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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문/기행문

제목 수학여행을 다녀와서
글쓴이 서승주
10월 30일 화요일부터 11월 2일 금요일까지 3박 4일 동안 여양고 1학년 학생들은 서울로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다녀와서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아직도 그 여운이 다 가시지 않은 듯 하다. 시간을 거슬러 그 소중한 추억을 되짚어 보고자 한다.
처음엔 학교를 벗어나 먼 곳까지 떠난다는 게 약간 어색했고 버스를 탄 순간까지도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첫 도착지는 충남 천안에 있는 독립기념관이었다. 울긋불긋한 단풍나무 길을 따라 들어가자 날렵한 ‘겨레의 탑’이 우뚝 나타났다. 높이가 무려 51m나 되는 이 ‘겨레의 탑’은 마치 하늘로 날아오르는 새의 날개 같았다. 맑고 푸른 백련못을 지나자 ‘겨레의 집’에 이르렀다. 겨레의 집은 길이 126m, 폭 68m, 높이는 4m에 이르는 동양 최대의 기와집이다. ‘겨레의 집’에는 커다란 ‘불굴의 한국인상’이 있었는데 여러 사람이 창공을 향해 전진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겨레의 집 뒤로 7개의 전시관이 있었다. 선사시대부터 1945년 광복 즈음까지 5천년의 우리 역사가 시대별로 나뉘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마치 국사 교과서를 보는 듯 했다. 국사시간에 배웠던 내용들이 그대로 정리되어 있어서 다시 되짚어 보니 이해가 훨씬 쉬웠다. 원시시대 때의 고인돌부터 시작해서 가야시대의 철기 문화, 화랑도를 비롯하여 조선시대의 거북선의 활약을 볼 수 있었다. 또 우리나라가 국토를 상실했을 때 열강세력에 대항하여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한 노력과 힘을 볼 수 있었고, 의병들의 활약도 눈에 띄게 보였다. 특히 일제강점기 때 우리 조상들이 잔인한 방법들로 고문을 받고 피해와 억압을 받는 모습을 보았을 때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또 계몽운동을 보면서 국권수호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우리 조상들이 지금의 우리나라를 위해 그 시대의 모습을 만들었듯이 지금 우리도 다음 시대와 그 시대를 살아갈 세대를 위해 더 좋은 모습으로 이 시대를 우리가 직접 만들어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상들이 노력한 눈물의 결실이 진심으로 느껴진 곳이었다.
인사동은 옛날 골동품가게 들이 즐비했는데 앤티크한 물건들이나 우리나라 전통 소품들을 팔고 있었다. 인사동 거리에는 중국인, 일본인, 심지어 유럽인들까지 다양한 외국인 관광객들이 있었다.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과 우리나라의 한 거리에 같이 걷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인사동 거리를 지나자 창덕궁이 나왔다. 창덕궁은 태종 5년(1405)에 세워진 조선시대 궁궐 가운데 하나이다. 창덕궁은 옛 선현들이 정원을 조성한 방법 등을 잘 보여주고 있어 역사적, 건축사적으로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창덕궁과 후원은 자연 순리를 존중하여 자연과의 조화를 기본으로 하는 한국 문화를 잘 나타내고 있는 장소로서 1997년 12월 6일 드디어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자랑스럽게 등록되었다. 정문인 돈화문을 들어가면 금천교를 지나 창덕궁의 중심건물이 인정전이 있다. 인정전은 국가의 중요한 의식을 치르던 곳인데 밖에서 봤을 때 2층 지붕으로 되어 있어 2층 건물 같아 보였는데 막상 안에서 들여다보니 높은 천장으로 되어있었다. 그리고 중앙 용상 뒤에는 해와 달, 다섯 개의 산봉우리를 그린 일월 오악병이 둘러져 있었고 유리창, 전등, 커튼 등 일부분이 서양식으로 세련되게 개조되어 있었다. 그 다음은 왕의 업무 공간인 선정전에 갔다. 선정전은 조선 궁궐 건물 중 유일하게 청기와 건물이다. 기와 색깔이 고급스러웠다.
