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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시

제목 너의 카메라
글쓴이 강윤희

찰칵, 찰칵.

 

너는 풀밭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렀다.

 

나를 향해, 우리를 향해.

아름다운 하늘을 향해, 풍경을 향해.

 

언제부터였던지, 너는 우리의 모든 순간을

너의 카메라에 담아내고 싶어 했다.

 

끝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다가도

나와 시간을 보낼 수 있어

한없이 행복하다고 웃던 너.

 

그러다 어느 순간,

너는 나와 무엇을 할 때마다

단 두 장씩만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너는 한 장에는 너를 담고,

또 한 장에는 우리를 담았다.

 

너는 더 이상 우리 시간의 흔적을 남기다

우리의 시간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

나와의 시간을 더 즐기지 못하는 것이 싫다고 했다.

 

그때까지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몰랐다.

 

그렇게 너의 카메라에만 너를 잔뜩 쌓아두고,

너의 카메라 속 우리의 추억들만을 남겨두고,

너는 떠나갔다.

 

그놈의 카메라를 좀 내려놓으라고,

나를 위해 네 모든 순간을 남겨 놓을 필요 없다고,

나는 너와의 추억을 더 만드는 게 좋다고,

그렇게 말해줄걸.

 

플래시 빛에 얼굴을 찡그리지 말고

한 번이라도 더 네게 환하게 웃어줄걸.

 

셔터 소리가 시끄럽다고 투덜거리지 않고

너를 한 번이라도 더 꽉 안아줄걸.

 

왜 나는,

이렇게 못난 나는,

 

너의 영정 앞에 앉아

너와 내가 가득 담긴

너의 카메라만 껴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을까.

 

 

 

( 고등학교 3학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