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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생활문/수필

제목 안녕, 나의 클레마티스
글쓴이 조단비

안녕, 나의 클레마티스


Clematis!


양지바른 곳에 피어난

그대는 나의 바람인가요

산새 소리 기울고 평평한 땅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간이역


흰말의 무구함은

봄이로군요


삼가 만물이 모여 파종하는 계절에

굳건하게 서 있던 풀 밭에도

늘 푸른 꽃 한 송이

무성히 드리웁니다



새벽 그늘


캄캄한 천장이 발자국 소리를 내며 사부작 거리는 시간 눈을 뜨고 있는 어린 입 멀리서는 개 짖는 소리가 경광처럼 들린다 메아리인지, 찬 바람인지 모를 상념이 방 간을 뒤집고 씨실과 날실로 엉킨 실타래를 풀어헤친다 지난여름 뙈 양 볕에서 갈고리를 들며 바지 자락에 매달린 파도가 친다 조개를 캐겠다고 삽과 통발을 쥔 양손과 유유히 수평선 근처를 선향하던 갈라 잡이 배와 까아하고 우는 갈매기 신음 여기에도 몰려온다 점막을 휘 잡는 소금 내음, 파리한 하늘빛 구멍이 송송 뚫려 고개를 들이밀던, 개구진 갯벌의 물비늘, 모래가 부스럭댄 백사장의 아름 길이 눈에 선하다



고양이의 지인


내가 아는 사람은 고양이를 고양이라 부른다 재작년 사무실 앞에서 회색 털과 초록 눈을 가진 고양이를 보았다 먹이를 주지만 근처에도 가본 적 없다 그는 사람이 오면 뒷걸음질 치는 고양이의 달음박질을 높이 산다 다가서기에는 질 수 없고 모르는 척할 수 없는 어깨가 무겁다 밀고 당기기를 수차례, 눈인사도 하지 않고 뒤도 돌아보지 않았는데, 서로가 왔다 감을 알아본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던 모양이다



나는 가끔


잊지 말아야지 하고 적어놓고, 메모한 포스 테이프를 어디에 붙였는지를 잊는다 발이 달린 것처럼 사라진다 말이라도 걸어주면 좋으련만 광고에 나오는 최신식 리모컨에는 소리 기능이 장착되어 있다 사람들도 잊나 보다 편리함을 향한 갈구가 낳은 유레카! 획기적인 발명품인데, 막상 마주하면 작동법을 잊는다



부르는 말, 부르는 사람


너는 예전에 작고 여린 아이여서, 품 안에 안아들면 흩어질까 두려워 손 닿을 수 없었다 나는 너를 아가라고 불렀다 세월이 지나면 지상에 모인 건물도 산이나 들, 강마저도 모습을 바꾼다 사람들이 다니는 거리마다 길이 생기고 지점에는 각기 다른 이름이 붙여진다 이러한 역사를 보면 베인 호칭도 바뀌어야 하는가 싶다 나는 너를 그리며 네 이름을 부르지만 이름 없이도 너는 나의 동생이다 지상을 비추는 태양과 달처럼, 우리가 사랑한 순수했던 어린 나날과 누르는 대로 자국 나는 현재와 아직 오지 못한 미래를 그리며 때로는 형제끼리 시답지 않은 걸로 다투고 멀리한다 해도 나는, 언제까지고 너를 사랑할 것이다




자투리 생각

명칭에 달다(단)가 들어갔다고 담이나 달(Moon)이라고는 할 수 없다. 태양을 언급했다고 태양이 되지는 않는다. 어째서 나를 태양이나 달로 여기며 본인이 원하는 대로 이미지를 갖고자 하는지 의문이다. 내가 그리도 달처럼 느껴 나를 문으로 대했는가, 이를 따라 하고자 문을 자처하였는가를 꼬집어 표현을 할 때 나도 그렇게 이야기하는 입장의 시선에 맞게 비유를 들기는 했어도 실제의 가치와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표현일 따름인 것이다. 역학에서는 물을 음이자 땅, 육체, 여성으로 여기며 부덕한 것으로 등장할 때가 더러 있는데 유사하게 쓰이는 달(기호에서도 물을 뜻함)은 밤을 비추거나 정취를 느끼게 하는 식으로 좋게 나오는 걸 볼 수 있다. 나는 이따금씩 부를 때 어떤 '의미'를 담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표현이라면 상징물의 권리나 마음은 어떨까를 떠올려보고는 한다. 누군가 나를 덕이나 악덕의 대명사로 만들려 하듯이, 어쩌면 나도 그렇게 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걸. 혹은 어떠한 경우에 관한 설명에서 연상법을 활용한 이런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 의도하는 경우와 더불어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거나 받는 경우가 생기는 건 아닐까 하고. 그래서 나는 우둔함에 쓰이는 베짱이나 성실함에 쓰이는 개미 중 어느 한쪽도 잘못이 없는데 우화에 쓰여도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때로는 그렇지 않는다면 달리 표현을 할 방법이 있을까 하는 것도. 이것은 어떻게 쓰거나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천국이 될 수도, 지옥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글을 쓴다는 건 용기를 필요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