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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북클럽1기] 이미지 언어를 문자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버려지는 디자인 통과되는 디자인 웹&앱'
글쓴이 이유정

오늘의 발표를 내일로 미루고 싶을 때 쓰는 꿀팁- 이라는 재미있는 대학내일 컨텐츠를 본 적이 있다. 오류 팝업창과 블루스크린으로 발표를 다음주로 미뤄버리는 어마무시한 꼼수인데 어쩐지 자세히 읽게 되는 건 나도 발표를 죽어라고 미루고 싶은 적이 많았기 때문일까? 기획서를 작성할 때도 이런 일은 심상찮게 발생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머리에서는 A 디자인이 별로니까 당연히 B 디자인으로 바뀌어야하는데, 이걸 차근차근 이해 되도록 만들어서 말하라고 할 때. 텅 빈 피피티 슬라이드를 보며 이걸 뭐로 채워야 소위 알차다- 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 암담할 때.

버려지는 디자인 통과되는 디자인 시리즈. 리디셀렉트에 있어서 편집디자인 편을 훑어봤고 이번에는 웹&앱편을 읽었다.

읽고 난 소감은? 아, 이거 있으면 그 암담하기만 했던 기획서 쓸 때 도움되겠다!


초보 디자이너 수준을 벗어나게 되면 그 다음 단계에서 필요한 것은 바로 왜 이 디자인이 이렇게 되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디자인을 하면서 틀린 것은 없습니다. 다만 다를 뿐입니다. 하지만 이유를 말하지 못하는 디자이너는 틀린 것입니다.​
자신의 디자인에 논리를 가지십시오. 자신만의 철학이라도 좋고 좋아하는 디자이너의 오마주도 좋습니다. 검은색의 0.1포인트 선을 넣고 이 선과 이 색상을 사용한 이유를 말할 수 있는 것이 단순한 오퍼레이터와 디자이너의 차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 버려지는 디자인 통과되는 디자인: 편집디자인


한 때는 디자이너와 기획자가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 두 직무가 칼 같이 분리되기 쉽지 않고 양 극단에서 중간 어딘가로 끊임없이 도달하도록 노력하는 게 내 지향점이어야 한다고 느낀다. 실제 업무에서는 이 두 개의 분리가 없는게 가장 이상적이고, 그런 유니콘 같은 인재는 될 수 없을지라도 중간 어디쯤에 나를 놓는 것이 현재 상황에서는 현실가능성이 있고, 오히려 경쟁력이 있기에.


​기획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단계는 '문제 정의'다.
이걸 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고, 문제 정의를 내렸지만 방향이 잘못 되면 솔루션도 전부 잘못된다. 연구로 따지자면 애초에 가설을 세우기 전 전제조건부터 잘못되었다는 피가 말리는 이야기랄까.

디자이너의 언어는 문자와 언어보다는 시각적인 이미지에 기초한다. 작업 과정도 이 언어로 이루어지는데 문제는 이 언어가 히스토리컬하지 않다는 것에 있다.

우리의 문자 언어는

A였는데 B때문에 C를 했다. 고 표현하고 기록된다.

이미지 언어는

A였는데 (B ? ! & *) C가 되었습니다. 하고 끝난다.


분명 디자이너는 중간 과정을 거쳤으나 그 수 많은 과정이 왜 일어났는지 일일이 기록하며 작업할 수도 없고, 언어 자체를 이미지➡문자로 변환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어느 정도로 어렵는지 다른 책에서는 이렇게 표현했다.

책을 통해 나는 본격적으로 그녀의 그림 몇 편을 시로 ‘번역’하는 일에 도전했다. 혼자서는 ‘그림 번역’이라 부르는 작업을 시작했다. 물론이다.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그림의 입장에서 시는 섣불러 보이고, 시의 입장에서 그림은 무모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림은 말하지 않는 시, 시는 말하는 그림”이라고 말한 그리스 시인 시모니데스Simonides의 말을 곱씹어보며 용기를 냈다. 모든 번역자가 반역자가 될 용기를 품듯이, 나 또한 ‘불가능의 가능성’을 품고 한 장르를 다른 장르로 번역하는 작업에 임했다.​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 | 박연준 저

그림이 시의 옷을 입는 순간 무참히 깨지거나 변형되고, 휘발될 수 있는 위험이 많다는 것을 인정한다. 내 도전은 그것을 감안하고, 각오하고 있다. ​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 | 박연준 저



그림을 시로 번역하려는 시도를 한 시인이 표현한 것처럼 사실 이미지가 만들어진 과정을 문자 언어로 설명하는 것은 '한 장르를 다른 장르로 번역'하는 것과 같다.

매우 다행스럽게도 디자인의 역사는 오래되었고 웹/앱을 기획하는 일도 오래되었다. 이미지 언어가 아닌 문자 언어로 사람들을 설득해온 역사도 꼭 그만큼이 되었을 것이다.

아... 뭔가... 디자인이 좀... (별로인데) 라는 클라이언트의 반응 뒤 '진짜 하고 싶은 말'을 찾아내고 구체화하는 게 기획자가 하는 첫 단계이자 가장 중요한 <문제정의>이겠고 이 책은 디자인 이론에 기초해 각각의 사례를 정리해주었다.

구체적으로 예시를 들며 설명하자면
아, 디자인이 별로야 라는 말이
1. 상품 정보를 소개하는 공간이 부족해 이 정보로능 사용자를 설득해 구매의욕을 높이기 어렵다.
2. 그리드 구조가 복잡해 사용자에게 직관적인 정보 제공이 불가능하다.
3. 서체가 상품 인식에 영향을 줄 정도로 크고 인접해있다. - 로 바꿀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디자인 솔루션은 좀 더 명확해진다.

물론 디자인 과정은 이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하지만 디자이너가 함께 일하는 사람은 기획자, 개발자, 그리고 그 외 이해 관계자. 같이 이미지를 보며 일하지만 소통언어는 문자로 이루어져 있다.
이미지 언어를 문자 언어로 바꾸는 훈련을 할 수 있도록, 그래서 디자이너와 기획자, 클라이언트와 개발자의 소통에 도움이 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