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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영화감상문

제목 심판 / 베르나르 베르베르
글쓴이 노문희


가브리엘 : (꿈꾸는 듯한 표정이 되어) 1922년에서 1957년까지……. 삶이란 건 나란히 놓은 숫자 두 개로 요약되는 게 아닐까요. 입구와 출구. 그 사이를 우리가 채우는 거죠. 태어나서, 울고, 웃고, 먹고, 싸고, 움직이고, 자고, 사랑을 나누고, 싸우고, 얘기하고, 듣고, 걷고, 앉고, 눕고, 그러다…… 죽는 거예요. 각자 자신이 특별하고 유일무이하다고 믿지만 실은 누구나 정확히 똑같죠. (54페이지)


가수 나훈아는 테스 형에게 물었다. 세상이 왜 이러냐고, 왜 이렇게 힘이 드느냐고, 먼저 가본 저세상은 어떠냐고, 가보니까 천국은 있더냐고. 나훈아는 노래를 부르면서 테스 형에게 대답은 들었을까? 글쎄. 나도 궁금했다. '세상이 왜 이렇게 힘든 걸까요, 정말 저세상이, 천국이 있을까요?' 아마도 나는 이 대답을 다음 세상에서나 할 수 있을 듯한데, 전생의 기억을 완전 삭제하고 태어난다면 또 그 대답을 할 수 없겠지. 그때 다시 궁금해질 것 같다. 천국은 있을까? 내가 죽으면 천국으로 갈 수 있을까? 나는 어떤 심판을 받으며 천국을 경험하고 있을까?


눈앞에 천국이 펼쳐져 있다. 그 천국을, 이제 막 천국에 입성한 아나톨만 모르고 있다. 하루에 담배를 세 갑이나 피워대던 아나톨은 폐암에 걸렸고, 수술하다가 사망했다. 눈을 떠보니 몸이 가뿐하다. 음, 수술이 성공적으로 잘되었군. 한참 착각에 빠진 그를 기다리는 건, 그를 천국에 머물게 할 것인지 다시 지상으로 보낼 것인지 결정해야만 하는 재판이었다. 처음 그도 자신이 죽었다는 걸 인정할 수 없었다. 자기 인생에서 이보다 더 고민에 빠진 선택과 몸부림이 있었던가? 자기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던 아나톨은 이제 그가 다시 태어나야 하는지 하는 물음에 답해야만 한다. 온 힘을 다해 답을 찾아야만 한다.


천국의 법정은 뭐가 다를까 싶지만, 지상의 재판과 같은 모습이다. 죽기 전 판사였던 아나톨은 피고인이 되어 천국의 판사 가브리엘 앞에 서 있다. 그는 지나온 자기 삶에 대해 심판을 받는다. 판사의 물음에 그는 자기가 좋은 학생,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 좋은 직업인이었다고 말한다. 정말? 검사인 베르트랑은 아나톨의 대답이 거짓이라는 증거를 조목조목 대면서, 그에게 천국에 머물 수 없음을 강조한다. 그에 반해 아나톨의 변호사인 카롤린은 그가 '삶의 형'에 처하지 않게 하려고 애쓴다. 변호사와 검사 사이의 설전을 지켜보면서 궁금해지는 건, 천국에서 죄를 논하는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하는 거였다. 그들은 그동안 아나톨의 모든 생을 지켜본 이들이다. 검사는 그의 신호 위반, 속도위반, 음주운전, 욕설 등 모든 위반 사례를 들었고, 심지어 그가 제대로 판결하지 못한 사건들을 언급했다. 심지어 그가 저지른 죄의 범위를 점점 확대해가면서 아나톨을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든다.


웃음이 나면서 동시에 심각해진다.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일상의 소소한(?) 위반들이 천국의 심판대에서는 굵직한 죄가 되어 되돌아온다. 그것을 시작으로 점점 우리가 저지른 죄의 크기는 살을 찌운다. 왜 그가 자기 행복을 위해 애쓰지 않았는지 저격한다. 아나톨은 지상에서 행복하지 않았을까? 판사라는 직업에 아내와 아이들, 크게 모자라지 않은 경제력이 일상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거 아니었나? 검사가 들춰내는 그의 죄목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뭔가 계속 콕콕 쑤시는 거 같았다. 행복을 누리지 않았다는, 행복한 삶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는 죄. 그에게 행복은 무엇이기에 이렇게 모르고 놓친 채로 살아왔던가.


베르트랑 : 어떤 일이 어려워서 하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니라 하지 않기 때문에 어려운 거예요! (중략) 지나치게 평온하고 지나치게 틀에 박힌 삶을 선택하고,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등한시하고, 운명적 사랑에 실패함으로써 피숑 씨는 배신을 저질렀습니다. 그는 엘리자베트 루냐크의 꿈을 배신했어요.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배신한 셈이죠. (133페이지)


아나톨은 학창 시절 연극을 좋아했지만, 성인이 되고 판사로 살면서 우리가 아는 평범한 모습으로 변신한다. 연극으로 당시 밥벌이의 부족함을 알았고, 지금 아내와 만났으니 그냥 살았고, 아이들에게 자유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검사는 그의 주장에 반박하면서 그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했다. 그가 배우를 하지 않음으로써 그의 재능을 죽였고, 그가 좋아했던 여성과 만남을 이어가지 못했으며, 아이들에게 무관심함으로써 엇나가는 자녀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나톨 자신도 몰랐던 아이들의 모습이 충격이지만, 그는 최선을 다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검사는 콧방귀를 뀌면서 그의 말을 핑계로 치부하고 그의 죄명을 외친다. 불행하지 않으려는 인생을 선택한 죄, 행복하지 않은 죄. 천생배필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았기에 현재의 부인을 선택했고, 그로 인해 평생 아내와 권태롭게 살아온 죄, 자기와 맞는 배우자가 자기에게 줄 수 있는 행복을 차단한 채로 살아온 죄가 크다고 말이다. 거기에 그의 재능을 어떻게 썼느냐고 몰아붙인다. 그가 타고난 대배우가 될 자질인데 그 스스로 안정적인 삶을 찾느라 연극을 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지 않았기에 행복하지 않은 그의 세월을 탓한다. 그저 남들과 똑같이 살려고 했다면서, 순응주의에 빠져서 자기에게 주어진 특별한 운명을 무시했다고, 그의 죄가 무겁다고 외친다. 기억하지 못한 시간의 죄까지 한꺼번에 들춰내니 이건 뭐 빼도 박도 못 한 증거가 된다.


