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마당 > 글쓰기마당 > 글나라북클럽

글나라북클럽

제목 [신청] 북클럽 3기 신청합니다. '행복의 정복'
글쓴이 황송이

버트런드 러셀이 지은 저서 중에서는 ‘서양 철학사’가 특히 유명하다. 물론 다른 저서도 꾸준히 읽히는 명저이다. 고대 철학사부터 현대 초창기 철학사까지 체계적인 목차와 연대기적 기록은 철학의 흐름과 맥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런 저자에 대한 생각 때문일까. ‘행복의 정복’이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에세이나 성경의 잠언을 다루는 작가가 썼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저자가 러셀임을 안 순간 궁금했다. 철학자 러셀이 행복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가. 러셀에 나의 생각을 뒤집는 계기가 되었다.


도서 제목인 ‘행복의 정복’에서 ‘정복’의 사전적 의미는 첫째, 남의 나라나 이민족 따위를 정벌하여 복종시킴. 둘째, 정복에 의한 영토 확장. 셋째, 높은 산 따위의 매우 가기 힘든 곳을 어려움을 이겨 내고 감. 넷째, 다루기 어렵거나 힘든 대상 따위를 뜻대로 다룰 수 있게 됨. 으로 제시된다. 그렇다면 행복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정복한다면 셋째, 넷째의 의미와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보편적인 ‘행복’의 특징을 뽑는다면 행복은 실제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당연히 그래야 하듯이 살아온 사실을 해석하는 기준을 행복과 불행으로 한계를 정한다. 그런 다음 인간은 행복이라는 추상명사를 손에 잡으려고 평생을 애쓰고 노력한다. 설사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행복이 오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행복을 완성으로 생을 마감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행복의 기준도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다수의 사람들이 행복해지려고 애를 쓴다. 정작 행복은 닿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의 어떤 점이 행복으로 가는 길을 방해하고 있는가? 저자는 말한다. 자신에게 이런 물음을 던지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행복해질 가능성이 높다라고. 자신을 직시하는 진정한 용기야말로 기다림이나 정신 수양보다 행복에 더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소개글에서)


이 책을 읽는 중간에 뼈를 때리는 아픈 말들이 나오면 내 과거의 트라우마가 재현된다. 그러고는 다시 지금 여기 있는 이 순간만이 내가 살아있다고 가느다란 숨을 내쉰다. 잔잔히 나를 가다듬는다. 러셀의 영향권은 나에게 큰 바람이 되어 흔든다. 그래서 여러 번 같은 부분을 읽으며 되새긴다. 같은 실수, 같은 아픔 두 번은 안 된다며 나를 다잡는다. 이렇듯 전반적인 내용이 실제 생활과 연관되어 심리적으로 접근해서 쉽게 다가올 수 있었다.


‘인생은 책임이다’ 라던 조던 피터슨 교수의 말이 생각난다. 인생에 주요 필요 충분조건으로 행복을 거론한다면 행복을 만드는 것 또한 내 책임일 것이다. 물론, 주변 환경과 인간관계 등 복잡 미묘한 요소가 내 삶에 영향을 주는 건 사실이다. 행복도 내적·외적인 요인으로 완성과 미완성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러셀도 나의 행복으로 가는 방법을 제시하지 못한다. 내 행복도 내 책임인 이유로 이 책은 간단하 참고만 해도 무난하겠다. 라는 생각을 한다.


행복으로 가는 길을 애써 고민하기 보다 순간순간 살아가는 공간,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행복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닐까. 나이를 먹을수록 젊은 시절에 행복을 미루며 '이것만 끝내면 행복해 지리라' 고 외쳤던 내 모습이 조금은 후회될 때도 있다. 우리 자녀에게도 수능만 치면, 대학만 가면 이라는 조건으로 행복을 저당잡으라고 강요하는 건 아닌지. 늦은 밤이지만 현재의 행복과 미래의 행복의 경계선이 무엇인지 저자가 언급한 중용과 연관지어 심도있게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