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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글

제목 보고싶은 사람에게
글쓴이 최예진

어디서 뭘 하고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잘 지내고 있을거라 믿어요.

벌써 당신을 만난 지도 9개월하고도 열흘이 흘렀어요.

이왕 쓰는 편지 이름이라도 마음껏 부르고싶은데 전 당신에 대해 아는 게 딱 세 가지 밖에 없네요.

얼굴, 나이, 그리고 출신 고등학교


아직도 술 많이 마셔요? 그 때 저한테 물었잖아요, 술냄새 많이 나냐고.

그것말고도 뭐더라. 우리 은근 많은 얘기를 나눴던 것 같은데. 그 짧은 시간 안에.

그 때 예쁜 당신 얼굴 더 많이 봐둘 걸 그랬어요.

이렇게 보고싶고, 생각날 줄 알았으면 대놓고 명찰이라도 봐둘 걸 그랬는데.

사실 저는 당신을 이토록 오래 그리워할 줄 미리 알고 있었을 지도 몰라요.

다만 한 가지 몰랐던 건 당신과 저는 운명이 아니였다는 거예요.

그저 '인연일거야', '운명이니 만날거야'하는 마음으로 다시 만날 날만을 기약하고, 기다렸는데.


제가 너무 멀리 와버렸죠?

당신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이름도 모르는데. 너무 멍청하게 굴었죠?


당신 기억 속에선 이미 제가 지워진 줄로 압니다.

전 그렇게 눈에 튀는 아이도 아니였고, 누군가의 관심을 받기에는 고립되어 있었으니까요.

그런 저한테 왜 먼저 말을 걸어주었는지, 왜 굳이 제 옆에 있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전 그런 당신을 여지껏 잊지 못 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저한테 주었던 껌 두 개, 사실 아직도 가지고 있어요.

하나는 그 자리에서 다른 친구한테 줬고, 다른 하나는 씹지도 않고 꼭꼭 보관하고 있어요.

전 당신과의 그 짧은 기억이 너무도 소중하고, 제 인생에 두 번은 없을 추억으로 여겨져서.

그걸 잃어버리기가 싫어요.

그래서 보관하는 거예요. 정말 다른 뜻은 없고. 당신과 나의 기억을 되새김질 할 사진이 없으니까.

사진 대신으로 당신에게 받은 껌을 보관하고 있는거예요.


당신은 정말 이상한 사람이라서,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기억하면 기억할수록 너무 기분이 좋아지는데

한 편으로는 너무 외로워져요. 내가 이 정도로 '사람'을 그리워한 적이 있었나, 싶을만큼.

짧고 오래된 기억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황홀해져서 절 이렇게 괴롭게 만드네요.

사실 그만큼 아름다운 기억이 아닐지도 모르는데, 제가 부풀려놓은 그대의 크기가 너무 커서.

이제는 당신을 다시 만나는 일이 제게 있어 하나의 소원처럼 굳어졌어요. 정말 꼭 이루어야 할 일처럼.


아마 당신에겐 제가 그 정도가 아니겠죠.

가끔 생각날 수는 있을거에요. 그 날은 당신에게도, 저에게도 꼭 우리 둘의 만남이 없었더라도 서로에게 너무 특별한 날이니까.

그렇게라도 당신 기억 안에 제가 머무를 수 있다면 다행이네요.


시간이 많이 흘렀어요. 당신은 여전하면서도 그렇지 않을 것 같아요.

보고싶어요. 유독 오늘따라 그 마음이 꽉 차다 못해 흘러 넘쳐서 이렇게 편지를 남깁니다.

저에게 소중한 기억을 선물해줘서 고마워요. 전 언제나 당신이 보고싶을 거예요. 당신을 다시 만나기 전까지.

언젠가 또 만나기로 지금 여기서 약속해요.

그 때는 우리 서로의 이름까지 기억합시다.




2017년 11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