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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현대인을 위한 철학, 《키워드 필로소피》 by 김동훈
글쓴이 최현영



개인적으로 아주 인상깊었던 철학책입니다.

다음 15가지 뿌리어를 중심으로 철학적 사유를

아주 쉬운 언어로 풀어주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통찰력을 제시해줍니다.

1. 테크네 : 기술, 능숙한 그리고 예술

2. 아레테 : 탁월함 혹은 도덕적 미덕

3. 메타 : 후에, 너머

4. 미디어 : 중간에 자리하여 사이를 매개하는 것

5. 트랜스 : 다른 장소나 상태로 변화, 이전함

6. 포르마 : 형상, 형태

7. 미메시스 : 인간, 신, 사물을 모방하는 것

8. 인판티아 : 유아기 또는 언어가 없는 시기

9. 팍툼 : 진실

10. 메타포라 : 은유

11. 조에 : 원초적 생명력

12. 데쿠스 : 영예, 자랑, 장식

13. 로망 : 토착어

14. 스티그마 : 뾰족하고 날카로운 것으로 살갗에 표시하는 것

15. 에로스 : 사랑

인펀트(유아)의 뿌리어가 되는 인판티아는 언어가 없는 시기이고

우리가 흔히 낭만적인 로맨스를 떠올리는 로망이란 토착어라는 의미이고

낙인, 흔적을 떠올리는 스티그마에서 명품 등의 브랜드가 파생되었다는 것 등

우리의 상상과 반대되는 것들이 많습니다.

뿌리에서 줄기와 잎이 파생되지만

뿌리어를 알면 가장 핵심적이고 중심적인 개념을 알기에

어떻게 분화되고 파생되었는지 이해가 훨씬 쉽습니다.

각 뿌리어의 어원과 의미를 설명하고

이것이 어떻게 현대적 의미로 발전되었는지

다양한 철학 개념들을 잘 설명해줍니다.

스타그마

저한테 가장 깊게 다가왔던 두 부분을 예로 들어 설명해볼게요.

스티그마는 문신, 신분을 나타냈으며

이는 정체성과 연결이 돼요.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르는 반복하여 하는 행위가

바로 우리 자신의 욕망이자 정체성을 나타낸다고 해요.

그래서 생각해봤습니다.

제가 반복하여 하는 행위, 제가 욕망하는 것은 무엇일까?

언젠가 제가 명함 만들었다고 자랑한 적이 있는데,

거기에 썼던 문구

읽고 생각하고 옮기다

저의 욕망이자 정체성은 이것이더라고요.

무슨 중독된 사람처럼 영어, 일본어, 우리말로 된 인쇄물을

읽고 또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쓰고, 또 번역합니다.

그리고 들뢰즈는 반복하는 그 행위에 차이를 첨가하고

운동성과 생산성을 부여함으로써

이것을 현실화, 실현하는 것이라고 했어요.

어쩌면 작은 성취지만 저는 이뤄낸 사람이라고

저 자신을 조금 칭찬해 주었습니다.

저 자신에게 인색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거든요.

항상 부족하고 모자라다고 채찍질만 해대는데

저의 욕망을 현실화했고,

저의 정체성을 확립한 것 같아서

스티그마, 저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낸 것 같아서

조금 기뻐하고 조금 칭찬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미메시스가 아주 재미있었어요.

미메시스

미메시스는 모방, 즉 따라 하는 것이고,

'질투는 나의 힘'이라고 하는데,

남을 시기하거나 질투하기보다

인간과 신, 자연을 따라함으로써 예술로 승화시키는 거예요.

중요한 것은 유사성을 포착하는 것입니다.

내가 가지지 못한 재능, 능력을 시기하는 것이 아니라

"본받기"라는 개념을 저자는 제시하셨어요.

경쟁만을 부추기며 그 정상, 정점(pinnacle)에 서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타인과 자연, 신의 아름다움을 본받는 거예요.

그리고 자기만의 것으로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는 거죠.

정말 무릎을 탁 쳤어요.

제가 정말 모방을 많이 합니다.

오랜 인생을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참 오리지날리티 없는 모방 인생이라고 제 자신을 규정하곤 했어요.

예를 들어, 누군가의 행동이 멋있어 보이면

그 행동을 기억해두었다가 필요할 때면 그 행동을 사용합니다.

어찌 보면 페르소나, 가면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요.

초소심한 성격이지만,

입사 최종 면접 시, 압박 면접을 가하는 사장 및 임원 앞에서

"그렇다면 당신들의 인재 유보 전략은 무엇이냐?"라고

묻는 그런 당찬 젊은 여성 입사지원자 흉내를 냈고요.

(그래서 전체 1등으로 입사했어요. 넘 오버해버렸네요. 묻혀갔어야 하는데.)

그리고 피아노를 칠 때도 악보를 제가 해석하여

아름답게 연주할 줄은 모르지만,

그것을 연주한 사람들의 연주를 면밀히 분석하여

흉내 내어 치지요.

제가 하는 번역도 그 자체가 모방은 아니지만,

끊임없이 다른 역자의 표현 등을 수집하고,

그것들을 데이터베이스화하여 머릿속에 담아두고

적재적소에 활용합니다.

모방은 아기들이 성장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소이고,

학습의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걸 캐치하는 능력이 저에게 있고,

하도 많은 걸 혼합하여 모방하다 보니,

저에게도 저만의 세계가 생기고

그것이 저의 정체성이 된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따라쟁이인 저 자신을 너무 비난하지 않기로 했어요.

잘 따라하는 그게 너의 특성인가보다 이러면서요.

저자가 말씀하신 본 받기...

맞아요. 저는 모든 사람을 존중하고 배우려고 합니다.

열 다섯 뿌리어 모두를 하나하나 다루고 싶지만,

그건 나중에 하나하나 다시 깊이 생각하며

다루기로 하고 서평은 이만 마칩니다.

※ (사)한국독서문화재단의 독서문화사업으로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