 아닌가.

* 관련 내용
지난해 여름, 규모가 작은 속셈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의 일이다. 고만고만한 아이들 가운데 네 살배기 여자 아이 둘이 가장 어린 학원생이었는데 그 두 아이가 나는 유난히 신경 쓰였다. 다행이 둘 중 한 애는 성격이 꽤나 명랑하고 붙임성도 있어 나를 잘 따랐지만, 한 녀석은 수줍음이 많고 말이 없는 데다 가끔 구석에 숨어 눈물을 흘리곤 하는 내성적인 아이였다. 난 자연스레 “선생님, 선생님”하고 따르는 녀석에게 더 관심이 쏠려 예뻐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아이들의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삼복 더위에 장마까지 합세해 후덥지근한 날씨가 연일 계속되었고, 아이들과 씨름하는 나는 두 배로 극심한 더위를 느껴야 했다.


그날도 괴롭기만 한 더위를 억지로 참아 가며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이것저것 일러주고, 채점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조금 전까지도 구석에서 찔끔찔끔 눈물을 흘리고 있던 그 녀석이 어느 틈엔가 내 옆에 떡하니 앉아 있었다. 나는 그냥 무심히 지나쳤는데, 잠시 뒤 갑자기 오른쪽 팔뚝의 느낌이 이상했다. 옆을 보니 그 녀석이 자신의 검지 손가락에 침을 묻혀 두 번 세 번 내 팔뚝을 문지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나는 짜증이 나 벌컥 화를 내고 말았다.
“아니, 얘가 뭐 하는 거야?”
그러자 아이는 움찔 놀라며 얼굴이 빨개진 채 말없이 손가락으로 내 팔뚝을 가리켰다. 아이가 가리키는 곳을 자세히 살펴보니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볼펜 자국이 그어져 있었다. 녀석은 내 팔뚝에 그어진 볼펜 자국을 지워 주려 했던 것이다. 순간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 그 동안 그 아이에게 무관심하던 내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김은선, ⌈아이의 마음⌋ ; 『좋은생각』, 1998. 7)

* 관련 어록 및 어휘
모든 순수한 것은 순간 속에 있다. 이것을 지속하고 응결하려는 것이 진실로 산다는 것이다. 《전혜린/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일집중(精一執中) : 아주 순수하고 상세하여 치우침이 없이 마땅하고 떳떳한 도리를 잡음.


순진한 성격은 심원한 사색의 자연 발생적인 결과이다. 《W.해즐릿》


그대가 순진하고 맑고 결백한 마음을 간직했다면 열 개의 진주 목걸이보다도 더 그대 행복을 위한 빛이 될 것이다. 《미상》

* 생각 거리
1. 세상이 순수하지 못하다고 느낄 때는 주로 언제인가.
2. 살아가면서 살아가는 삶의 공간과 현실을 되새겨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