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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작품

제목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 구병모
작성자 노문희 작성일 2020-09-24
작성일 2020-09-24


자연의 어느 부족에서는 사자의 장례를 치를 때 그의 영혼이 들고나는 통로를 마련해주고자 문신을 새겼다고 한다. 그런 여러 가지 이유와 구실이 오랜 옛날부터 있어온 거라면, 자신을 수호하는 용도의 문신이 있다고 해서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129페이지)

 

살면서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 간절함의 순간은 각자 다를 수 있지만, 누구나 살면서 그런 간절함을 갖게 되는 순간이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건강을 위해서, 얻고 싶은 무언가를 위해서, 피하고 싶은 고통의 순간을 위해서 등등. 그 간절함에 또 무언가를 붙잡고 매달리기도 한다. 사람에, 종교에,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것들에. 이 소설 속 인물들은 그들이 겪는 고통을 견디고자, 그 고통의 순간을 이겨내고 싶어서 선택한 것이 문신이다. 어떤 대상을 정하고, 그 대상을 내 몸에 새기고, 나에게 와서 딱 달라붙어 있는 그 새겨진 것이 나를 지켜줄 것으로 믿는다. 아니, 기도하는 마음으로 바라는 것일 테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어떤 선택을 할지 장담할 수 없다. 어쩌면 이들의 몸이 새겨진 문신은 그들의 목숨을 유지하게 하는 부적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고통을 끝내는 가장 확실하고 완벽한 방법이 생을 놓는 것이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서울의 어느 아파트 10층. 그날은 국가대표 축구 경기가 한창이었다. 모두가 축구 중계에 열을 올리던 그 시간, 한 집에서 화염이 치솟았다. 혹시 옆집이나 위아래 집으로 불이 번지지 않을까 싶었지만, 화염은 금세 사라졌다. 그리고 중년 남성이 창문 밖으로 떨어졌고, 병원으로 이송하면서 사망했다. 사고를 조사하던 경찰은 그 집에서 감금되었던 딸 말고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다.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던 딸이 용의자가 되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조건들이 딸을 향한 의심을 거두게 한다.

 

이상하게도 이해할 수 없는 사고와 죽음은 계속된다. 삼십 대의 한 남자는 혼자 살던 집에서 숨진 채로 발견된다. 어떤 동물에게 공격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집안에는 그 어떤 흔적도 없다. 한 회사 대표인 오십 대의 남자는 자기 집 거실에서 익사했다. 바닷물에 빠진 것처럼 죽은 남자는 외부 침입 흔적도 없는 상태로 발견되었는데, 어떻게 죽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말 그대로 미스터리한 죽음이 계속 일어나고, 경찰이나 다른 사람들도 이들의 죽음에 많은 추측만 있을 뿐 진실을 알 수 없어서 난감하다.

 

마치 무슨 추리소설을 읽는 것처럼, 죽은 이들의 진상을 알아가고 싶은 호기심이 생긴다. 이들의 죽음 뒤에 무엇이 있기에 이렇게 완벽한(?) 완전범죄가 가능해지는지 궁금해서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들이 죽은 이유나 과정을 밝혀낼 수는 없었다. 그러면서 조금씩 의심과 진실 사이를 오가던 '시미'의 추적은 그녀만의 간절함을 채울 수 있는 곳을 향한다. 회사 후배인 '화인'의 권유로 그녀는 문신하러 간다. 아는 사람만 안다는 문신 가게, 겉으로 봐서는 전혀 문신하는 곳처럼 생기지 않은 그곳, 문신할 것처럼 생기지 않은 가게의 주인장, 알 수 없는 편안함에 문신의 두려움 없이 편하게 누워있을 수도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 오는 사람들은 어떤 문신을, 왜 새기고 싶어 하는 걸까?