그리고 ‘덕혜옹주’라는 소설책에서 보았던 낙선재를 직접 만나 볼 수 있었다. 1989년까지 조선왕실의 마지막 왕족인 덕혜옹주와 이방자 여사가 거주한 곳이다. 또 창덕궁 후원의 첫 번째 중심정원인 부용지의 부용정은 연못에 활짝 피어있는 한 송이 꽃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주위에는 왕실 도서관으로 쓰인 규장각이 있다. 창덕궁은 역사만큼 건물도 많고 건물마다 숨겨진 스토리와 인물사가 다양했다. 창덕궁이 워낙 넓어서 더욱더 구석구석 구경하고 싶었는데 주요한 곳밖에 둘러보지 못 했던 게 아쉬웠다. 창덕궁은 인위적인 구조를 따르지 않고 주변 지형과 조화를 이루도록 자연스럽게 건축한 가장 한국적인 궁궐이었다.
한강유람선에서의 분위기는 최고였다. 한강유람선을 탑승했었을 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타난 일몰 장면을 잊을 수 없다. 높은 빌딩 사이로 커다한 해가 붉고 주황빛을 내며 지고 있었는데 이 장면을 보던 탑승객들이 동시에 감탄사를 연발하였다. 밖에 나가서 2층에 올라갔는데 바람이 제법 불었고 갈매기 떼들은 우리는 맞이 해주었다. 배는 물살을 세차게 가르고 있었는데 안에 있었던 것보다 좀 더 빠른 느낌이었고 속이 시원하였다. 어느 지점에서 배가 턴하자 어느덧 해가 지고 높은 빌딩들이 하나 둘씩 불을 밝혔는데 마치 해외에 온 것처럼 야경이 장관이었다. 국회 의사당, 63빌딩의 야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혹시 가지 못할까 봐 제일 걱정했던 임진각은 가게 되어 정말 다행이었다. 자유의 다리에서 통일 염원의 글을 남기면서 우리나라가 언제 통일이 될지는 모르지만 남과 북이 하루 빨리 긴장 상황을 풀고 사이가 더 좋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교에서 옛날 기차가 쓸쓸하게 남겨진 것을 보았다. 형태는 옛날 모습 그대로였고 세월이 많이 흘러 녹이 슬고 낡아 있었다. 그 만큼 남과 북의 분단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게 느껴졌다. 북한을 가장 가깝게 볼 수 있는 곳 도라 전망대에서는 임진강이 보이고 그 너머로 북한 땅이 보였는데 왼쪽으로 개성공단이 보였고, 오른쪽으로는 대성동 마을, 뒤에는 송악산이 있었다. 그 밖에 금암골(협동농장), 장단역, 북한 선전마을, 김일성 동상도 보였다. 임진각을 출발하면 DMZ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헌병대의 인원파악과 검문이 있다. DMZ에는 사람들 발길이 닿지 않아 자연이 대신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DMZ 영상관을 간 다음 바로 제 3땅굴로 향했다.
제 3땅굴은 1978년 발견되었고 북한에서 만든 4개의 땅굴 중 공개 된 곳이다. 길이 1,635m, 높이 2m, 폭 2m, 1시간당 3만 명의 병력 이동이 가능하다. 서울에서의 거리가 불과 52km이다. 제 3땅굴에 들어가 보니 길고 깊었다. 종유석과 석순, 박쥐가 있는 웅장한 동굴인 줄 알았던 나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동굴이었다. 폭이랑 높이가 좁아서 허리를 굽어 들어갔다. 북한의 끝없는 남침 야욕을 느낄 수 있었다.
남산 서울 N 타워에는 연인들의 수많은 자물쇠들이 채워져 있었다. 철조망에 주렁주렁 달린 것도 모자라 트리로 까지 만들어져 있었다. 광장에는 사람들이 전통무용과 칼 군무 공연을 하는 중이었다. 타워 안에 들어가자 테디베어 박물관, 기념품 가게, 게임하는 곳, 카페 들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별 거 없었다. 남산에서는 서울 시내가 한눈에 다보였는데 청와대도 보였다.
