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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생활문/수필

제목 2018 반빈곤 연대활동 소감
글쓴이 정유진

바르게 보기, 그리고 더 나은 삶을 상상하기

-2018 반빈곤연대활동 (6.26-29)

국민소득 3만 달러 달성. 국민 GDP 전 세계 11. 여러 지표들이 나타내듯, 대한민국은 잘 사는 나라라고 인정받는다. 그 중 대한민국의 인구 절반이 살고 있는 서울은 단연코 가장 화려하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발전한 도시이다. 이번 빈활에 참여하기 전에는 빈곤의 존재에 대해 약간의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국제구호단체들이 철수하는 모습을 보면서, 또한 내가 다니는 길거리에서 빈곤에 처한 사람들을 자주 접할 수 없었기에, 한국의 빈곤이란 발굴(?)해야 마주할 수 있는 매우 소수들이 겪고 있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서울빈곤지도와 다양한 빈곤문제의 주체들을 마주하며 내 생각이 옳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빈활 2조는 34일 동안 아현에 위치한 전철연 동지분들이 제공해주는 숙소를 사용했다. 그 숙소들은 재건축 지역에 위치해 있었는데, 내가 평소에 신촌과 이대로 놀러 다니는 곳과 그리 멀지 않았다. 또한 부조리한 상가임대차보호법으로 고통 받고 있는 자영업자들의 사업장들 또한 내가 잘 알고 있었던 거리들에 위치해 있었다. 주거가 없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강제 퇴거 및 철거 등으로 주거권과 생명권을 위협받는 사람들 또한 내 생활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내가 그들의 삶을 외면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난 도시 속 빈곤을 보지 못했던 것이 아니다. 난 빈곤을 목격했음에도 그들의 삶을 마주하기 위한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흔히 인터넷 뉴스를 보고, 주위 사람들과의 대화를 하다 보면 빈곤한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들을 접할 수 있다. 노점은 불법이고, 퇴거 명령에 응하지 않는 사람들은 소위 알박기를 하는 이기적인 집단이며, 홈리스들은 게으른 인생의 실패자, 그리고 저임금 불안정 노동에 종사하는 비정규직들은 사회적 필요에 따른 자연스러운 계층화의 결과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이러한 시선들을 접할 때면, 그들에게 나는 단순히 그래도.. 같은 사람인데...”라는 온정주의적이고 추상적인 소극적인 반박을 말하곤 했다. 하지만 나는 윤리적인 의무감만 가지고 있었을 뿐, 빈곤에 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으려고 하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그저 단순히 예산에 맞춰 짜인 허술한 제도들을 그들을 위한 복지라고, 이걸로 그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왔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빈활을 통해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 노점상들의 탈세는 허술한 조세체계가 만들어낸 결과일 뿐이며, 자체적인 규정으로 인한 노점의 긍정적인 역할들, 그리고 지역사회와 상생하기 위한 그들의 노력들을 접할 수 있었다. 임대인을 위한 상가임대차보호법으로 권리금도 받지 못하고 쫓겨나는 임차인들과, 미비한 선대책과 비인간적인 강제집행을 당하는 철거민들의 삶을 접할 수 있었다. 이와 더불어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일을 해도 가난해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과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로 빈곤이 강화되고 고착화 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도시미관을 이유로 쫓겨나는 노점상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구청에서 내세우는 도시 미관이란 도대체 누구아름다움의 기준인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현 정권이 내세우는 사람이 먼저다”, “더불어 사는 사회”, 그리고 시민이 행복한 사회라는 문구들 속 시민과 사람에는 그들은 포함되지 않는 것 같았다. 34일 동안 만난 빈곤의 주체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이를 주장하고 있었다. : 우리도 사람이다, 함께 살자. 그들은 모두 같은 지역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상생을 주장하고 있었다.

사회의 주류 여론은 빈곤한 사람들에 대해 부정적인 프레임을 씌운다. 빈곤의 책임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고, 빈곤한 사람들을 배제시키고 차별하는 기제를 발동시킨다. 내가 지금까지 기존의 프레임들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응한 것은, 오히려 이러한 프레임들을 강화시켰으며 빈곤한 사람들을 삶의 끝까지 몰아넣는 데에 일조했던 것이다. 나는 언제나 약자의 편에 서겠다고 함께하겠다고, 소외되는 자들이 없는 차별 없는 세상에 기여하겠다고 말하고 다녔지만, 과연 내가 이러한 말들을 할 자격이 있었나 싶었다. 이제는 현실의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똑바로 쳐다보고 마주할 것이다. 부조리한 현실을 인식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그것을 합리화하는 자들의 거짓 논리에 더 이상 속아 넘어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할 것이다. 그리고 더 나은 삶을 상상할 것이다. 빈곤해 질 수밖에 없는 사회의 모순적 구조에 대한 대안적 구조를 상상해야 한다. 합법 속에서 자행되는 비인간적인, 부조리한 불법적인 행태들, 그리고 오히려 사회적 약자들을 불법이라고 지칭하며 약자들 간의 싸움을 부추기는 현실들을 만든 근본적인 원인들을 파악해야 한다.

어린이, 젊은이, 고령자로 이어져 연결되는 것이 빈곤 문제이고, 불안정한 고용과 허술한 사회 안전망 등으로 누구나 빈곤해 질수 있으며 빈곤한 상태에서 헤어 나오기는 매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 복지, 요양 등 서로 다른 분야가 연계해 횡단적인 시책을 강구해야 본질적인 해결을 기대할 수 있다. 또한 빈곤에 대한 차별과 배제가 누구에 의해, 누구에 대해 이루어지며, 그것이 어떤 맥락에서 나타나고 공동체에 어떤 효과를 낳고 있는지에 대해 올바른 인식이 이루어져야 한다. 차별과 배제를 뛰어넘어 지역 사회가 상생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 위한 노력들은 우리가 앞으로도 계속 해결해나가야 할 과제들일 것이다.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외침에 구청은, 건물주는 법대로 하겠다는 대답뿐이다. 이것이 노점상, 임차상인, 철거민들이 투쟁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법대로 하면용역을 동원하는 강제퇴거는 합법이고, 이에 저항하는 빈민의 투쟁은 불법으로 규정되기에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투쟁할 수밖에 없다. 끈질기고 집요한 투쟁으로 올해 101일부터 주거급여 부양의무자기준이 폐지된다고 한다. 이처럼 아직도 많은 부조리한 현실들이 남아있지만 연대하여 투쟁한다면 천천히, 조금씩 권리를 쟁취해 나갈 수 있다. 나도 이러한 움직임에 함께 하겠다.


성균관대학교 사회복지학과 18학번 정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