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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소설

제목 달에 핀 해바라기
글쓴이 김률희
저번부터 수상하다 싶은 아이가 있어 아파트 6층 창문에서 우리 동네 사람이 키워 온 꽃 정원이 훤히 들여다볼 수 있어 감시하고 있다. 우리 아파트 사람들이 돈 모아서 정원 하나 지은 건데 저 애가 꽃을 함부로 밟을 것 같아 의심스러웠다. 항상 정원을 어슬렁거리다 사람들이 지나갈 때 그 정원을 유유히 빠져나간다. 사람들이 없을 때 다시 나타나서 눈치를 살피는 것 같더니 꽃에게 손을 뻗는다. 계단으로 올라가는 길에 3층에서 우편물을 가지고 온다는 게 깜박하는 바람에 가져가려다 창문의 풍경을 우연히 보았는데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남자애가 꽃에 손을 뻗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발소리를 쿵쾅거리며 서둘러 내려가보니 아까 꽃 앞에 쭈구려 앉아서 손을 뻗었던 남자애가 갑자기 없어진 것이다. 빨리 달렸다고 생각했는데.
놓친 게 아까웠지만 졸린 관계로 우편물에 들은 서류봉투를 꺼내 들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6층에서 울려 내릴 때에야 비로서 생각하게 된 건데 꽃을 밟으려고 한다는 이유만으로 달려갔어야 하나 싶었다. 밟았으면 다시 심으면 되잖아. 잘못 본 거 일수도 있는데 무조건 눈에 보이는 대로 밟는다고만 생각하다니. 모르는 애한테 미안해질 것 까지는 없다.
집으로 들어와서 일단 서류봉투부터 뜯어 열어보았다. 잡지책이었다. 쇼핑물이 보내온 게 틀림없었다. 잡지책을 보려고 바닥에 드러누운 채 책을 펼쳤다. 모델이 입은 옷에 감탄하며 보다 팔 아파 스르르 내려져 책을 펼쳐놓은 채로 얼굴에 떨어트린 채 잠들었다.
핸드폰 전화 벨소리가 시끄러워 억지로 눈 뜨며 깼다. 몇 시간이 지났는지 몰라 손목시계를 보자 낮에 왔는데 벌써 밤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대체 몆 시간이나 잔 건지 모르겠다. 저녁을 안먹어서 그런지 배가 고팠다. 차려놓은 게 없어 슈퍼에 가서 라면이라고 사먹으려고 나왔다.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와 문이 열리는데 정원 쪽에서 어떤 빛이 났다 안났다 하는데 누가 장난치는 건가 싶어 빛이 나는 쪽으로 갔다. 정원에서 꽃들 중 빛을 내는 꽃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다름 아닌 해바라기였다. 해바라기가 빛을 내는 것도 신기했지만 낮에 봤던 꼬마가 해바라기와 얘기하고 있는 게 아닌가. 꼬마가 해바라기와 얘기하는 걸 엿듣기로 했다.
"오늘도 가게 해주는 거지? 힘들게 왔어. 부모님이 감시하느라 빠져나오기 힘들었거든."
"당연하지. 너랑 같이 달을 보게 되서 좋아."
해바라기가 사람의 물음에 말로 답했다. 평범한 해바라기가 아닌 게 분명했다. 바람이 살살 불어와 밤이라 추워 그람 "아, 춥다." 라고 말해버렸다. 꼬마 애가 날 쳐다보았고 해바라기도 무섭게 고개를 돌려 날 쳐다보는 것 같았다. 불안해서 눈치를 살피는데 꼬마가 더 불안해하는 재스처를 취해 무슨 짓은 하지 않겠다 싶어 다행이었다.
"미안. 방금 얘기도 다 들었어. 비밀로 할게."
꼬마는 내가 한 말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제 돌아가야지. 부모님이 걱정하시겠어."
"아직은 안되요. 해바라기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어요."
"해바라기가 부탁도 할 줄 아나. 알았어. 어른이 옆에 있으니까 걱정은 덜 하시겠지. 다샌에 얘가 낮에 뭘 하고 있었는지 얘기해."