명동은 서울의 대표적 상업지구이다. 도ㆍ소매업과 금융업 서비스 산업이 집중된 곳이기도 하다. 이 명동 한복판에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 각자 이동해 돌아 다녔다. 온통 빌딩 숲이고 주로 직장인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대형 백화점, 각종 사무실, 금융기관 본사, 쇼핑센터, 귀금속점 등이 있었다. 먼저 근처에 있는 남대문 상가에 들어가니 갖가지 옷들이 저렴한 가격에 팔고 있었다. 보석, 악세사리 가게들이 많이 있었고 상인들은 좁은 자리에 각자의 자리를 잡고 무언가를 만들고 팔고 연구하고 있었다. 자기 일에 열중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지하도를 통해 땅 밑으로 연결된 지하상가들도 있었다. 과연 서울의 소비문화 중심지다웠다.
비보이 공연은 홍대 소극장인 비보이 전용 극장에서 관람했다. 우리가 본 것은 새로운 한류 문화 명품으로 거듭나고 있는 세계적인 B-boy 댄스 뮤지컬인 '쿵'이라는 공연이었다. 비보이들이 현실과 꿈 사이의 갈등 속에서도 결국 꿈을 선택한다는 내용이었다. 공연한 ‘고릴라 크루’는 한국 최초의 프리스타일 댄스팀 이고, 수 많은 국가에서 초청되어 공연을 펼칠 정도로 세계적인 수준이다. 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가 있어서 지루하지 않았다. 각 장면마다 테마와 치밀한 구성이 놀라웠다. 팀워크도 대단했고 현란한 고난도 기술과 묘기가 예술이었다. 연기도 감정을 실어 실감이 났다. 특히 관객들과 함께 공연을 펼치고 선물도 오가며, 관객들과의 가까이 호흡을 해서 더 즐거웠다.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춤을 포기하지 않은 댄서들의 열정이 잘 와 닿았다.
한국 잡월드는 우리나라 어린이, 청소년들의 소중한 꿈을 키우고 미래를 미리 경험해 보는 곳이다. 건물이 엄청 컸다. 내부 구조가 깔끔하고 현대적이었다. 특히 직업 체험관은 실제로 그 직업에 알맞게 설치되어 있어 그 리얼리티에 놀랐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꿈이 저절로 이루어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경호회사를 체험했다. 괴한에게 손목을 잡혔을 때 제압하는 호신술과 사격을 배웠다. 사격할 때 스크린에 레이저 빛을 잘 조준했어야 하는데 그것이 어려웠다. 그리고 직접 홀스터를 입고 삼단봉을 들도 패션쇼장까지 VIP를 안전하게 경호하는 체험을 했다. 경호 체험을 끝내고 4층 직업 세계관에 가서 4D영상관에 직업을 소재로 한 판타지 입체 영상을 보았다. 의자가 실제로 흔들리고 바람이 나와서 재미있었다.
