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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시

제목 참외
글쓴이 고은영

참외


젊었을 때 치료를 받지 못해

이빨이 다 빠졌다는 할머니는

유난히도 참외를 좋아하셨다.


이렁이렁 홍시도 아니고

물렁물렁 복숭아도 아닌

단단한 참외를 좋아하셨다.


씹는 것이 어려운 할머니는

참외를 반으로 갈라

앞이 다 닳아 얇게 갈린

전용 스덴 숟가락으로

박박 참외 속을 긁어 드셨다.


가운데 가장 달콤한 참외 속은

제일 먼저 도려내어

내 입에 가득 넣어주시고

할머니는 껍질이 종잇장처럼 되도록

정성껏 참외를 긁어 드셨다.


올 여름에도

길가엔 어김없이

노오란 참외를 가득 실은

과일트럭이 서 있다.


한 봉지 사들고 집으로 와

한 알 골라 깨끗이 씻어

텅 빈 거실 낡은 선풍기 앞에 앉아 본다.


반으로 가른 참외에

그득 차 있는 참외 속...

목이 멘다.


(고은영, 4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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