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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문/기행문

제목 3주간의 중국어학연수
글쓴이 최예은
7월 23일~8월 12일. 3주간의 중국 어학연수!


적지도, 많지도 않은 시간이 지난 일이다. 난 절대 이 경험을 잊을 수 없다.
중국을 갔다 오고, 며칠 후 개학하는 바람에 2학기 준비, 중간고사 준비, 중간고사 끝나고의 축제와 운동회 준비로 바빴다. 이제서라도 글을 쓸 수 있어서 다행이다.


무슨 바람이 들었던 건지, 중국 어학연수 희망자를 모집한다는 말에 관심이 생겼고, 그 관심이 욕심이 되어버렸다. 언니가 올해 대학생이라 등록금과 학비로 힘든 부모님께 떼를 쓰고 졸라 결국 가게 된 중국 어학연수. 중국어학연수를 생각할 때 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부모님께 너무 죄송하고, 그래도 보내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다.


중국이 우리나라와 많이 가깝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실은 비행기 안에서의 시간이었다. TV나 드라마 들을 보면 외국으로 갈 때 비행기에 몇 시간씩 몸을 싣지만 중국까지는 1시간 30분~2시간 사이였다.
북경에 있는 공항에 도착하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드는 생각은 ‘공기가 왜이래?’하는 생각이었다. 중국에서 황사가 날아올 만큼 공기가 안 좋은 건 대충 알고 있었지만, 직접 느끼니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공항에 미리 와있던 버스를 타고, 머무를 숙소까지 타고 가는 길. 창문으로 보이는 건물들의 간판은 간체자(중국인들이 한자를 쉽게 변형한 것)로 되어있었다. 기분이 묘하게 설렜다.


*북경
우리는 도착하고 나서 3박 4일 동안 북경탐방을 가졌다. 중국의 땅덩어리가 넓은 만큼 역사도 깊고, 유적도 많다. 솔직히 많이 힘들었다. 더운 여름날이었고, 한 곳 관광하는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명하다는 자금성, 천안문 광장, 만리장성 등도 가봤다. 특히 제일 기억에 남는 곳이 만리장성이다. 내가 관광한 만리장성은 ‘팔달령’이라는 곳인데 실제로 만리장성을 걸어봤다.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경사도 가파르고, 계단도 많아서 더 힘들었는데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우리가 걸은 거리는 왕복으로 5리~10리 밖에 안 된다고 했다.


*연길&백두산
조선족(중국에 사는 한국인들. 중국어, 한국어 둘 다 잘 하지만 거의 대부분이 중국어를 더 잘 한다. 한국어를 아예 못하는 조선족들도 있다.)들이 많이 사는 연길. 이곳에선 보이차를 전문적으로 팔고 대접하는 큰 카페 같은 곳에 갔었다. 보이차의 유래, 차 만드는 방법, 끓이는 방법들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보이차를 마셔볼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보이차 조그마한 것을 하나씩 사갔다.
중국하면 백두산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지프차 비슷한 것을 타고 조금은 덜컹거리는 길을 올라간 후 걸어 올라가면 백두산 천지를 볼 수 있다. 천지에는 안개가 많이 껴서 볼 수 있는 가능성이 많지 않다던데 내가 올라갔을 땐 천지가 선명하게 보여서 기분이 좋았었다. 하지만 곧 다시 안개가 끼는 바람에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침대기차
많은 것을 안겨준 침대기차이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2~3번 정도 중국에서 타 본 것 같다. 북경에서 하얼빈으로 이동할 때, 백두산 갈 때 등. 이 침대기차에서 10시간정도 보낸 것 같다. 잠도 자고, 친구들이랑 떠들며 많은 추억을 쌓았다. 또한 다른 사람들도 많이 이용하기 때문에 중국인들도 만났다. 친절하게 우리에게 중국어 본토발음을 가르쳐 주신 할머니와,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말이 통하지 않아, 영어로 짧게나마 대화 했던 19살 언니.. 많은 추억만큼이나 따뜻한 사람들도 만나보았던 기회였다.


*하얼빈
중국 어학연수의 마지막 소개지, 하얼빈이다. 중국어에도 많은 발음이 존재하는데 하얼빈의 발음이 정확도에 가장 가깝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유학생들은 하얼빈에 많이 간다고 하며, 중국의 아나운서들 또한 하얼빈 출신이 많다. 그리고 나도, 하얼빈에서 본격적으로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솔직히 어렵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평소에 한자에도 관심이 없었던 탓에 더 어렵게만 다가왔다. 하지만 다행히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 조선족 선생님이었는데 한국에도 몇 번 와보셨고, 중국의 대학교에서 한국어강의 조교 비스무리 의 직분이신데 한국어 발음이 가장 좋다고 하신다. 진짜 한국인 같았다.
하얼빈에서 거의 공부를 많이 했지만, 많이 돌아다니기도 했다. 북경에서 유적지를 중심으로 둘러봤다면, 하얼빈에서는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놀이공원도 가고, 호림원(호랑이 동물원)등에도 갔다. 안중근의사기념관 등 다른 기념관, 박물관들도 가봤다.
또한 기억에 남는 것이 ‘홈스테이’이다. 원래의 숙소가 아닌 조선족 학생들의 집에서 하루만 홈스테이를 하는 것이었다. 한국 문화, 중국 문화를 서로 공유할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중국으로 떠나기 전, 설렘 반과 두려움 반으로 마음이 들떴었다. 떠나는 날 아침에 일찍 학교에 도착했는데 떠나는 우리를 배웅해주는 친구들을 보며 울컥하기도 했고, 버스가 출발하려할 때 많은 선생님들이 나와서 스탠드에 서서 인사를 해주는 것을 보고 기분이 묘하기도 하였다.
중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아직 1학년 후배들과 어색하기도 하고, 고1언니와는 친해지기 어려울 것같은 기분도 들곤 했었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마음은 사라지게 되었다. 1학년 후배들 뿐만 아니라 모두 다같이 노는 것도 재밌엇고 든든히 엄마처럼 챙겨주는 은지언니를 많이 따르게 되었다. 그리 힘든 점은 없었지만, 가끔씩 밀려오는 한국의 그리움과 어쩌다 마주치는 이상한 음식들로 고생을 하긴 했었다.
한국으로 돌아오고 주위 사람들이 중국 어땠냐고 물어보면 그저 그랬어요, 괜찮았지만 다신 가고싶지 않았어요. 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이 글을 작성하면서 머릿속의 기억속을 정리하는 동안 중국에서 길면서도 짧았던 많은 일들이 떠올랐다. 비록 이 글에 다 적진 못했지만 내 기억에는 훈훈하게 남아있다고 느낀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저 그랬던 것 보다 많은 추억들을 만들고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준 이번 여행에 감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