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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낭만적 은둔의 역사
글쓴이 노문희


한 가지 이유만으로 이 책을 선택했다. 혼자인 게 좋은데 혼자여서 외로운 마음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늘 적당한 선 안에서 그 마음을 충족했으면 싶은데, 언제나 그 적당한 선은 지켜지지 않아서 괴로웠다. 그러니 은둔을 혼자인 시간이라고만 생각하면 낭만적이라고 여길 수 없지 않았겠는가. 그런데도 저자는 제목에 낭만은둔을 같이 올려놓고 독자를 홀린다. 우리가 즐기고 원하는 혼자인 시간의 역사를 들려주면서, 모든 은둔의 시간이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어쩌면 우리가 겪는 혼자인 시간의 양면성이 맞았는지도 모른다. 원하지만 원하지 않는, 혼자여서 만족스럽지만 외롭기도 한, 인간으로 함께 살아가는 일의 양면성 말이다.


저자는 약 400년 동안의 혼자 있기를 연구한 결과로, 수 세기 동안 사람들은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끌어안고 살아왔는지 말한다. 과거에서 이어져 온 혼자 있는 시간의 역사라니, 새롭고 의아하다. 그러면서도 낯설지 않게 다가오는 이야기에 빠져든다. 많은 이가 겪었을 감정을, 그 근원을 파헤치듯 역사를 풀어놓는다. 뜻밖의 시작은 걷기의 도박이었다. 판돈을 걸고 정해진 시간과 거리를 걸으며 기록을 경신하는 도박이었다니 놀랍다. 이어지는 산책의 미학은 점점 혼자인 시간의 즐거움을 알게 한다. 하지만 과거의 혼자인 시간은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이상한 법으로 거리를 서성이는 사람에게 벌금을 부과하기도 하고, 혼자서 걷는 일이 도덕적이지 못하다고 보기도 했다. 계급이 있던 시절, 평범한 사람들이 혼자 걷는 일은 불온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혼자 산책하는 것도 마음대로 못하던 시절이었다니, 이 시대는 어떤 사람들이 마음대로 걸을 수 있었던 건지.


조용한 가정 여가활동은 다양하고 역사도 길었지만, 19세기에 그 양과 종류가 급증했다. 이 시기에 근대화가 반영된 실용적인 여가활동들이 생겼다. 전례 없는 가정 경제의 번영, 가정에서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의 변화, 활기차게 반응하는 소비 경제, 무엇보다 활발한 대중매체의 활용이 요인이었다. 무료한 일상의 여백을 메우는데 그친 게 아니라 그런 활동들이 따로 또 같이의 균형을 근본적으로 재수립했다고 볼 만했다. 빅토리아시대 중류층 가족은 조화를 이루기 위해 폭넓은 단독 활동을 했다. 개인 활동의 다양성, 개인과 집단 활동 간의 자연스러운 이동은 의견상 사교적인 부르주아 가정생활에 중요했다. 더욱이 풍성한 인쇄물과 서신 교환은 실질적인 공동체의 영역을 넓혔다. (89~90페이지)


혼자인 시간은 무엇으로 채우고 즐길 수 있었을까. 예상했겠지만, 혼자 산책하거나 책을 읽거나 여행하거나. 어떤 도구라도 자기가 속한 세계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다면 그 자체가 고독이고 낭만적 은둔이다. 하지만 고독이 좋은 것만은 아닌 적도 있다. 감옥의 독방, 수도원의 닫힌 생활 같은 시간이 개인의 자유를 억압했다. 처벌로 갇힌 독방도 교화의 목적을 다 이루지는 못하고 인간의 정신을 파괴하기에 이른다. 종교의 영향이 짙었던 시절, 종교는 법의 영역까지 담당하며 독방의 효과를 피력했다. 고독의 공포가 마음을 열어준다며 갱생을 기대했으나, 정신적인 문제만 일으키는 정도였다. 고립은 본인이 원하는 고독이 아니었으며, 타인에 의해 혼자됨은 고독과 같을 수 없다는 걸 확인했을 거다.


