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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장 보드리야르 - 시뮬라시옹
글쓴이 조단비


<시뮬라시옹> 장 보드리야르 지음 / 하태환 옮김





1. 시뮬라르크와 시뮬라시옹


시뮬라르크(simulacre)는 흉내라는 뜻으로 시뮬라시옹(simulation)은 그러한 흉내가 현실을 대체하는 작업을 의미합니다. 시뮬라시옹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실재와 가상을 혼동하게 하는 미디어의 기호학’과 유사합니다. 실제 보다 더욱 실제와 같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것을 창작함으로써 파생되는 어떠한 감정들, 인식, 소비, 자본과 시장 경제, 정치 등에서의 효과를 지닌 복제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소설은 ‘알고 있는 것’으로부터 쓰임으로 현실을 반영하지만 그와는 동떨어진 허구입니다. 독자는 허구임을 알면서도 매체에 감응하여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어떠한 영향력에 앞서 실재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니체가 이야기 하였듯이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닌 동굴들”이라고 볼 수 있으며 개인의 경험적 연상과 해석과 사실이 혼재한 현실을 일컫습니다. 예를 들면 디즈니랜드에서 배우들은 그들이 실존하는 것이 아님에도 그들이 연기하는 역할과 같은 상징적인 기호 아래에서 다른 사람들의 욕구와 상응하여 특정한 행위나 소비를 이끌어냅니다. 실제의 배우와 배역이 가진 삶(정체)이 다름에도 사람들은 배우를 바라보며 그들이 연기한 배역을 떠올립니다. 현실에 대체되는 이미지는 또 다른 현실을 낳고, 가상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실의 생산과 재생산의 히스테리. 다른 생산, 가치와 상품의 생산, 정치적 경제의 좋은 시절의 생산은 오래전부터 고유한 의미를 상실하였다. 모든 사회가 계속하여 생산하면서 그리고 과잉 생산하면서 추구하는 것은 그를 빠져나가는 실재를 부활하는 것이다. (중략) 이처럼 도처에서 시뮬라시옹의 파생사실주의는 현실 그 자체와의 환각적인 유사성으로 번역(p59)」되고, 「모든 실체와 모든 목적성을 취소시키는 이러한 폭력을 시스템 스스로 자신의 구조 위에 행사한다(p61)(생략) 이 권력은 단지 사회적 수요의 대상일 따름이고 따라서 단지 수요 공급 법칙의 대상일 따름이기 때문에 더 이상 폭력과 죽음의 주체가 아니다. 정치적 차원에서 완전히 추방되어 권력은 다른 모든 상품처럼 대중생산과 소비에 속한다.(p64)」하는 표현에서와 같이 이러한 작업은 ‘주체와 대상을 연결하고 지식에 방향을 주는 원칙들을 새롭게 재구성(p78 상대성 이론에 관한 주석)’하는 지식과도 유사하며 수요와 공급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거나 이후의 언급대로 나아가 기호를 조작합니다. 장 보드리야르는 《시뮬라시옹》에서 이를 다양한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드러내며 무엇이 실재인가라는 물음을 던집니다.