꼬마는 망설이다 해바라기를 보고 해바라기가 고개를 끄덕이자 다시 날 쳐다보며 얘기했다.
"정원에서 꽃 꺾거나 짖밟은 건 아니니까 오해는 말아주세요. 오해하는 어른들이 계셔서요."
난 속으로 뜨끔했다.
"낮에는 해바라기가 땅 속으로 들어가있어요. 그래서 해바라기가 보이진 않지만 얘기는 할 수 있어서 말하고 있었어요. 이 꽃이 평범한 꽃인지 아닌 걸 알고 물었어요. '넌 왜 밤에만 빛을 내며 피니?' 라고요. 하바라기는 꽃들의 대화에서 인상깊은 말이 있었기 때문이래요. 다른 끛들이 컴컴한 밤에 뜨는 달이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 달을 보고 싶었지만 해바라기 특성 상 달을 볼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마법을 써서 아침부터 밤이 될때까지 날마다 기다리게 된 거에요. 하지만 무리해서 기다리다보니 해바라기가 시들고 있어요. 해바라기가 시들지 않게 도와줘야 해요."
지금 보니 다른 평범한 해바라기들보다 조금 더 잎이 말라가고 줄기가 구부러져 있었다.
"근데 해바라기가 빛을 어떻게 내는 거야?"
"내 생명체에는 마법이 들어 있어. 그 마법으로 달과 같은 빛을 만들어 내. 달이 날 바라봐줬으면 해서 빛을 내는 거야."
해바라기가 대신 말해서 속으로 놀랐다. 이건 전형적인 이뤄지지 않을 해바라기의 짝사랑이다. 가만히 두는 게 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가만히 놔둘수록 시드는 해바라기를 위해 뭔가 조금이라도 도와주고 싶었다.
"도와줄게. 뭘 원하는지 말해봐."
해바라기는 고민하듯 하다 결심한 듯 말했다.
"나와 얘기하는 친구가 되어줘, 그거면 돼. 정말이야."
이 밤에는 나는 꼬마와 해바라기 셋이서 오랫동안 얘기를 나눴다. 나는 해바라기의 마음이 어떤지 알게 되었다. 별거 아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해바라기는 무리하지 말라면서 나와 꼬마를 사라지게 해 각자 방에다 데려다주었다. 방에 왔을 때는 꿈인가 싶어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잤다. 난 꼬마와 해바라기를 밤마다 만나 애기를 나눈지 2주일이 지난 다음 날 밤에 그 둘을 찾으러 갔을 때 꼬마가 하늘을 바라보며 손을 뻗고 있었다. 꼬마도 같이 하늘을 봤더니 해바라기가 진짜 달에게로 다가가고 있었다. 해바라기를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손을 뻗어도 잡히지 않는다는 걸 알았는지 철퍼덕 덜렁거리며 떨어트렸다.
"누나! 이러면 안되잖아요! 해바라기는 살 길 원했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한 팔로 꼬마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해바라기는 달은 그만 봐도 되고 너한테 고민이 됬다면 어떻게든 원래대로 돌려놓아달라고 부탁했을 수도 있어. 그렇지만 해바라기는 단지 얘기하는 친구가 되어 달라고만 했어. 달을 보며 얘기 할 친구가 필요했던 걸거야. 갈 때 외롭게 가기 원치 않았겠지. 달을 정말 사랑했던 거야. 사랑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가버리지도 않았어. 해바라기와 오랜 시간을 지낸 만큼 떠나는 게 슬프겠지만 기분 좋게 보내 주자."
"응."
꼬마는 옷 소매로 눈물을 담고 해바라기를 향해 웃었다. 나도 마찬가지로 따라서 웃었다. 저 멀리 달나라로 날아가는 해바라기는 다 시들해져 있을 줄 알았는데 줄기도 구부려지지 않고 곧게 세워진 채 노랗게 활짝 피어 달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우리는 달에게로 향하는 해바라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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