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마당 > 글쓰기마당 > 동화/소설

동화/소설

제목 현관 앞 과일맛 캐러맬
글쓴이 최하늘

작성자: 이거 쓰고 공부하러 갈 반도의 흔한 고3

코로나로 학교에 가지 않던, 2020년의 어느 날에.



현관 앞 과일맛 캐러맬


 오전 1020. 어김없이 같은 시각에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현관문 앞을 내다보니 오늘도 무언가 놓여 있었다. 이 이상한 일이 반복된 것은 벌써 열흘이 넘었다. 정확히는 13일째이다. 내 현관문 앞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것들이 놓인 채 발견되는 것 말이다. 오늘은 편의점에서 잔돈을 주고 사는 까만 봉투 안에 고양이용 닭 가슴살 캔이 두 개 들어 있었다. 어제는 유통기한이 이틀 지난 즉석 밥이었다.

 

 처음에는 이 물건들에 무언가 의미가 있나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렇지만 휴대용 휴지, 마스크팩, 일회용 칫솔, 과일맛 캐러멜 캔디 ……. 이 물건들은 일관성도 없는데다가 반절 정도는 유통기한이 지난 즉석 밥처럼 무언가 결함이 있었다. 그래서 결국 이 물건을 놓고 가는 사람의 심리를 파악하는 것에 실패했다.

 

 며칠째 반복되는 이 기현상은 나의 예민함을 자극하기엔 충분했다. 프리랜서로 살면서, 정확히는 밤낮을 바꿔 생활하는 일러스트레이터로 살면서 오후 1시 이전에 일어나는 것은 매우 불쾌한 일로 여겨졌다. 하루라도 1시 이전에 일어나면 그 주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강제로 아침에 기상하니 정말 기분이 새로웠다. 새롭게 나빴다는 뜻이다. 그러지 않아도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재택근무 하는 사람들도 늘고 아이들도 학교에 가지 않아서 층간 소음이 심해졌다. 사람들이 모두 외출한 주중 오후는 나에게 정말 행복하고 평화로운 시간이었는데 그 시간을 뺏겨버린 느낌이었다. 기분이 아주 좋지 않았다.

 

 그날 저녁, 나는 더 이상 매일 아침 내 현관 앞에서 일어나는 만행을 참아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처 밤낮이 바뀐 사람을 괴롭히는 그 무자비한 아침형 인간을 잡기로 한 것이다. 우선 내일 초인종이 울렸을 때 바로 나가서 일을 해결하는 게 내 목표였다. 만약 놓칠 경우, 경비원께 도움을 받을 예정이었다. 마음 속으로 계획을 자세히 세우고 이제 내일 그 아침형 인간의 모습을 확인해 이 일을 해결하면 나는 자유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잠에 들었다.

 

 그런 행복한 상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선 나의 계획이 실패한 원인은 두 가지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내가 지독한 저녁형, 아니 새벽형 인간이라는 점이다. 내가 매일같이 오전 6시에 잠드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초인종이 울리지도 않았는데 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안일한 과거의 내가 조금 원망스러웠다. 나는 핸드폰 알람, 자명종 알람, 엄마의 물 붓기 등 어떤 방법에도 굴하지 않고 자는 사람으로 유명했다. 단 하나, 초인종 소리에만 귀신같이 일어나는 특이한 체질의 소유자였다. 결과적으로 나는 1020분에 초인종이 울리자 겨우 눈을 떴다. 핸드폰에는 이미 알람이 울렸다는 알림만 떠 있었고 서둘러 현관으로 가 보았으나 당연히 아무도 없었다.

 

 두 번째는 다음 날 오전 9시부터 1분 간격으로 맞춰진 알람을 1016분에 겨우 듣고 일어난 뒤 경비원분의 도움을 받아 매복했을 때 문제의 그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경비원께서 내 말을 믿어 주셔서 다행이지, 하마터면 이상한 거짓말을 한 이상한 사람이 될 뻔 했다.

