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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글

제목 또 다른 나 같은 친구에게
글쓴이 김현진

안녕, 오랜만이야. 니가 보내준 편지 잘 읽었어. sns가 더 편할텐데 내가 보낸 편지에 직접 답장을 써서 보내주다니, 솔직히 예상 못했었는데 감동적이었어. 진지한 이야기를 한 것 또한 오랜만인 것 같은데, 나도 깊게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쓴 답장이니까 너도 진지하게 읽어줘,

 

요즘 따라 성적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던데 나는 네가 간과하고 있는 게 있다고 생각해. 과거는 절대 돌아오지 않으며, 뼈저리게 후회해도 바뀌는 게 없어.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잊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지. 이번에 순위가 밀렸으면, 뻔한 말처럼 느껴지겠지만 다음에 잘 보면 되는 거니까 너무 힘들어 하지마. 앞으로 미래에 충실하게 살자. 후회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가쳐오는 현실을 제대로 마주하기 힘들고, 그러다보면 또 후회하게 되겠지. 앞으로 안 그러면 되는거야!

 

계속 후회할수록 스스로만 너무 싫어지고 미워지고 학대하니까 더 힘들어지는 것 같아. 나는 너가 정말로 마음의 치료를 받았으면 좋겠어. 계속 가지고 있을수록 너무 무기력해지고 아무것도 안 하게 되니까. 그 기분 너무 잘 알아, 나도 그랬어. 너무 힘든 거 잘 알아. 우울하고 힘들고 하루하루 살기도 힘들어 벅차 죽겠는데 당장 학업은 집중해야하고. 분명 했는데 떨어지고 스트레스 더 받고 풀기 위해서 폭식을 하게 되니까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며 괴로워하는 과정이 계속 반복되다 보니까 더 우울해지는 것 같아. 근본적인 원인을 치료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리고 치료하고 나서도 만약 네가 공부를 안하게 된다면 그건 솔직히 말하자면 의지박약이야.

 

너가 잘못한 건 없어. 정말로 망할 죽일 놈의 우울들이 숨통을 짓밟아서 일어나기 어려운 것뿐이야. 그 아이들을 한 번에 다 없앨 수는 없지만 조금씩이라도 내 주변의 모든 것에 하나씩 고마워하게 되면 조금이라도 행복해 질거야. 내가 확실하게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 같아서 너무 슬프다. 내가 너의 마음을 꺼내서 치료해줄 수 있다면 좋을텐데. 아,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전문의에게 맡겨야 겠구나. 내가 아니라.

 

다행히 중학교 때 친구들이나 오래 알고 지낸 친구들, 즉 내 사람들이 곁에 있어도 마음 속 깊숙이 자리 잡은 외로움과 우울은 사라지지 않는 것 같아. 같이 있으면 정말 행복한데, 없으면 너무 힘들어져. 어쩌면 평생 싸워야할 짐일지도 몰라. 가볍게 보면 안 돼, 우울 이라는게. 그 어느 병보다 날카롭고 아픈 병이니까. 암보다 안 좋은 질환일 수도 있어, 정신을 죽이는 거니까.

 

일단 니가 살아있음에 감사해. 나는 요즘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고 있어. 내가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고, 귀로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내가 잠이 드는 밤이 마지막이 아니라 내일을 맞이하는 밤이라는 것을. 하루하루 버텨내줘서 고마워. 세상에서 진짜 제일 중요한 건 너야. 그 누구도 너의 인생을 살아줄 순 없어. 너의 부모님마저도, 너 자신을 사랑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되면 좀 나아질거야.

 

남들 눈칫밥 먹어가면서 괴롭게 살아가기엔 우리는 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일들도 많은데. 힘들게 살다가 가기에는 너무 아름다운 인생이니까. 모든 행동의 주체가 나 자신이 되면 행복해져. 아 물론 이기적인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지 이건. 남들에게 피해 안 주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거야, 행복하게. 그냥 요즘 그런 생각들이 들더라. 너의 상처 받은 마음들을 메꾸기는 어렵지만, 더 이상 찢진 말자. 그게 어렵다는 게 제일 슬프지만. 너가 있어서 좋은 사람들도 많다는 걸 기억해, 나처럼. 오늘부터라도 조그마한 습관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봐. 조금씩 변해가는 너의 모습을 보면 행복해 질거야.

 

그래도 너의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걸 들어서 다행이다. 아무리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가 연결되고 있어도 당장 곁에 없으면 엄청난 공허함을 느끼게 되니까.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게 어렵다고 했었는데, 맞아. 정말 쉽지가 않아.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 내가 그렇게 조금이라도 극복한 유형이야. 물론 위로를 듣는다는 게 일시적인 효과는 있지만, 너의 의지도 중요해. 다른 사람들의 도움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면 혼자 살아가기는 힘드니까. 원래 엄청 열등감 찌끄러기 였는데 수많은 조언들을 들어도 나의 또 다른 자아가 반사하고 그랬었어. 그런데 너의 조언과, 또 다른 사람들의 조언으로 많이 나아졌어! 진짜로 고마워. 솔직히 다 사라진 건 아닌데, 정말 사라졌어. 너는 다른 사람에게 교훈과 깨달음을 주는 사람이야. 얼마나 대단한건데 이게!

 

아 그리고, 최근에 우울증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전체적인 원인은 자기 혐오라는 것이었다는 깨달음을 얻었어. 나도 열등감에서 벗어나고 보니까 알겠더라. 난 정말 소중한 사람이었고 사랑할,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는걸. 너도 그래, 넌 좋은 사람이니까 또 다른 좋은 사람들이 너의 곁에 점점 모여들고 너를 점점 행복하게 해줄거야. 내가 비록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너를 조금씩이라도 즐겁게 해줄게! 그리고 고민 들어준다고 해줘서 고마워. 연락 잘 안되는 거 다 이해해, 공부도 많이 힘들거고 연락 자체를 천천히 보는 친구들도 있는거니까.


곧 만나자. 우리 생일 이후로 안 만났어. 그 때가 2월이었는데, 벌써 8개월이 넘게 지나가. 곧 9개월이야. 이번 시험 끝나고 꼭 만나는 걸로 약속해. 그 때까지 건강하고, 감기 걸리지 말고 행복하게 지내.


(고등학교 1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