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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라북클럽

제목 먹는 것과 싸는 것
글쓴이 노문희


내 몸은 내 것인데, 그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경험. 혹시 경험해본 적 있는가? 한 달 전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고, 옆으로 돌아눕는 것도 힘들 정도로 몸을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너무 아파서 눈물이 저절로 났다. 이렇게 죽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만큼 몸이 내 통제를 벗어나 자기 마음대로 아프다는 게 두려웠다. 맹장 수술 말고는 수술대 위에 누워본 적도 없고, 자잘하게 병원 드나들곤 했지만 큰 병을 걱정한 적은 없다. 그러니 많은 이가 겪는 질병의 고통을 내가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울 테다. 이 책을 읽고 많이 생각할 수 있던 건, 저자의 말처럼 상상할 수 있다는 위험을 알아야 한다는 거다. 누군가 아픈 일, 그 고통을 상상하면 되는 거 아니겠냐고 쉽게 말하면 안 된다. 아니, 상상 이상의 것이 존재하고,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이 너무 많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저자가 겪은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이 책을 다 읽고도 알 수 없었다. 궤양성 대장염이라는 희귀질환을 처음 들었다. 갑자기 스무 살 청년에게 닥친 설사. 뭐 살다 보면 설사를 할 수도 있지 않은가 싶었는데, 단순한 설사가 아니었다. 혈변이었다. 혹시 큰 병이 아닐까 걱정하면서, 이러다 말겠지 하면서 고통을 견디고 있으니 병은 더 심해졌다. 고열과 복통에 시달리다 찾은 병원에서 생소한 병명을 듣게 된다. 궤양성 대장염. 여기까지 읽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이 아니고 이니 다행인 거 아닌가 했다가, 바로 후회했다. 그 어떤 병명 앞에서도 다행인 건 없었다. 병을 알게 된 그 날부터 저자의 인생은 완전히 바뀐다. 이 병을 치료하기 위한 노력은 물론이고, 아무리 노력하고 좋은 약을 써도 완치가 되지 않는 병 앞에서 절망한다. 그렇다고 노력하지 않을 수도 없다. 가만히 있으면 병은 더 심해질 테니까. 지켜야 할 것을 지키고 병원의 처방대로 하면 몸은 좋아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낫는 게 아니라 괜찮아졌다가, 그 노력이 좀 부족해지면 다시 안 좋아지는 상황의 반복만 있을 뿐이다. 그것도 완전히 알 수 없다. 몸이 내 말을 듣지 않고, 일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가장 중요하고 인간의 기본이 무너진다. 아무거나 먹지 못했다. 아무 데서나 변을 지릴까 무서웠다. 면역력이 약해져서 타인에게 옮을 병이 두려웠다. 그런 삶을 13년이나 계속했다. 그 시간 동안 반복된 입원과 퇴원은 단순히 환자라는 이름만 붙여준 게 아니었다. 그가 먹는 것과 싸는 것을 어려워하는 동안 그의 사회생활은 불가능했다. 아무거나 먹을 수 없으니 누군가와 같이 밥을 먹을 수도 없었다. 변을 지릴까 봐 집 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그의 생활은 병원에 입원해 있거나, 집에서 나가지 않거나 둘 중 하나였다. 먹고 싸는 제법 단순한(?) 문제를 두고 굳이 책으로 써야 할 이야기가 있을까 싶었지만, 반전은 책 속에 그대로 담겨 있다. 먹는 것과 싸는 일이 인간에게 무엇인지 묻는 게 되었다. 그에 대한 답을 찾으면서 저자가 생각하고 쏟아내는 말은, 독자에게도 강한 충격이 된다.

 

누군가 무엇을 먹든 무엇을 먹지 않든, 다른 사람이 상관할 일은 아니다. 그 누군가의 식단을 책임지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다른 사람이 뭐라 불평할 이유는 없다. 그렇지만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가만둘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비난하고, 먹이려 한다. (133페이지)

 

지리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병에 걸렸으니, 나이가 먹었으니, 수치스러워할 필요는 없을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역시 수치스러운 일이다. (193페이지)

 

먹고 싸는 일은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먹고 싸는 일은 내 마음대로 되는 일도 아니었다. 먹고 싶다고 다 먹을 수 없었고, 싸는 일도 자유롭지 않았다. 먹는 일은 여럿이 모여서 함께 하는 일이 되고, 누구에게나 드러내놓을 수 있다. 식사는 같이하기를 강요당하기도 한다. 싸는 일은 왜 혼자 숨어서 해야 하는 부끄러운 행위가 되었나. 배설하는 일은 수치스러움과 연결되어 있는데, 이 배설의 상황에 수치까지 얹어지면 인간이 폭력적으로 변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싸는 일이 두려워 스스로 은둔을 선택하면서, 은둔형 외톨이에 대해서도 고민한다. 그에게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다면 그저 타인으로 지켜봤을 일이, 자기 일이 되니까 시야가 넓어진다. 많은 것을 생각하고 알지 못했던 일을 이해하기에 이른다. 동시에 자기 병으로 인해 타인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알리고 싶기도 하다. 이런 병도 있다고, 이 병은 이런 상황을 만들 수밖에 없다고, 모르고 하는 한 마디가 상처와 고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린다.

