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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마음으로 나누기 - 꽃동네 및 봉사를 다녀와서
글쓴이 고윤주
걱정된다. 내가 처음 봉사를 시작하면서 생각한 말이다. 봉사를 하면서 그들과 만나는 것이 무서웠던 것이 아니었다. 어렸을 적 나는 자주 정신적 장애가 있는 동생을 가진 친구 집에 놀러 다녔는데, 그만 장애우 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같이 놀다가 그 아이가 크게 다치게 된 적이 있었다. 그 후 부터는 봉사를 하러 갈 때마다 내가 그들에게 피해만 주고 오면 어쩌나 하고 수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을 극복하게 된 계기가 바로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시작한 봉사활동 이었다. 혹시 또 불편함을 줄까봐 머뭇거리며 시작한 다문화 가정 방문에서, 나는 그들이 먼저 내민 손을 감싸 쥐기만 해도 그들에게는 따뜻한 사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이제는 다문화 가정의 아이인 선미의 손을 잡고 비눗방울을 불며 주위에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가르쳐 줄 정도로 익숙하고, 또 헤어지기 싫은 존재가 되었다.
자연스럽고 따뜻한 그 만남을 계기로 나는 더 많은 사람들과 마음을, 사랑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서의 소박한 만남이 시작이어서 그랬을까, 난 멀리 바라보기 보다는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기로 했고, 수 십 년이 지난 지금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학교에서 배움을 받고 계신 만학도 할머니를 찾아가게 되었다.
그분은 초등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패스하고 중학교에 입학하신 분인데, 초등학교 공부와 중학교 공부가 확연히 달라 힘들어 하고 계셨다. 처음 할머니를 만났을 때 난 놀랍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했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공부 그만해도 된다.” 라고 말만 해준다면 당장에 배우는 것을 그만했으면 하는데, 할머니는 몸이 불편하심에도 불구하고 학교에 꼬박꼬박 출석을 하고 계셨다. 그래도 힘든 점은 있다고 하셨다. 할머니께서 가장 어려움을 느끼시는 것은 바로 영어였는데, 아무리 혼자 해보려고 해도 진전이 없어 우리가 찾아와 가르쳐 주는 것이 정말 고맙다고 하셨다. 또 할머니께서는 지금 내가 불평하고 있는 것들이 할머님께는 평생 살면서 간절히 원하셨던 것이라고 했다. 난 내가 가진 것들을 고마워하지 않고 투정만 부린 내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끼며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노력하며 할머니를 도와드렸다. 방학에는 같이 그림숙제를 하기도 하고 여러 나라를 조사하기도 하면서 단조로운 만남이 아닌 생기 있는 만남으로 바꾸기도 했다.
만학도 할머니를 만남과 동시에 어려운 아이들을 가르치는 홈스쿨링 또한 할 수 있었다. 홈스쿨링에는 대여섯명의 아이들이 우리들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모두들 조금씩의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있어서, 처음에는 다가서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진심으로 대함으로써 아이들의 신뢰와 호감을 조금씩 얻을 수 있었고, 본연의 목표였던 학업증진 또한 실천 할 수 있었다. 요즘엔 장난꾸러기 승원이와 자주 말싸움이 나기도 한다. 수학을 먼저 할 것인가 국어를 먼저 할 것인가로 말이다. 결국 항상 아이들이 이기긴 하지만, 그 아이들이 진짜 원하는 것은 관심과 사랑을 표현하는 대화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장난스런 말싸움을 제지하려 하지 않았다. 지금도 장난을 많이 치긴 하지만, 그렇게 이야기 나누고 공부를 배우면서 우릴 가까운 사람으로 대하는 것 같은 뿌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런 것이 마음으로 나누는 진짜 즐거움이 아닐까 한다.
또 정말 운 좋게도 나는 최근에 꽃동네를 방문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바로 학교에서 수련회로 꽃동네를 가기로 한 것이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실망을 했지만 나는 왠지 두근거리고 기대되어 전날 밤을 설치기도 했다. 부끄럽지만 나는 꽃동네를 말로 듣고 사진으로 보기만 했지 직접 방문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더 큰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지금의 꽃동네는 힘들게 살아가시던 최기동 할아버지께서 자신도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남을 돕기 위해서 만든 기관이 발전하여 이루어진 공간 이라고 했다. 꽃동네에 도착하여 수녀님의 사랑의 말을 듣고 난 후 장애 체험을 했다. 쉬울 것으로 예상했던 일들이 온몸의 힘이 빠질 정도로 힘든 일이였음을 깨닫게 된 순간 이었다.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고 눈앞은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육체적 고통보다는 정신적 고통이 더 컸다. 잠깐의 순간이었는데도 이렇게 괴로운데, 평생 그 짐을 지고 가야하는 사람들의 고통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것만 같아 더 숙연해졌다.
다음날 기다리던 봉사활동에 나섰다. 인원이 많아 동네별로 나누어 갔다. 내가 배정받은 곳은 노인의 집이라고 불리 우는 곳이었다. 그중에서도 4층의 할머니들이 계신 곳을 방문 했는데, 그곳에는 80% 이상이 치매에 걸리신 분들이라 도움이 많이 필요 하다고 했다. 난 첫 만남에서 그분들이 내밀어 주신 손들을 한 분 한 분 잡아드렸다. 그것만으로도 기쁘신 듯하여 내가 더 찡해 졌다. 인사를 마친 후 본격적으로 돕기에 나섰다. 팔다리가 불편하신 분들에게 안마를 해드렸고, 저녁 찬을 잡수신 후 주무실 할머니들을 위해 이부자리도 직접 깔았다. 내가 도움을 드린 할머니 중에는 ‘김언년’ 이라는 성함을 가진 분이 계셨는데, 이분은 전체의 80%에 속한 치매를 앓고 계신 분이었다. 나의 친척 중에는 치매로 힘들어 하시는 분이 없어서 막연하게만 생각 하고 있었는데 그분을 도와드리면서 주변사람만이 아닌 본인에게도 매우 힘든 것이란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분은 힘든 발을 아주 천천히 이끌며 복도 끝에서 끝으로 계속 걸으셨는데, 손을 잡고 함께 걷다가 그분이 가려고 하시는 곳을 자꾸만 잊어 끝없는 발걸음을 내딛는 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분처럼 치매에 걸리고, 또 몸이 불편하신 분들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어 하신다는 것을 직접 체험한 시간 이었다. 내가 가진 것을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잃어버린 것 대신 채울 것임을 다짐하게 되었다.
사랑을 베푸는 것은 어쩌면 숨쉬기보다 간단한 일일지도 모른다. 만남 사이에서 마음에서 마음으로 소통을 하는 것. 그것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주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느끼게 하는 방법이 아닐까?
차츰차츰 여러 곳에서 여러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다 보니 이제는 그 만남들이 마냥 친근하다. 지금까지의 여러 사람들과의 만남과 꽃동네에서의 체험이 그들과 친근감을 마음으로 나누며 미래에 그들을 도울 일을 하기위한 발판을 마련 한 계기가 된 것 같아 뿌듯해 진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