 

 우리는 이 이상한 현상을 세 사람만 아는 문제로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결국 나는 엘리베이터에 매일 1102호 앞에 물건을 놓아두고 갔던 사람이나 그런 사람을 알면 경비실로 연락하라는 취지의 안내문을 프린트해 붙였다. 그리고 예상 외로 그 사람은 그 안내문을 붙인 날 바로 정체를 드러냈다.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과정은 꽤 길고 허무했지만 결론을 말하자면 그 일은 사람의 소행이었다. 모든 진실을 알게 된 지금, 소행이라고 부르기에는 미안하고 그 일을 한 사람에게는 선행이었다. 나도 내가 지독한 새벽형 인간이 아니었다면 처음부터 그것을 선행이라고 불렀을지도 모른다.

 

 발단은 이러했다. 누리유치원 햇살반에 다니게 될 5살짜리 꼬마 어린이 유이림의 일과는 8시에 시작된다. 그리고 10분간 세수를 하고 머리를 빗는다. 아침 식사는 810분부터 30분간 이어지고 식사가 끝난 뒤 양치를 하는 좋은 습관을 가지고 있다. 양치를 끝낸 뒤 840분부터는 어린이 프로그램을 시청한다. 1시간 10분간의 방송 시청이 끝나면 유치원에서 배웠던 율동 및 어린이 체조를 하는 시간을 갖는다. 물론 아래층 사람들이 시끄럽게 생각하지 않도록 앉아서 진행한다. 그리고 이 율동과 체조가 끝나면 1010분이다.

 

 이 어린이가 나의 잠을 깨우게 된 원인은 여기서 시작된다. 1010분에 체조가 끝난 뒤 그 다음 일과를 시작하기까지는 20분이라는 시간이 남는다. 요즘 유행하는, 유치원도 쉴 정도로 무시무시한 전염병 때문에 2주간 집에서 나올 수 없는 불쌍한 위층 언니에게 일하러 간 부모님 몰래 일용할 양식을 전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이 언니는 평소에도 자주 모습을 드러내진 않았다. 몇 년 전 이사 온 첫날, 엄마 손을 잡고 떡을 선물하러 갔을 때 이후로 다섯 번도 보지 못했다. 그렇지만 주기적으로 없어지는 우편함의 편지들로 그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 우편물의 양이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언니는 그 '자가 격리' 라는 힘든 임무를 맡은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다. 그것이 사건의 전말이었다. 불행히도 나는 우편물을 매주 토요일에 수거했다. 3주 전 금요일, 내가 실수로 발목을 접질려서 낫는 데 8일이 걸리지만 않았더라도 우편물이 쌓일 일은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프리랜서인 나에게 올 중요한 우편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일이 많은 기간이면 우편물을 한 달 정도는 방치해 둘 때도 있었다.

 

 그리고 이 꼬마 어린이는 아직 7mm 정도의 크기로 쓰여진 'cat food'라는 글자를 읽기에는 좀 어렸으며 자가 격리가 2주라는 사실은 알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월요일부터 시작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으며, 유통기한과 음식 섭취의 상관관계를 깨닫지 못한 상태였고 마스크와 마스크 ''의 차이점을 알지 못했다.

 

 무척이나 당황한 얼굴의 보호자와 동행한 그 어린이는 나에게 피해가 되는 행동일 줄 몰랐다며 울먹이며 사과했고, 나는 내가 무척이나 고마우며 그것이 용감하고 착한 일임과 동시에 칭찬받아야 마땅한 일이라고 말하느라 10분을 소모했다. 다만 오후 1시 이전에 초인종을 누르는 행위는 자제해 달라고 최대한 돌려서 설명해야 했다. 그리고 보호자는 고맙고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내 손에 근처 제과점의 케이크 상자를 들려주었다.

 

 케이크 위의 과자 장식은 달았다. 마치 1020분에 초인종이 울린 지 나흘째에 현관 앞에서 발견했던 과일맛 캐러멜처럼.

다음글
이름 모를 벌레
이전글
종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