 

꼭 질병 때문이 아니더라도, 나 역시 먹기를 강요(?)당하는 게 너무 괴로워서 힘든 적이 있다. 먹고 싶지 않은데 굳이 같이 먹어야 하는 경우, 간단하게 차 한잔하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데도 굳이 식사를 같이해야 하는 자리를 만들 때마다 괴롭기만 했다. 물론 같이 밥 먹고 이야기하면서 쌓이는 신뢰나 관계의 돈독함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내가 원할 때 좋은 효과를 내는 거 아닐까. 특히 저자처럼 병 때문에 먹을 수 없는 상황인데도, 상대의 이유를 무시하면서 끊임없이 권하는 건 무슨 마음일까 싶기도 하다. 같이 먹는 걸 거절하면 비난하면서 배제하는 것으로 확대하여 해석한다. 음식을 거절했다고 그 사람을 거절한 것으로 여기는 건 어떻게 설명할 수도 없다. 같이 먹지 않는다고 마치 무슨 문제가 큰 사람으로 여긴다. 왜 우리는 타인의 절박한 상황을 듣지 않고 함께 먹기를 강요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가. 코로나 상황이 전 세계를 고통에 빠트렸지만, 여럿이 모이거나 함께 먹기를 강요하는 사회를 잠시나마 멈출 수 있어서 좋았던 점도 있다. 솔직히 이제 거리 두기 해제나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방역 지침으로, 잠깐 멈췄던 회식 문화나 불편했던 사적 모임이 다시 불을 피울 것 같아서 걱정이긴 하다.

 

단순하게 보면 이 책은 한 사람의 투병기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다 읽고 나서 독자는 그 단순함을 머릿속에서 지우게 될 거다. 아픈 이야기가 무슨 책이 될까 싶겠지만, 질병의 고통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다양하게 뻗어 나간다. 희귀질환 앞에서 고통스러운 사람, 그 사람을 배려하지 못하고 먹기를 강요하는 사회, 똥을 지릴까 봐 선뜻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사회생활에 문제가 생기는 상황을 이어진다. 단순히 먹는 것과 싸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가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일이 불가능해지는 것까지 감당해야 한다는 게 얼마나 큰 문제인지... 그러니 혹시라도 저자처럼 낫지 않는 질병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이의 진짜 문제를 이해해야 한다. 상상이 아니라, 경험으로 알아야 한다. 우리가 그 고통을 경험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당사자가 왜 같이 식사하는 걸 어려워하고 음식을 가려야 하는지, 인간의 기본인 생리현상으로 힘들어하면서 외출을 두려워하는지 알아야 하는 거다.

 

누구도 몰라줄 경험이 점점 쌓여간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푸념하지 않으려고 참기도 힘들지만, 푸념을 해도 알아주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더욱 힘들다. (255페이지)

 

겪어본 자만이 알 수 있다는 걸 그대로 확인한다. 섣부르게 아는 척하면서 병은 나아야 하는 거라는 둥, 인간은 성장해야 하는 존재라는 식의 판단은 넣어두시라. 세상에는 회복되지 않는 병도 많고, 그 많은 시련을 겪었는데도 성장하지 못하는 인간이 있다. 그게 사실이고, 우리는 그 사실을 인정하면 된다. 당연하게 여겼던 극복 서사가 아픈 사람에게 육체적 고통에 정신적 고통까지 얹어준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사회와 현실에서 위로와 이해를 받지 못한 저자는, 자기가 고통스러워하는 상황에서 문학으로 구원을 찾는다. 그가 연구하는 문학에서 마주한 문장으로 그의 마음을 대변하면서, 아프고 나니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게 된다. 그러면서 이 책을 읽은 이들이 보이지 않는 타인에 대한 이해 넓혀주기를 바라는 게 저자의 마음이고, 우리의 마음이다.

 

우리 사회가 낫지 않는 병을 불편하게 여기는 것을 지적하는 저자의 절실한 마음을 듣는 게, 웃으면 안 될 것 같은데 웃음이 난다. 재밌다. 이 불편한 상황을 너무 적나라하게, 감추고 싶은 진심까지 드러내면서 쏟아낸다. 거기에 너무 잘 어울리는 표지, 저자의 솔직함과 재치 있는 문장(말투), 문학에서 찾아낸 적재적소의 인용구까지 삼박자가 잘 어우러져 즐겁게 읽힌다. 제목만 보고 섣부른 판단은 하지 마시라. 도대체 먹는 것과 싸는 것으로 무슨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느냐고 걱정하고 있다면, 기우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식욕)와 생리현상(싸는 일)이 한 사람의 삶을 좌우할 수 있을 정도로, 이렇게나 민감하고 중요한 일인지 새삼 알게 될 것이다. 너무 감동적이다.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