 

화인이 목에 새긴 샐러맨더 한 마리는 그녀를 지켜주는 수호신 같았다. 마음에 의지가 되고, 지금 자기가 겪는 고통이나 위험을 견디게 해주는 용기를 갖게 했다. 이해가 안 될 것 같으면서도 공감의 끄덕임을 보내면서 읽게 되는 부분이 아니었나 싶다. 이 부분은 나중에 화인이 시달려왔던 고통이 끝난 순간에 비로소 완전히 이해하게 되는데, 아마 그 작은 샐러맨더 한 마리가 그녀를 구해주었다는 확신이 든다. 그녀도 느낀다. 그 작은 문신 하나가, 가장 절박했던 순간에 자기를 지켜줬다는 것을. 그렇게 화인을 지켜준 샐러맨더는 떠나갔다. 마치 자기 할 일은 다 했다는 듯이, 희미한 흔적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녀의 간절함을 해결해주었으니 더는 그녀의 몸에 머물 이유가 없다는 것일까? 알 수 없는 사건들이 일어나고, 그 사건에 연루된 작은 공통점 하나를 발견한 시미는 조금씩 알게 된다. 그 사건들에 관계된 사람들이 가졌을 간절함, 그 간절함을 읽어주던 이상한 문신업자, 그들이 몸에 수놓은 것들이 일으키는 작은 기적(?)들을.

 

그렇다면 시미가 만나고 싶은 기적은 무엇일까. 다른 사람은 모는 시미 자신의 인생이 이렇게 들려온다. 곧 나이 오십을 바라보는 시미는 서른 살에 남편과 이혼하면서 아들을 두고 나왔다. 시미는 이십년에 가까운 세월을 혼자 견디면서, 사회를 경험하면서 온갖 불합리와 불편한 순간들을 견뎌왔다. 그렇게 견딜 수 있었던 건, 그래도 삶을 지키려고 애쓰던 시미의 노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노력은 아들을 향한 그리움으로 연결된다. 남편의 폭력을 피해 이혼했지만, 그래도 자라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까지 잘라내지는 못했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사건과 비밀 앞에서 시미는 그녀만의 간절함을 키운다. 그녀가 살아온 현재의 모습이 달라지기를, 그녀를 둘러싼 나쁜 상황들이 좋아지기를 바란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겠지. 그런 바람으로 몸에 새기는 것들을 바라볼 것이다. 누구나 가진 말 못 할 고통을 자기만의 노력으로 극복하고 싶지만, 그 노력은 고통을 사라지게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런 미신 같은 바람을 몸에 불어넣게 된다. 나를 지켜주는 버팀목이 되기를, 내가 바라는 것을 이루어주기를. 실제로 그 바람이 이루어주지는 않더라도 나를 살게 해주는 의미가 되어간다. 나를 지켜줄 것으로 믿으며 앞으로 나아갈 나의 삶을 상상하게 한다. 나의 삶이 계속된다는 것을 보게 한다. 내 몸에 새긴 하나의 작은 기도로.

 

"실은 피부에 새겨진 건 자신의 심장에도 새겨지는 겁니다. 상흔처럼요. 몸에 입은 고통은 언제까지고 그 몸과 영혼을 떠나지 않고 맴돌아요. 아무리 잊은 것처럼 보이더라도 말이지요." (138페이지)

 

사람들이 종교를 찾고, 점집에 다니고, 남들을 이해하지 못할 것들로 마음을 의지하게 되는 일들을 생각한다. 삶이 잔혹해지는 순간에 무언가에 자꾸 매달리고 싶어진다. 그게 종교일 수도 있고, 상상에 의지하는 어떤 바람일 수도 있다. 그게 무엇이든 우리 마음속에 자리한 간절함을 이루기 위한 것임은 다르지 않다. 소설 속 인물들은 그들의 고통을 줄이고 삶을 바꾸고 싶은 마음을 문신으로 표현했다. 몸에 새긴 이 작은 그림 하나가 자신을 지켜주기를 바랐다. 문신업자의 말처럼, 이렇게 피부에 새겨진 것은 정말 자기 심장에도 새겨지는 걸까? 아마도 그러지 않을까. 작게 새겨진 이 그림 하나는 심장으로 연결되어, 가슴속에 머물면서 그들의 기도에 동참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가슴에 붙이는 부적, 심장이 읊조리는 기도의 의미로 새기고 싶은. 나의 고통을 덜어주고 삶을 지탱해주는 바람 하나를 갖는 게 문신이라면, 그 문신 하나쯤 새겨 보고 싶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타인에게 말하지 못하는 자기만의 슬픔과 고통이 있으니까. 그런 순간 이겨내면 자기 역할 다하듯 사라지는 문신을 보면서, 내 삶을 힘들게 했던 것들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판타지 같은 결말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