에버랜드에서는 나는 그야말로 자유의 몸이 되어 날아다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제일 먼저 평소에 꼭 가보고 싶었던 사파리를 첫 코스를 시작으로 15개가 넘는 놀이기구를 쉬지 않고 탔다. 사파리에서 버스를 타고 운전기사 아저씨의 재미있는 해설과 함께 여러 동물들을 만났다. 황토빛깔의 큰 사자들이 무리를 지어 요염한 자세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철문 하나 하나를 지날 때마다 새로운 동물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그리고 황색 호랑이뿐만 아니라 털색깔이 흰색이 백호를 보았다. 엄마, 아빠가 모두 열성인 유전자를 갖고 있어야 태어난다. 정말 신기하고 예뻤다. 또 사자와 호랑이가 합쳐진 라이거도 보았다. 몸 빛깔은 사자와 비슷한데 약간 어두운 색으로 호랑이처럼 갈색 줄무늬가 있는데 뚜렷하지는 않았고, 짧은 갈기가 있었다. 곰이 제일 대박이었다. 버스를 알아보고 갑자기 허리를 펴 쭉 선다. 덩치도 크고 키도 정말 크다. 진한 고동색깔 털에 배가 항아리처럼 불록 나와 있었다. 버스를 막아서기도 하고 버스가 떠나자 곰도 같이 선 채로 뒤뚱뒤뚱 따라왔다. 손도 내밀고 운전기사 아저씨가 말을 시키면 사람처럼 고개를 자꾸 끄덕이는데 정말 귀여웠다. 그 외 로테이팅 하우스, 허리케인, 후룸 라이드가 기억에 남는다. 로테이팅 하우스에서 좌석에 우리가 앉아있는데 방은 360도 빙글빙글 돌아가는 착시현상이 나타난다. 허리케인은 바이킹과 같은 원리였는데 탬버린 같은 모양의 기구에 타서 뱅뱅 돌아가면서 위 아래로 추처럼 왔다 갔다 하는데 엄청 높이 올라가서 내려올 때 떨어지는 것처럼 아찔했지만 꽤 재미있었다. 후룸 라이드는 물을 따라 배를 타는 건데 물 때문인지 이동할 때는 속도가 느린 편이다. 세 차례에 걸쳐 높은 곳에서 멈칫했다가 엄청난 경사에서 추락하는데 이 때 속도가 엄청 빨라지고 스릴감 최고였다. 순간 몸이 붕 뜨는 느낌이었다. 앞에 타서 옷을 다 젖었지만 즐거웠다. 중간에 배가 출출해서 츄러스와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 맛있었다. 수학 여행 중 에버랜드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나도 모르게 가장 정신없이 지나간 곳이기도 했다.
한국 민속촌은 배산임수 지형에 자리 잡은 전형적인 조선시대 마을이다. 전통 가옥 260여 채와 생활문화가 생생하게 재현되어 있었고 선조들의 슬기와 지혜를 엿볼 수 있었다. 기후에 따른 지방별로 가옥들이 다르게 나타났다. 길가에서 한복 복장의 사람들이 떨어지는 은행잎들을 빗자루로 쓸고 있었다. 초가집들은 옥수수와 곶감을 말리고 있었고 집들 앞에는 조그마한 밭들이 있었다. 어떤 초가집에서는 당나귀를 키우고 있었다. 모든 길이 아스파트 길이 아닌 흙 길이라 색다른 느낌 이었다. 관아 뒤편에 옥사를 들어가 보았는데 나무로 되어 있었고 좁았다. 죄인들의 목에 걸치는 나무 판자도 보았다. TV에서 드라마에서만 보았던 한국민속촌을 실제로 와보니 조상들의 발자취를 직접 느낄 수 있었다. 옛 것 그대로가 잘 보존되어 있어 마치 살아있는 조선시대를 보는 듯하였다.
수학여행은 청주의 고인쇄 박물관을 끝으로 마무리 되었다. 그 곳에서는 직지의 역사에 관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직지를 만드는 과정을 밀랍 인형을 통해 자세히 볼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직지’는 우리나라 청주에 소재했던 흥덕사에서 1377년, 독일의 금속활자 인쇄본인 구텐베르크 성서보다도 78년 앞서 간행되었다. ‘직지’의 원래 제목이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직지’는 현재 우리나라에 있지 않고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다.
이번 수학여행을 통해 헛되이 노는 데에만 시간을 보내지 않고 여러 가지 배울 점도 많았고 느낀 것도 많았다. 그래서 한 코스 한 코스마다 소중하고 유익한 시간들이었다.
여수가 아닌 다른 곳에서 사람들이 사는 방식과 문화, 사회에 약간의 차이가 있었고, 그 차이들을 받아 들이는 게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흥미로웠다. 버스나 숙소에서나 언제나 늘 친구들과 함께 했기에 약간의 피곤함도 금방 잊고, 행복했었다. 그래서 아주 편하고 즐겁게 보낸 것 같다.
수학여행을 다녀오고 나니 시간들이 빨리 지나가는 것 같다. 벌써 해가 지나갔다.
이제는 소중한 추억들이 될 수학여행을 평생 가슴속에 간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