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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교사 글쓰기지도

제목 반성하는 일기


매사를 후회 없이 정확하게 살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스스로를 진단하지 않는 무책임한 삶은 더 황폐화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일기를 통해 하루 일을 반성하는 습관을 길러주려 한다. 그런데 일기를 통해 반성하도록 하는 일이 왜 일기지도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것일까? 좀 오래된 일이기는 하지만 6학년 친구들과 '일기 쓰기'란 주제로 토론을 한 적이 있다. 토론에 참여한 한 학생은 1주일에 두 번이상은 자신을 반성하는 글을 쓰도록 가르치는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자신을 반성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려는 학교 측의 지도방법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학생은 5학년 때부터 그렇게 쓴 일기를 나중에 읽어봤더니, 자신이 꼭 쓸모없고 형편없는 사람처럼 생각되더라고 했다. 일주일에 두 번 반성하는 글을 썼음에도 일기장이 반성글 투성이가 되어 자기가 그렇게도 많은 잘못을 하고 있는 줄을 몰랐었다는 것이다. 학생에게 그런 일기를 쓴 결과 자신이 변화했다고 생각하는지를 묻었더니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보다 학생은 더 의미 있는 말을 했다. 일년 동안 그렇게 많이 반성하는 글을 썼지만 실제 꼭 반성해야 할 만큼 잘못한 일은 일기장에 적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썼지만 정말 창피스러운 내용은 쓰지 못했고 때로는 일기에 적지 않고 스스로 반성을 했다는 것이다. 그 학생의 말이 의미 있게 다가온 것은 반성하는 일기에 대한 학생들의 생각 또는 처지가 다 그 학생과 비슷할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우선 부모님이나 선생님에 의해 강요된 반성글은 억지글이 된다.

오늘은 일요일이었다. 그래서 늦잠을 잤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않아 큰 잘못을 했다. 앞으로는 일찍 일어나겠다.


위의 글은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이 쓴 일기다. 일요일에 늦잠을 자는 일은 많은 학생에게 있는 일이다. 때때로 부모님들은 초등학교 저학년임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마치고 학원까지 다니는 아이에게 하루정도는 늦잠을 자도록 허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학생은 아침에 늦잠을 잔 것에 대해 ‘큰 잘못’을 했다고 적었다. 자신의 잘못을 크게 강조함으로써 반성글을 쓰는 것에 만족하는 듯한 인상이 깊다. 다음은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이 쓴 일기이다.


-앞부분 생략-
전국에 물난리가 나서 수재민도 많이 생길 것이다. 우리 집은 물에 잠기지 않았지만 낮은 곳에 사는 사람들은 집이 물에 잠긴 모습이 TV에 나왔다. 빨리 비가 그쳤으면 좋겠다.

[오늘 반성할 일]
아버지가 외국출장을 가셨는데 나는 오늘 아버지가 잘 계신지 걱정을 하지 않았다. 이것이 오늘 내가 반성할 일이다.


초등학생 4학년 학생이 외국출장을 간 아버지가 보고 싶기는 하겠지만 이렇게 걱정을 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걱정을 할 수 있는 친구라 해도 걱정을 하지 않은 일이 학생처럼 반성까지 해야 할 정도는 아닐 것이다. 이 역시 억지로 만들어 쓴 반성글이라고 보아야 한다.

다음으로 강요된 반성글에 진실성이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앞의 6학년 학생의 경우를 보더라도 자신이 생각해서 크게 잘못된 일은 일기에 쓰지 않았다는 언급은 우리의 일기교육의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문제는 다음 장에서 다루는 솔직하게 쓰도록 하는 문제와 관련된다.


[최종정리일 2005년 4월 2일. 이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