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얀 종이컵을 집어 들고
저리도 좋을까
함박 웃음
누나의 볼펜을
몰래 꺼내 와
제 이름 석 자를
꾹꾹 눌러 적고는
물 한 컵 따라
한 모금 물고는
웃음
물 두 컵 따라
두 모금 마시곤
물 세 컵 따라
휘휘 돌려 헹궈 놓는다
가볍고 집기 좋아
작디 작은 네겐
안성맞춤
쓰면 쓸수록
자연에게 미안해
무거워지는 마음에
고사리손이 헹궈 놓은 종이컵을
가만히 햇볕에 말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