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마당 > 글쓰기마당 > 일기/생활문/수필

일기/생활문/수필

제목 알약과의 한 판 승부 (2020년 1월 7일 화요일 일기)
글쓴이 박연아

 오늘 갑자기 가래가 끼고 콧물이 흘렀다. 엄마는 내 모습을 보시고는 어김없이 병원에 가자고 하셨다.

나는 가지 않겠다고 버텼다. 병원은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가기 싫어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를 이길 수는 없었다. 결국은 몇 번쯤 실랑이를 하다 병원에 갔다. 생각만 해도 몸이 떨리는 병원 문앞에 다다르자 심장이 벌렁대기 시작했다. 나는 심호흡을 몇 번 한 후에야 간신히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꾸물댄다고 눈치를 주시는 엄마의 눈초리가 매섭게 느껴졌다.

 마침내 대기 시간이 지나고 진찰을 받으러 들어갔다. 다행이 가벼운 감기에 비염이었다. 엄마와 나는 처방전을 받아 들고 바로 옆에 있는 약국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사실 병원이 싫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약, 약이 싫은 것이다. 약은 달콤하다는 시럽 약이건, 가루로 빻아 물에 타서 넘길 수 있는 가루약이건, 두툼한 알약이건 무조건 사양이다. 어릴 때는 밤에 시간 맞춰 약을 먹이러 들어온 엄마를 보고 자다 깨서 줄행랑을 쳤다고 들었다. 특히 알약은 너무 싫다. 삼키기는 힘들고 시럽약과는 사뭇 다른 텁텁함과 쓴 맛이 입에 남기 때문이다. 그런데, 엄마와 약사님 어느 한 분도 내게 한 번 묻지도 않고 알약을 주셨다. 나는 속이 상해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속상한 마음 가득한 채 집에 돌아왔는데 엄마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큰 물컵에 물을 가득 담아 주셨다. 그리고는 한움큼이나 되는 알약들을 내 손바닥에 쏟으셨다. 순간 알약들이 나에게 빨갛고 파란 혀를 낼름 낼름 거리는 것 같았다.

 '메롱, 넌 우리 못 삼키지? 겁쟁이니? 못 먹지? 그렇지?'

 나는 너무 화가 나서 보란 듯이 알약을 꿀꺽 삼켜 버렸다.

 다 먹어 버리고 나니 속이 시원했다.


<초등학교 5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