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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소설

제목
글쓴이 최효서
오늘도 꿈을 꾸었다. 검은 남자가 칼을 들고 들어와 날 찌르려고 할 때 꿈에서 깨어났다.
4년 전 하나뿐인 남동생이 혼자 집에 있다가 강도에게 죽임을 당한 뒤로 하루도 빠짐없이 악몽을 꾼다. 내용은 달라도 매일 똑같은 남자. 형태도 모습도 없지만 검은색의 남자가 매일 꿈에 나온다.


동생의 장례식 때 난 울지 않았다. 슬펐지만. 정말로 울고 싶었지만. 예쁘던 엄마도 강해 보였던 아빠도 바닥에 쓰러져서 울었다. 나까지 울면 동생이 슬퍼할 것만 같아서 참았다. 사람들은 내게 피도 눈물도 없다고 말했지만 우리 식구 중에서 가장 충격을 받은 사람은 나였다. 매일 생각을 했다. 내가 동생 대신 그 자리에 있었다면, 또는 동생이 혼자 집에 있게 내버려두지 않았다면, 내가 옆에 있었다면. 슬픔이 강도에 대한 분노로, 분노가 나에 대한 자책감으로 변해가면서 난 점점 달라져갔다. 하루도 빠짐없이 꿈을 꿨다.


식은땀을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에 몸을 기대고 앉았다. 찬바람이 불어 몸이 떨렸다. 갑자기 찬바람 때문이 아닌 다른 이유 때문에 몸이 떨렸다. 내가 문을 닫지 않았었나. 아닌데. 문을 닫았는데. 잠결에 잘못 생각한 게 아닌지 다시 문을 쳐다보았다. 분명히 사람이 들어올 수 있을만큼 문이 열려 있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지러웠다.
슬리퍼를 신고 천천히 일어났다. 문 사이로 나갔다.


우리 집은 내 방을 나서면 복도 끝에 거실이 있다. 복도를 따라 거실로 가는데 끝에 뭔가 있는것 같은 느낌이, 아니 확신이 점점 강해졌다. 발을 떼면 뗄수록 돌아서서 방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발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앞으로 갔다. 맞다, 무언가 있다. 땀이 흐르지만 닦지도 않았다.

거실에 왔다. 검은 실루엣이 내 인기척에 서서히 돌아섰다. 어둠 속이었지만 난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씩 웃어보이는 그 남자가. 거실 쪽을 바라보면서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한 발씩, 한 발씩. 뒤로 걸어갔다. 그 남자도 나를 천천히 따라왔다. 동생의 마음이 꼭 이랬을까. 무서움, 두려움, 아무도 나를 구하러 오지 않는다는 절망감, 이제 혼자라는 외로움. 동생은 어떤 공포 속에서 눈을 감았을까. 그 억울한 감정이 느껴지는 것 같아 눈물이 흘렀다.

이제 조금만 가면 되는데, 문이 저기 있는데. 난 멈춰섰다. 아니, 움직이지 못했다. 그 남자가 코앞에 와서 멈추었다. 내 귀에 들리는 낮은 목소리. 안녕, 네가 누나구나? 무서움, 공포감 따위는 이제 상관없었다. 동생이, 하나뿐이었던 동생이 너무 안타까워서, 보고싶어서, 불쌍해서. 눈물이 쉴새 없이 흘렀다. 순간 이 남자가 너무 미웠다. 우리 가족한테 왜 이런 짓을 하는지, 나마저 죽이면 우리 엄마 아빠도 죽이려고 할까. 왜 이렇게까지 나를 괴롭히지.

"나한테 왜 이래."
"왜라니?이유가 있었나..기다려봐. 생각 좀 하고."
미웠다. 죽도록 미웠다. 이유도 없이 우리 가족을 괴롭혔다는 사실이 너무 싫었다.
"쓰레기."
"맞아, 쓰레기. 똑똑하네." 남자가 웃는다. 이제 분노만이 내 안에 남아 그 남자 얼굴을 처음으로 똑똑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난 잠에서 깼다. 식은땀이 등에서부터 발목까지 꽉 차있어 마치 샤워를 바로 하고 옷을 입은 느낌이었다. 동생의 얼굴이 생각났다. 오랜만에 동생한테 가봐야지.

이제 난 꿈을 꾸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