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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라북클럽

제목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글쓴이 나난희

*이 도서는 (사)한국독서문화재단의 독서문화 사업으로 지원받았습니다.

사람들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일까? 가족이 개인의 인생에 훨씬 중요하고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 같은데 앤드루 포터의 소설에선 가족의 연대감은 희미하고 친구, 불륜이라 부를 수 있는 연인, 이웃이 인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가족이 끈끈하지 않기 때문에 가족 이외의 사람에게 더 큰 영향을 받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기억한다. 충격적인 일을. 그리고 기억은 왜곡된다. 시간이 지나면 진실은 희미해지고 사건만 남는다. 열 살 때 함께 놀다 사고로 친구가 죽는다. 친구를 구하려고 소방관 둘도 죽는다. 죽은 친구가 평생을 따라다닐 거다. 그래서 갓 어른이 된 화자는 죄책감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유일한 목격자였던 나는 스스로 가해자가 된다. 내가 녀석을 밀어 넣었는지, 들어가라고 부추겼는지 스스로도 확실치 않다. 다만 꿈에서도 그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아마 평생을 따라다니는 사건이 될 거다. '구멍'이라는 이 단편집만 약간 결이 다르고 다른 작품들은 희미한 가족 이야기다.

작가는 당신의 가족은 안녕하신가?라고 묻고 있는 것 같다. 가정이 흔들리고 있는 데 흔들린다는 느낌마저 들지 않는다. 그냥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아버지들은 떠돌거나 일찍 죽었거나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다. 새 아버지마저 엄마의 재산을 투자해 돈을 날려 가정을 휘청하게 만드는 역할이다. 부부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커플도 '상대방이 내게 거의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그러다 보니, 나도 나 자신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라고 말한다. 다들 상대에게 기대하는 게 없다. 기대하는 게 없는 관계라서 삭막하다.

작품마다 의사라는 직업이 등장한다. 아버지, 내 집에 살게 된 교환학생의 부모, 애인, 남편, 누나의 결혼 상대자가 의사다. 그들 모두 무능력하거나 희미한 존재다. 이토록 많은 의사가 등장하는데 의사 직업이 구체적으로나 긍정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작가는 의사에게 적대감도 없어 보인다. 직업이 꼭 의사일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의사라고 알려준다. 뭔가를 고치는 사람들이지만 자기 자신이 병들어 있는 의사들이다.

전체적으로 매 단편이 흡입력 있게 그려진다. 꼭 작가가 겪었던 일을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어"라고 이야기해 주고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설정인 여대생과 늙은 남자 교수의 사랑 이야기도 나를 매혹시켰다. 독특한 소재도 충분히 있을 법하다고 느껴진다.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불안해하고 겁을 내고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며' 살아가고 있다. 의미를 부여하고, 과정을 중시하며, 긍정적으로 살라는 자기 계발서의 반대편에 우리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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