검사의 주장대로 아나톨은 행복하지 않은 죄를 저지르기가 했을까? 그의 변호사 카롤린은 어떻게 해서라도 그를 무죄로 만들어 천국에 남게 하고 싶다. 그의 선택이 왜 그래야 했는지, 그의 선택 이면의 감정들을 피력한다. 첫눈에 반한 아내와 저지른 실수를 책임지려고 결혼했고 아이를 낳았으며, 아버지로 살아가려고 배우보다는 판사를 선택했다고 말한다. 자선단체에 기부금을 냈고, 판사로 최고는 아니어도 직업인으로 나름 성실히 일해 왔다고, 잘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선택한 삶을 책임져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이었을까. 그는 판사의 판결을 듣고 혼란에 빠진다. 재능을 망각한 것은 유죄, 사랑을 찾으려고 애쓰지 않은 것도 유죄, 천국에 남을 만큼 충분히 영적인 삶을 살았는가에 대한 것도 유죄. 그래서 아나톨 피숑은 유죄이며, '삶의 형'에 처했다. 천국에 남을 수 없으며, 인간 세상에 다시 태어나야 한다.


덜컥 겁이 난다. 삶의 모든 순간이 끝났을 때 누군가가 나에게 그동안 살아온 세월의 죄를 묻는다고 생각하면 두렵다. 그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뭐가 잘못된 건지 몰라서 당황할 것 같다. 특별히 나쁜 사람으로 살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 싶은 순간들, 항상 원하고 바라던 삶은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현실에 만족하면서 살아온 시간이 떠오른다. 선택하지 못한 것들에 아쉬움은 있겠지만, 삶은 언제나 선택의 연속이었으니 하나를 선택하면서 다른 것을 포기하는 것은 너무 익숙하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가 얼마나 더 행복할 선택이 가능하단 말인가. 아나톨의 변호사 카롤린은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편안한 삶을 선택한 그의 죄를 논하는 검사하게 이렇게 말한다. '만약 피숑이 유죄라면, 한 시대와 그 시대의 관습 전체에 함께 죄를 물어야 한다'고. 카롤린은 아나톨의 수호천사였다. 그의 평생을 지켜본 이가 하는 말이니 어쩌면 그의 죄를 경감하고자 하는 주장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현실적인 답변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삶의 거의 모든 순간은 바라는 것과 가능한 것의 싸움이었으니...


이 세상을 살면서 어떻게 꿈만 쫓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 하고 싶은 것보다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는, 당장 눈앞의 오늘을 보면서 살아가기에 급급한 게 보편적인 인간의 삶이라고 여겼다. 그러니 내일을 생각하면서도 오늘의 선택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아나톨의 삶도 다르지 않았다. 오늘을 살아내는 삶으로 그의 인생을 채웠다. 그랬는데 인제 와서 그 삶을 심판한다니 안타깝기도 하고, 또 다른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마음이 공존한다. 그가 기억하지도 못한 시간까지 눈앞에서 파노라마처럼 흐르는 장면들이 인상적이다. 그때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보다는, 그때 그 행동이나 선택의 마음이 저절로 읽힌다. 만족감보다는 아쉬움이 더 크겠지. 이 심판의 결과는 둘 중 하나였다. 무죄를 받아서 천국에 머물며 천사가 되거나, 유죄를 받아서 지상으로 내려가 다시 인간으로 살아내거나. 말 그대로 '삶의 형'.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면 이 유죄의 형벌이 내려진 게 꼭 나쁜 것이기만 할까? 별것 없이 고단한 인간 세상 다시 사는 게 힘들겠지만, 어쩌면 내가 놓친 행복을 다시 찾아가는 기회는 아닐까? 아나톨과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판사복을 벗어 던진 가브리엘의 선택은, 행복의 기회를 다시 잡은 이의 즐거운 비명이 될 것 같다. 진짜 행복을, 또 다른 행복을 아는 인생이 되겠지.


아나톨 : 지상으로 돌아가는 건 다시 인간이 된다는, 결국 다시 무지해진다는 뜻이잖아요. 그동안 실수를 저질렀는데, 다음 생에서도 또 실수를 저지르게 될 거예요. (162페이지)

가브리엘 : 어느 누구도, 그 어떤 것도 당신에게 강요하지 않을 거예요. 다시 내려가면 자유 의지를 가지고 혼자가 될 거예요. (197페이지)


현실에 순응하며 선택한 삶이 잘못된 거라고 말할 수는 없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또 어떤 것들을 포기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럴 때마다 순응보다는 꿈을, 다가오는 파도를 피하기보다는 맞으면서, '적당히'가 아니라 치열하게 부딪히려는 바람 한 자락을 기억한다면 매 순간의 선택 결과가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죽어서 가본 천국에서, 자신의 행복을 완성하는 게 아니라 불행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아온 죄를 너무 잘 알게 되었지 않은가.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게 형벌이 아니라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지금 너무 잘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