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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작품

제목 2026년 2월 두 번째 목요일-나의 일흔살
작성자 이명희 작성일 2019-02-27
작성일 2019-02-27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애나메리 로버트슨 모지스(수오서재)를 읽고

20262월 두 번째 목요일

 

작년 봄에 삼랑진으로 이사를 왔었다. 남편은 70세가 되면 전원생활을 하고 싶어 했다. 나는 반대하지도 완전히 동의하지도 않았다. 분명 도시생활보다 편의성에서 떨어지는 것은 감내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생각을 조금 바꾸면 큰 걱정거리는 아닌 것이다. 다행히 지인들의 도움으로 이곳에 무사히 안착한 것 같다. 앞으로의 생활은 미리 걱정하지 말고 닥치면 또 하나씩 해결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살아보니 발생하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게 없다. 예측하고 대비하는 자세를 공부해두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나는 이 곳의 냄새가 참 좋다. 어린 시절 동네 뒷산에서 그 흔한 장난감 하나없이 풍요롭게 뛰어놀 때의 추억이랑 같은 냄새다. 성모동굴성당으로 새벽미사를 갈 때 이슬에 젖은 흙내음은 트렁크 가방에 가득 담아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보내주고 싶을 정도다. 작은 앞마당 텃밭에서 캐 온 고구마가 벽난로에서 구워지는 냄새는 고급캔들의 향보다 찐하고 오래 남는다. 어제 오전은 작은도서관 그림책 읽기 시간에 오시는 분들과 함께 이 군고구마를 나눠 먹으며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현관에 놓아둔 세미겹 동백꽃 향이 정말 예쁘다. 부산에 살 때도 동백꽃은 흔히 볼 수 있는 꽃나무였는데 향기가 있다는 것은 전혀 몰랐다. 그 꽃에 코를 대고 맡아볼 생각을 아예 하지 못했다. 생각만 해도 미세먼지가 내 코로 훅 들어올 것 같다. 한 달 정도 지나면 목련꽃도 크게 필 것 같다. 아랫집에 매화나무에도 곧 화려하게 꽃이 피우려고 조심스레 사부작거리고 있다. 마을입구에 백일홍도 그 뒤를 이어 향기를 뿜고, 건너집 담장의 장미꽃이 뜨거운 여름의 향기를 더할 것이다. 지난해 여름에 그 집의 장미꽃은 정말로 뜨거운 날과 어울렸다. 가을국화는 차향기로 가득 담아서 겨우내 마시고 있다. 이렇게 사계절 꽃이 주변에서 피워주니 감개무량할 따름이다.

요즘은 농촌 시골이라고 해서 소똥냄새, 닭똥냄새 같은 것은 거의 없다. 유기농비료를 저렴하게 구입해서 농사를 짓고, 가축장은 위생적으로 시설을 갖추지 않으면 허가를 받을 수가 없다. 노후 시설의 가축장은 깊고 깊은 시골 중에서도 더 깊은 곳으로 가봐야 볼까말까 한다. 가장 안타까운 동물은 닭들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고 뒷 야산의 멧돼지의 공격도 피해야 하니 항상 닭장에 갇혀 지낸다. 음식물쓰레기 처분에 가장 기특한 역할을 하고 영양만점 달걀을 무한히 제공해 주는 요 녀석들의 진정한 자유를 허락할 수 있는 장비가 있었으면 좋겠다. 지난 여름에도 폭염으로 세 마리나 죽었다. 오리처럼 물놀이를 즐기지 않으니 뾰족한 수가 없다.

또 하나 좋아하는 냄새가 생겼다. 바로 물감냄새이다. 남편에게 그림을 배운지 석 달 정도 되었다. 이것은 25년 전에 내가 남편에게 다짐 받은 것이다. 나중에 70살 되면 그림 좀 가르쳐 달라고 했었다. 그때에 독서모임에서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애나메리 로버트슨 모지스(수오서재) 책으로 독서토론을 하였다. 더 이상 자수를 놓을 수 없게 되어서 붓을 들게 된 그녀의 나이가 76세라고 했다. 100년을 살면서 정말로 부지런히 일하며 젊은 날을 보내고, 남편을 사랑하고 아이들도 바르게 키웠다. 하지만 이 분이 제일 잘한 것은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림을 그리기를 시작하며 시간을 채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환경과 처지는 아닐지라도 닮은 모습은 몇몇 있는 것 같다. 경제적으로 남편만 의지하지 않고, 적은 보탬이라고 될려고 일했고, 여자의 사회생활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에 반대했다. 명예와 부를 얻기에는 내 붓끝의 실력은 밑바닥이다. 나자신을 돌아볼 수 있고 그것을 표현해 보기에 적합한 것이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바쁜 남편인 건 알지만 한마디씩 던지는 가르침은 도움이 된다. 다만, 긍정적인 지적을 해줬으면 하는 게 작은 바람이다. 다행히 그도 내 서재에서 책보는 시간이 많아진 것 같아 그의 바람대로 시골에 들어온 것은 정말로 잘한 것 같다.

지난 주일에 순교자 김범우 성지에 올라가 중식봉사를 하고 왔다. 집에서 30분 정도 산길을 따라 가볍게 걷기 좋은 곳이다. 편백나무가 빽빽이 자라고 있어서 한여름에는 히노키 사우나실처럼 느껴진다. 내몸이 무척이나 건강해지는 것 같은 냄새이다. 나같은 뚜벅이를 위해 중간에 쉼터가 있는데 내일 돌봄방 글쓰기수업 아이들과 야외수업을 하기로 했다.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나의 말년을 보내려고 시골에 내려온 것이 아니라고 생각 든다. 열심히 일해야 할 때 놀지 않고 보냈고 일흔 살, 이제 진짜 인생을 살기 위한 시기인 것 같다. 프랑스 한 시골마을에 사는 나의 불어 펜팔친구 로빈과 메리 부부의 말이 생각난다.

Miracles happen only to those who believe in them.” 기적은 믿는 사람에게만 나타난다. 나에게 기적이 울지 않고 웃으면서 기다려 준 것 같다. 로빈 부부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과 모든 자연들에게 항상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