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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라북클럽

제목 필리스트
글쓴이 이민정

[고통받는 모든 땅에 필리스트가 찾아가길]


척박한 땅 한 가운데 생명을 틔워내는 커다란 올리브나무에 둥지를 틀고 살아가던 검은 새들이 있었다. 검은 새들은 이 나무를 ‘어머니나무’라고 불렀다. 어느 날, 오랜 시간 먼 길을 날아다니느라 지친 흰 새들이 찾아오자 검은 새들은 먹을 것과 쉴 자리를 내주었다. 그러자 흰 새들은 더 많이 날아들었고, 급기야 검은 새들을 내쫓기 시작했다. 어머니나무는 나무 속에 숨어있던 검은 새 ‘필리스트’에게 언덕 너머의 염소에게 이 상황을 해결할 지혜를 구해오라고 한다. 그러나 죽을 힘을 다해 찾아간 곳에 염소는 존재하지 않았고, 그제서야 이것이 어머니나무가 필리스트를 지켜주기 위해 택한 방법이었음을 알게 된다. 다시 돌아온 필리스트는 검은 새들의 피로 얼룩진 채 말라버린 어머니나무를 발견하고 스스로 목을 꺾어버린다.


이 책의 제목은 팔레스타인의 전설 속에 나오는 새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사람들은 필리스트가 다시 돌아오면 어머니나무에도 새 잎이 돋아날 것이라고 믿으며 필리스트를 기다린다. 이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의 마음속에는 저마다의 필리스트가 있다. 7년 전 국경이 닫힌 후 돌아오지 못한 아버지, 고향인 가자지구를 떠나 피난 오면서 잃어버린 가족, 평화를 위해 군대를 거부했던 연인, 이스라엘의 가혹한 고문이 아니었다면 이루었을 청춘의 꿈이 그러할 것이다. 당장 하루를 살아내는 것도 힘든 상황이지만 이들은 마음 속 필리스트를 저버리지 않는다. 나무로 깎아 만든 필리스트를 할아버지에서 리나의 손을 거쳐 유대인 청년이 올리브나무 위에 얹는 장면까지 이어지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이런 이야기는 작가의 상상력으로 쓰인 이야기였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 책은 작가가 팔레스타인을 직접 방문하여 목격한 참상을 만화로 그려낸 작품이다. 실제 사람을 토끼로 그린 것을 빼면 스스로 덧붙이거나 뺀 것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은 것 같다. 그래서 책장을 넘길수록 더 안타깝고 슬퍼졌다. 이 책과 더불어 우크라이나의 전쟁 소식도 마음을 한층 무겁게 했다.


고통 받는 이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고 듣는 것이 사람으로서의 책무라고 생각한다. 먼 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그 쪽을 향해 안테나를 세우고, 적은 금액이라도 후원할 수 있는 곳을 찾는 것 정도. 그럼에도 전쟁과 폭력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언젠가 필리스트가 날아갈 수 있도록, 나도 마음을 더하고 싶다. 신이여, 우리에게 평화를 허락하소서!


이 도서는 (사)한국독서문화재단의 독서문화사업으로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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