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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생활문/수필

제목 죽음
글쓴이 김현진

예전처럼 하루 전체가 우울로 가득 차 있지도 않거나, 숨이 막힐 것처럼 두렵지 않다. 매일 산 정상을 찍고 급격히 굴러 떨어지던 내 감정들에게도 더 이상 기복이 나타나지 않는다. 평화로워졌다. 한 번씩 좀 심심하다는 생각을 하긴 하지만, 기복이 큰 것보다는 확실히 나은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는 잠깐 행복하다고 느끼고, 평상시에는 그냥 무덤덤한 감정을 갖고 할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것.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갑자기 밤에 뛰어내리고 싶다는 충동을 강렬하게 느낀다.

 

솔직히 말해서 아직 죽고 싶지 않다. 나는 내 삶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괴롭고 힘든 일들도 많았지만 내가 더 이상 숨쉬고,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온 몸에 소름이 돋고 두려워질 정도로 죽음이 싫다. 그렇지만 한 번씩 그런, 참아내기 힘든 감정을 느낄 때가 있다.

 

이젠 우울이라는,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어려운 깊은 심해 속에 잠겨있는 것도 아닌데 이렇다니. 정말로 슬픔이 나를 가득 채워 다시 내 감정을 제어하기가 어려울 때,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될까봐 두렵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을 미리 상상하고, 지레 겁먹는 건 어리석은 거지만 그런 생각을 그만두기가 쉽지 않다.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창가에 앉아 여름밤의 따스한 바람을 들이마셨더니, 기억이 하나씩 떠올랐다. 그 밤공기 빼고는 다 변해있었다. 가만히 밖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에게 상처를 줬던 사람들의 얼굴, 그 말들이 나타나 머릿속을 가득 헤집어놓았다. 시간이 지나면 상처 받은 마음이 다시 괜찮아져서 다 잊고 극복한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 사건들 속에서 주요 물건들을 보게 되면 나도 모르게 떠올라서, 한동안 아무것도 못하게 된다.

 

나는 피해자인데도 왜 숨어서 살아야할까. 왜 내 추억이 담긴 장소와 동네를 마음 편히 갈 수가 없는 걸까. 다른 이들에게 조언해줄 때, 당당하게 다니라고 했었는데 막상 내가 그 상황이 되니까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다니는 게 어렵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갑자기 서러움이 가득 차서 마음이 힘들어서 그냥 울어버렸다. 나는 아직 이룬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 직장을 다니며 내가 번 돈으로 효도하고, 고양이 키우며 행복하게 살려고 했었는데. 내가 왜 울었는지 아직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괴로움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꼈던 것 같다.

 

요즘은 허무함도 그 감정 위에 더해져 머리를 복잡하게 만든다. 지금 또래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고, 그 길을 통해 취득해야 하는 걸 더 빠르게 얻었는데도 살면서 아무 것도 해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내가 조금 더 앞서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생각도 그만하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과 나를 비교해서 얻은 우월감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성인이 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아직도 어른이 되기에는 멀었다는 생각들이 자주 든다. 언젠가 나도 완전한 존재가 될 수 있으려나. 오늘도 많은 생각을 하다가 멍해진 머리와 마음을 안고 잠자리에 든다.

 

 

(고등학교 2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