고독의 즐거움은 취미로 이어진다. 바느질이나 농작물 키우기는 노동의 시간이면서도 본인의 재미를 찾는 시간이다. 누군가 잘하는 일을 계속하고, 능력을 인정해주지 않아도 지극히 개인적인 시간에서 펼쳐졌다. 열정적인 수집은 물론이고 여행하는 일상은 항해까지 하게 한다. 혼자서 누비는 항해라니, 멋지기도 하지만 무섭기도 하다. 망망대해 위에서 혼자 있는 장면을 상상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설레서가 아니라 어딘가로 흘러가는 것만 같은 이 배를 어쩌나 싶은 걱정. 저자가 소개하는 혼자 항해하는 이들은 앞서 항해한 이들을 따라 하거나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항해를 한다. 그러다가 곧 읽을거리가 그 고독을 즐기는 자리를 차지한다. 많은 간행물, 출간 서적은 혼자를 즐기는 이들에게 좋은 아이템이 된다.


인상적이면서 마음에 와닿는 것은 이 책의 후반부였다. 현대사회로 들어오면서 고독은 과거와 양상이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오늘날 혼자인 시간의 문제가 무엇인지 짚어가면서 말하는데, 노년을 향해 가는 우리 삶을 그대로 담아낸 듯하다. 우리의 고독을 즐겁게 해주었던 종이로 된 읽을거리는 곧 모바일 기기로 빠져드는 인간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지하철이든 걸어가면서든 작은 기기에 눈을 모으고 집중하는 모습은 디지털시대의 관계가 어떤지 바로 보여주는 예가 된다. 정보의 획득과 좀 더 편하게 사는 일상을 누리는 게 우리가 원하는 삶이지만, 비대면의 시대에 너무 빠르게 흡수되는 게 안타깝기도 하다. 낭만적 은둔의 시간이 되기까지 우리의 혼자인 시간이 그려야 할 장면을 조금은 더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우리 언어는 인간이 혼자인 것의 양면을 현명하게 포착했다. ‘외로움은 혼자 있는 것의 아픔을 나타내가 위해 생긴 표현이다. 또 그것은 혼자 있는 것의 영광스러움을 표현하기 위해 고독이라는 어휘를 만들었다. (281페이지)


가족 구성원의 수가 줄어들고 이제 1인 가구의 증가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노년의 시간을 혼자 보내는 이도 많고, 나이 상관없이 혼밥이 익숙한 이도 많다. 혼자 살아가는 일은 소통하지 못하고 현대의 삶이 실패한 게 아니라, 때로는 이 사회를 배우는 과정일 수도 있다고 한다. 간혹 외로움이 일상을 파고들어 삶을 건강하지 못하게 할지도 모르지만, 고독과 외로움의 균형을 맞춰가는 자세도 필요하다. 저자는 여러 작가의 책과 역사의 한 장면들을 열거하면서 고독의 기쁨을 발견하게 한다.


집단의 재미없는 산만함에서 물러나 자기 생각을 성숙시킬 장소를 찾아야 한다라는 철학자의 말을 대신하며, 혼자 있는 시간이 만들어낸 충전의 기회를 소개한다. 사실 제목만 보고 은둔의 즐거움이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했는데, 의외의 역사를 알게 된 기분에 혼자인 시간의 가치를 배운 듯하다. 처음에 말했던 것처럼, 사람 많은 공간과 시간도 필요하지만, 혼자만의 여유를 갖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몰랐다. 저자는 혼자였던 많은 사례를 들려주면서,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많고 혼자인 게 삶의 실패도 아니라는 걸 공감하게 했다. 자연 속에서 산책하는 일은 낭만적 은둔의 핵심을 이루며, 고독의 오랜 역사를 이어왔다. 생각해보면 산책하는 것만큼 혼자인 즐거움이 또 있을까 싶기도 하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다양하지만, 고요한 자연 속에서 걷는 것만큼 여유롭고 쉬어가는 느낌이 드는 일은 없을 것 같기도 하다. 돈 드는 일도 아니고 말이다. ^^


우리는 의외로, 혼자서도 잘 살아갈 수 있다. 혼자 즐겁게 지낼 수 있고, 그 즐거움을 위한 많은 도구도 존재한다. 외로움과 고독을 잘 구분하면서, 혼자인 순간을 잘 보내는 법을 배우며 은둔을 즐기고 싶다. 저자가 말하는 낭만적 은둔의 세계로 빠져들어 혼자의 즐거움을 누려보는 것도 좋겠다.


* 이 도서는 ()한국독서문화재단의 독서문화사업으로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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