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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문/기행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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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정지은
사람들은 행복한 상태가 되면 저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나는 일상생활을 하면서 행복하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한다. 그래서 늘 입에 미소가 걸려있는 것 같다. 특히 이번에 청담아트홀에서 이모와 함께 본 ‘세빌리아의 이발사’는 나에게 행복한 기분을 마음가득 채워준 작품이었다. ‘세빌리아의 이발사’는 원래 롯시니의 오페라이다. 하지만 이번에 본 공연은 뮤지컬과 오페라를 합친 뮤크페라라는 새로운 장르였다.
처음 입장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배우 두 분이 직접 자리로 안내하고 인사해주어서 신기했다. 그간 내가 본 오페라나 음악회들은 모두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안내했지 배우가 안내하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자리는 맨 앞자리였다. 앞자리에 앉은 것은 정말이지 최고의 선택이었다. 공연중간에 배우와 관객의 교류가 가장 많은 자리였기 때문이다.
첫 번째로 등장한 사람은 ‘휘오렐로’라는 하인이었다. 술에 취해서 의자에서 코를 골면서 자고 있었는데 그 소리의 크기는 상당했다. 일어나서 주위를 둘러보더니 사라진 악사들을 찾으며 오두방정을 떨고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나를 보고 “너 예쁘게 생겼다. 남자친구 있지?”라고 물으셨다. 그래서 나는 “아니요”라고 대답했다. 그 때 옆에 있는 그랜드 피아노에서 어떤 아저씨가 멋지게 연주를 했다. 그러자 휘오렐로가 가서 연주를 해달라고 부탁을 한다. 그러면서 “저기 있는 예쁜 애 있지? 내가 너한테 소개해 줄 테니까 연주하자. 응?”이라고 말했다. 나는 풋 하고 웃어버렸다. 너무도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나에게 오케이 사인을 보내는데 너무 웃겨서 푸하하 웃어버렸다.
그 후에 알마비바 백작이 등장하고 로지나를 위해 세레나데를 한 곡 불렀다. 그 후에 피가로가 등장을 하는데 그는 다름 아닌 김태완이었다. 이렇게 유명한 사람을 바로 앞에서 보다니 심장이 두근거렸다. 피가로가 노래를 한 곡 부르는데 정말 입이 딱 벌어졌다. 너무 잘 불러서 “우와!”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고 박수와 함성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목소리가 너무 감미롭고 성량역시 무척이나 컸다. 내 얼굴은 미소가 활짝 피어졌다. 그 이후로 나는 작품 속에 푹 빠져서 계속 그 표정을 유지했던 것 같다.
그리고 로지나를 탐내고 있는 바르톨로를 피해 로지나와 알마비바 백작을 이어주기 위해 피가로와 휘오렐로가 무척이나 많은 노력을 한다. 바로 알마비바 백작을 주정뱅이 군인으로 변장시켜서 로지나의 집으로 들여보내는 것이다. 그 장면까지도 피가로와 휘오렐로 그리고 로지나의 유모가 익살스러운 장면을 많이 연출해냈다.
그 중에 하나는 알마비바 백작에게 술취한 연기를 한 것이다. 휘오렐로가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여기 이 아줌마, 아니 할머니를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밥 줘! 밥 달란 말이야!”라고 말하라고 했다. 나는 할머니라는 말이 나오자 마자 고개를 젖히며 폭소했다. 그러자 알마비바 백작이 “무슨 그런 실례의 말씀을.... 어! 맞네!”라고 했다. 그러면서 술 취한 연기를 했다. 피가로가 같이 하면서 나에게 “학생, 자리 잘못 잡았네. 미안해요.”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그저 웃었다. 그 유명하신 분이 나에게 말을 걸어주셔서 너무 좋았다.
로지나의 집 안에서 알마비바 백작은 바르톨로를 피해 사랑을 속삭인다. 물론 로지나는 알마비바가 백작이 아닌 군인으로 알고 있다. 피가로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알마비바는 자신이 백작이라서가 아닌 인간으로서 사랑해주길 원해서 그랬다고 한다. 마지막에 그가 백작임을 밝혔을 때 로지나는 진정으로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사진을 찍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이모와 함께 줄서서 사진을 찍었다. 그 때도 피가로가 나에게 “수고했어요. 앞에 앉아서 그래.”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허리를 푹 숙이고 “감사합니다!”하고 인사했다. 입이 귀에 걸려있었다. 이건 과장된 말이 아닌 진짜였다. 나는 평소에도 많이 웃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같은 표정을 유지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사진을 찍고 내려오면서 이모께 말을 거는데 입이 경직되어 있었다. 새로운 경험이었다. 집에 오면서 열심히 이모와 수다를 떨었는데 주변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이고 행복이 넘쳐났다.
이번 공연은 보면서 나는 계속 웃었다. 여태까지 내가 경험해 보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평소 음악회나 오페라는 굉장히 격식을 차리고 감동을 느껴야하는 반면에 이번 공연은 웃기면 웃을 수 있는 상큼한 공연이었다. 장면 하나하나에 배우들이 짓는 표정이 살아있었다. 노래는 내 심장을 울릴 정도로 멋졌다. 그 중에서도 역시 피가로의 노래가 최고였다. 피가로가 노래하는 순간 나는 그 공연장에서 혼자 있는 느낌을 받았다. 이때까지 봐온 어떠한 공연보다도 살아있는 무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