2. 플라톤으로부터 니체와 들뢰즈, 보드리야르에 이르기까지


시뮬라르크에 관한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플라톤이 등장합니다. 플라톤에게 있어 초월적인 실재(이데아 : Idea)는 항상 참된 것으로 그것이 상징적으로 표출되는 현실은 불완전하며 이데아를 모방한 것입니다. 이데아는 경험적 차원에서 발견되지 않으나 이성에 의해 사고의 대상이 되며 실재하는 것으로 칸트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절대적이며 선험적인 가치에 속합니다. 이때 감각세계에서 현실은 이데아의 모방에 속하기에 이데아와의 유사성을 띄고 있지만 시뮬라르크는 그와 달리 복제에 관한 복제로 인해 혼란을 야기하며 ‘원본과 실재에 관한 동일성의 상실’을 부르는 존재입니다. 반면 니체는 그것을 구분할 방도가 있는가를 이야기 하며 어떠한 작용을 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언급하였으며, 《시뮬라시옹》에서 차용한 들뢰즈의 의견에 따르면 동일성이란 차이성에 의한 결과이며, 현실은 시뮬라르크의 연속이고 본질은 감추어져 있으므로 그 자체로 가치의 생산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게 함으로써 어떤 것도 원본과 복사본이 될 수 없음을 이야기 합니다. 이 이야기는 즉, “그것은 원본과 복사본, 모델과 재생산을 동시에 부정하는 긍정적 잠재력을 숨기고 있다. 적어도 시뮬라르크 속에 내면화된 발산하는 두 계열들 중, 그 어느 것도 원본이 될 수 없으며 그 어느 것도 복사본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플라톤이 공동의 것에 주목하였다면 들뢰즈는 차이에 의해 형성되는 부분에 주목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보드리야르는 “허무주의는 기묘한 방식으로 더 이상 파괴 속에서가 아니라 시뮬라시옹과 저지 속에서 완전히 실현되었다”며 이미지에 관한 정의와 함께 대중적으로 포진한 시뮬라르크의 형태를 이야기 하는데, 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미지는 깊은 사실성의 반영이다. (선)

이미지는 깊은 사실성을 감추고 변질시킨다. (악)

이미지는 사실성의 부재를 감춘다. (위장)

이미지는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어떠한 사실성과도 무관하다. : 이미지는 자기 자신의 순수한 시뮬라르크이다.


요약하면 시뮬라르크는 ① 유행의 메커니즘을 따르는 자기증식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② 사실을 은폐하고 왜곡하여 혹은 부각 탈락 등의 형식으로 가치를 부여함으로 혼란을 일으키거나 ③ 통제와 감시를 맡고 있고 ④ 사실과 무관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시뮬라르크는 실존을 잃어버린 세계, 그러나 그 자체가 실존인 세계에 있어 현실을 의미합니다.




3. 실제처럼 보이는 가상의 세계


“사람들은 그들이 제기할 수 있는 모든 질문들에 대한 대상, 대답을 선택하기 위하여 여기 온다. 또는 차라리 그들 자신은 대상들이 구성하는 기능적이고 방향지어진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서 스스로 온다.(p127)”

“모든 내용물들의 이러한 중화 너머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매체가 그 형태 속에서 작업하기를 바랄 수 있을 것이며, 형태로서의 매체가 가한 충격을 사용해서 실제를 변형하기를 바랄 수 있을 것이다.(p148)”

“의미 너머에는 의미의 중화와 함열로부터 유래하는 미혹이 있다. 사회적인 것의 지평 너머에는 사회적인 것의 중화와 함열로부터 기인한 대중덩어리들이 있다.(p150)”

“실재로부터 출발하는 것, 실재의 주어진 바로부터 출발하여 비현실, 상상적인 것을 만드는 것은 이제 가능하지 않다. 그 과정은 이제 차라리 거꾸로일 것이다.(p202)”

모사된 이미지가 현실을 대체하며 더 이상 모사할 실재가 사라짐으로 하이퍼리얼리티((hyperreality)가 생산된다는 보드리야르의 주장은 실제의 경험이 아닌 가상적 세계에서의 움직임, 예를 들면 미사일 발사에 관한 모의실험의 결과가 실제와 별개로 중요하게 여겨지며 현실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현실이 비현실로부터 파생되어 가장된 이미지를 모사하는 역설적인 상황은 ‘의미가 빈 형식 자체가 의미를 초월해버리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역자의 이야기와 같으면서도 그것이 ‘필요’에 의해 혹은 ‘초월할 수 없음으로 초월하게 되는 일’이 부득이하게 일어남을 뜻하는 건 아닐까 합니다. 생산 관계 보다 기호로서의 가치를 중시하는 사회적 조건이 소비 사회의 일면이라면 문화적 차원에서 우리가 소비하고 있는 것은 상품이 아니라 광고에 나온 이미지에 가까울 것입니다. 인터넷을 포함한 각종 첨단기기를 통해 세계화 된 시대에서 외람되게 일어나는 소통의 단절을 짚는듯이,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은 자칫하면 극단적인 허무주의로 귀결될 수 있는 문장 속에 사실과 관념적 대상과의 공존을 이야기 하는듯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