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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레이디 맥도날드
글쓴이 이민정

[패배자가 아닌 ‘레이디’]


세상은 계속해서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요구한다. 직장을 얻으면 재산을 모아야 하고,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아야 하고, 집은 넓혀야 한다. 생애주기별 과제를 수행하면 정말 삶이 나아지는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기준에 빠지지 않고 부합할 것을 끊임없이 강요한다. 그러다 어떤 이유로 상황이 나빠지면? 패배자가 된다. 


김윤자는 패배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달렸다. 어려운 집안 사정 속에서 대학 공부를 마치고 커리어우먼이 되었고, 일을 하며 번 돈으로 취향을 샀다. 한편으로는 선 자리를 주선해주는 미용실 원장에게도 내심 잘 보이려 애썼다. 그럼에도 세상이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자신의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일보다는 그 시대 여성 노동자가 맡았던 일을 했다. 소위 말하는 ‘있는 집 여자들’에게서 보이는 여유로움이 보이지 않아 마땅한 혼처가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래서 오빠 소유로 된 집에서 어머니를 모시며 살았다.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제대로 독립하지 못하고 가족도 꾸리지 못한 미완성으로 보였다. 취향을 만들고 지키는 모습도 허영으로 평가받았다. 


그럼에도 주목할만한 것은 집을 떠나 길에서 생활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는 삶을 선택하며 살았다는 것이다. 노숙자라 불리지 않는 것을, 길에서 자지 않는 것을, 남자 노인들이 가는 탑골공원이나 서울역에 가지 않는 것을. 책을 읽기 힘드니 신문을 읽는 것을, 일본문화원에서 영화를 보는 것을 선택했다. 삶에 끌려가지 않고 주도권을 잡으려 부단히 애썼다.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도 그랬다. 그런 사람을 두고 패배했다고 쉽게 말할 수 있는가. 


민폐를 끼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던 김윤자가 ‘다 사정이 있겠지’하고 넘기듯 사람마다 수많은 사정들이 있다. 그걸 잊고서 ‘저 사람은 대체 왜 저럴까’ 하며 책망할 때도 있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들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특히 무해하지만 다수의 사람들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눈총받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누군가를 함부로 판단할 권리가 내게 없음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이 도서는 (사)한국독서문화재단의 독서문화사업으로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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