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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글

제목 윌리스 캐리어씨께
글쓴이 최하늘

여름의 구세주 윌리스 캐리어씨께

 

 안녕하세요, 윌리스 캐리어씨.


 올해도 여름이 다가오고 있네요. 비록 다른 해와는 다르게 학교 대신 집에 콕 박혀서 이런 편지를 쓰게 됐지만 어쨌든 여름은 다가오고 있습니다(이 편지를 쓴 건 등교 개학 이전의 일입니다.)


 당신이 있기 전, 정확히는 당신의 발명품이 있기 전, 인류에게 여름이란 무엇이었을까요? 문명의 이기 속에서 살고 있는 현대의 사람들조차도 버티기 힘든 열기와 더위를 그들은 어떻게 버텼던 걸까요?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당신이 사람들을 그 기약 없는 버팀에서, 땀이 줄줄 흐르고 머리가 팽팽 도는 괴로움에서 해방시켰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당신의 발명품이 여름이라는 무형의 두려움에게 대적하기에 가장 알맞은 창작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여름에 더 자주 애용하는 물건이 있습니다. 바로 선풍기입니다. 이 선풍기를 누가 만들었는지에 대해 찾아보진 않았지만 적어도 당신의 위대한 발명품의 시대가 오기 전 제작된 물건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두 번째로 위대한 여름의 대항마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상황을 개선해주긴 하나 결국 여름이 주는 온도에 순응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바람을 발생시켜 몸의 수분을 증발시킨 뒤 체온을 내려가게 해 시원하게 느끼도록 해 주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더위를 없앨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의 발명품은 정말 위대합니다.


 저는 당신과 당신의 시대에 대한 사전 지식이 모자라기 때문에 그 시대에도 여름의 첫 번째 대항마가 지금과 같은 이름인지는 모릅니다. 다만 현재는 그것을 '에어컨'이라고 부릅니다. 영어로는 'air conditioner'입니다.

당신은 수많은 창작의 고통을 느끼면서 만든 이 에어컨은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다고 말하기에는 근거가 부족하지만 적어도 그들을 땀투성이 옷, 불쾌한 찝찝함, 얼굴을 타고 흐르는 땀의 감각, 그리고 짜증에서 구했다고는 단언할 수 있습니다.


 혹자는 제가 이렇게 과장된 표현과 과도한 미사여구를 통해 당신을 칭찬하는 것을 넘어 찬양하는 글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할지 모릅니다. 만약 그것이 에어컨의 진정한 힘을 느끼지 못해서 나온 비판이라면 그저 안타까울 뿐이며, 에어컨의 힘을 아는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라면 여름이 오는 순간 그 비판은 힘을 잃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를 잘 아는 사람이 이 글을 본다며 "너 에어컨 싫어하지 않았어?"라고 반문할 수 도 있겠습니다. 실제로 저는 에어컨 바람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에어컨을 과도하게 남용하며 여름이라는 계절의 정체성을 잃고 여름의 옷차림을 한 사람이 있는 곳을 한순간에 가을로 만들어버리는 것 때문이지, 에어컨의 기능 자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닙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에어컨을 가동하는 공간에 20분 이상 머무를 때 반팔 이상이 무언가를 입지 않으면 추위에 떨거나 감기에 걸립니다. 냉방병 증상도 나타나서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에어컨을 좋아할 수밖에 없습니다. 온 몸을 땀으로 적시고 들어간 실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어컨의 냉기는 때로는 택배 기사님보다도 더 반가운 법이니까요. 제가 에어컨과 관련해서 괴로워하는 일은 어디까지나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탓이기 때문에 에어컨의 탓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여튼 저의 이런 에어컨에 대한 마음이 당신에게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후대의 사람들이 당신에게 얼마나 고마워하는지도요. 비록 당신은 이 글을 볼 일이 없을 것이고, 보더라도 한국어로 적혀 있기 때문에 해독할 일은 요원하겠지만 말입니다.

 

 

2020년 여름을 앞두고, 

더위에 괴로워할 고3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