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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생활문/수필

제목 처음과 끝에 있는 그것, 과정.
글쓴이 조단비


시작은 그러하였지만 좋아지는 일들이 있다. 처음 먹고 살기 위해 시작한 일은 내게 있어 부담감을 안겨주었다. 잘 모른다는 생각에 쉬지 않고 일하며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업무에 관한 메모를 했고, 부족함을 채우며 잊지 않기 위해 애썼다. 자신과 같지 않음에 비교하는 일처럼 다른 사람의 몫을 강제로 넘겨받는 일도 생겼다. 다른 사람의 실수는 내 실수가 되고, 내가 한 일들은 다른 사람의 것이 되기도 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다고 여긴 일보다 더 많은 일을 해야 했다. 무언가를 짊어지거나 도움을 줄 수 없음에 사죄하고, 상대가 원하지 않아도 원하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며 맞추려 하기도 했다. 상대방의 기분을 생각해 거절하지 못할 때도 있었고, 이것을 했으면 저것도 해보라 하는 그러한 순간이 반복되다 보니 힘이 들 땐 모든 걸 내팽개치고 싶기도 했다. 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화장실에 가거나 의자에 앉지 못했다. 아침은 생략하고 점심은 빵이나 라면 혹은 삼각김밥 등으로 마무리했다. 집에 돌아와 씻고 생리 현상을 해결하며 밤에 잠을 자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내일은 무엇을 할지를 떠올리고 준비하던 나는 언젠가부터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랐다. 사람이 무서웠다. 그리고 그보다는 내가 그렇게까지 하게 된 이유와 소중한 것마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놓고 싶은 나 자신이 무서웠다. 흐려질까 봐, 보이지 않게 될까 봐. 잃고 싶음으로 더는 잃고 싶지가 않아서. 이제 와 보면 탈력감이 주원인이었던 듯 싶다. 


도덕과 윤리 및 업무를 대하는 가치관에 있어 공과 사는 구별되지 않지만, 생활이 업무가 되면 그것이 즐겁지 않은 선 내에서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정서의 교류와 노동에 함의되어 있는 차이는 무엇일까. 사회적인 정서를 포함하여 상황과 개인 편차에 따라 고려할 수 있는 범위와 양상에 있지는 않을까. 한 사람의 해 온 일과 일생 그리고 감정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데, 타인이 외로움을 느끼지 않게 하는 일이 가능할까. 느끼는 건 누구에게 있을까. 누군가에게 걸맞은 잣대와 표현은 다른 누군가에게도 걸맞은 일인가, 하는 교차하는 시점에서 발생하는 무언가. 


이 과정에서 나는 생각보다 할 수 있는 일이 많았고 생각처럼 할 수 없는 일도 있다는 걸 느꼈다. 누구나 일을 잘하고 싶고, 잘하기 보다는 할 수 있는 만큼을, 할 수 있기보다는 즐겁기를 선호하는 건 유사할지도 모른다. 서로는 기준도 취향도 상황도 다르다. 누군가가 할 수 있거나 하지 못한다는 건, 내가 할 수 있거나 하지 못하는 것과 같지 않다. 그런데 이를 두고 누군가의 불행을 두고 그보다는 나으니까 괜찮은 것이라 한다면 어떨까. 누구도 괜찮지 않다고 말할 수 없는 사회가 되지는 않을까. 골은 파일수록 깊어질 뿐 바닥이 드러나지 않는 듯 보인다. 개인이 겪거나 느끼는 직간접적인 모든 걸 두고 고통이라 주장해도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렇기에 고통에는 무게가 있지만, 사안에 따라 말하거나 하지 않는 게 나을 때도 있다. 나는 고통으로 누군가를 이기고 싶지 않다. 그저 무엇이 정말 괜찮은 일일지를 떠올리고 싶다.


「힘들고 고된 일이어도 직종이 있고 찾는 이가 있으니 일이 생겼다. 일이 생겼기에 내가 일을 할 수 있었고, 일을 할 수 있음으로 월급을 탔다. 월급이 있어야 먹고 살 수 있고, 먹고 사는 건 행복해지고 싶어서인데 행복은 그만큼의 고통이나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일상과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정도와 사안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므로 누군가 분별력을 논하는 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형성하는 삶에 있어 그것을 온전히 가진 사람이 있어서는 아닐 것이다. 내가 그렇다고 여겼던 일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고 여겼던 일들은 그럴 수도 있으니까. 


림에 손을 놓기까지 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낙서에 손을 놓지 못했다. 요즘도 그리고 있다. 선과 선이 이어져 만나는 형상은 신비롭다. 잘 그려질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고, 하거나 하지 않을 때도 있다. 습관에 의한 관성일 때도 있고 나쁠 게 없다면 무턱대고 시도해보는 수도 있다. 그래도 돌아보면 꽤 괜찮은 편이었다고, 감사하다며 스스로 느낄 수 있으면 족하다. 좋아하는 걸 다른 사람과 함께 할 수 있어 좋고, 그렇지 않아도 내게는 좋은 것이니까. 하나를 배우더라도 본인이 원해서 시작한 것과 그렇지 않은 건 다르고, 그렇지 않은 것과 그렇지 않더라도 좋아하게 된 건 다르다. 그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더라도 놓지 않게 될 테니까, 혹은 놓는다고 하더라도 기저에 남는 부분이 다른 것이다. 삶은 어쩌면 무언가를 향한 시선의 시의적절함을 찾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