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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팔과 다리의 가격 / 장강명
작성자 노문희 작성일 2021-09-27
작성일 2021-09-27


굶주림을 느껴본 적이 얼마나 있던가. 일부러 굶거나 끼니를 챙길 겨를이 없었거나. 아마도 내가 경험한 배고픔은 이 두 가지 중의 하나였던 경우가 대부분일 테다. 아니, 어쩌면. 오랜 세월 가난을 끌어안고 사는 우리 가족에게 배고픔은 부모님의 희생으로, 가까스로 피해온 경험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여유롭지 못했으니, 식구가 많았으니 밥상 위에 오를 밥그릇 숫자만 봐도 부모님의 고생은 엄청났을 거다. 그래도 굶지는 않았다. 그러니 이 책에서 말하는 목숨을 건 배고픔과 탈출을, 아는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한다.

 

사람이 굶으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려 한다. 우선 매우 배가 고파진다. 몸에 축적한 지방층이 없는 상태에서 두 끼 이상을 연속해서 거르면 그때부터는 허기가 통증에 가까운 감각으로 바뀐다. 처음에는 급성 위염이나 위궤양처럼 속이 쓰린 느낌인데, 특히 성장기 어린아이들, 청소년들이 이 고통을 견디기가 힘들다고 한다. 육체가 비명을 지르며, 신경 신호를 통해 뇌에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먹을 것 외에 다른 일 따위는 생각하지 말라고, 식량을 찾는 작업에 집중하라고. (10페이지)

 

어른들은 총살당할 것을 뻔히 알면서 집단농장의 종자보관소를 습격한다. 아이들은 옥수수 몇 알에 목숨을 건다. 훔친 음식을 먹다 걸린 아이를 사납게 때려도 도망치지 않는다. 손을 들어 매질을 막지도 않는다. 입안에 있는 음식을 삼키는 데 정신이 팔려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먹으면서 맞아 죽는다. (14~15페이지)

 

책의 목차만 봐도 숨이 막힐 것 같다. 작가는 이 책을 쓰는 이유를 말하자마자 굶는다는 것에 대해 너무 적나라하게 적어놨다. 얼마만큼 굶으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차례로 언급한다. 한 청년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목숨을 걸고 대한민국까지 온 젊은이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려고 한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다른 아이들과 똑같았다. 소년에게도 부모님이 있고 친척들이 있었다. 넉넉하진 않아도 부족할 게 없이 살았다. 고위직에 있는 친척들의 기세를 등에 업기도 했다. 부모님은 일하고, 소년은 공부하고 동네 친구들과 뛰어놓았다. 누구나 비슷한 삶이었을 거다. 그 나이에 무엇을 알고 무엇을 더 할 수 있으랴. 나조차도 흘려들으며 넘겼던, 그다지 관심 두지 않았던 북한의 그 시기, ‘고난의 행군이라고 했다. 누가 처음 만들었을지 모를 그 말을 듣고 나는 무슨 빡센 군사훈련을 말하는 줄 알았다. 지독한 훈련의 시간을 북한 주민 모두에게 경험하게 했다고 여겼다. 이 책을 읽고서야 그 시기가 혹독한 가난과 굶주림이었다는 걸 알았다. 탄광 마을에 사는 소년이 본 모든 것을 이렇게 듣는다.

 

처음에 아사(餓死)는 소문이었다고 했다. 굶어서 죽는다는 말을 그들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던가 보다. 그러니 믿지 못했겠지. 카더라 통신으로 들려오는 죽음의 소식은 소문이 아니었다. 가까운 이들이 하나둘 죽은 걸 보고 실감했다. 장애인과 노인들이 죽었다. 먹을 것을 구하기 어려운 이들이 먼저 죽은 거다. 소년의 가족도 다르지 않았다. 배급이 줄거나 끊기면서 먹을 것이 없었다. 먼 지역의 친척에게까지 가서 먹을 것을 구해왔어도 굶주림은 끝나지 않았다. 소년과 가족은 그 지역의 탄광에서 실려 나가는 석탄을 훔치기에 이른다. 달리는 열차에 몰래 올라타고, 어두컴컴한 상태로 포대에 손에 잡히는 석탄을 마구 담는다. 적당한 때에 열차에서 뛰어내려야 한다. 그 위험한 일을 몇 번을 했다. 그렇게 훔친 석탄을 먹을 것으로 바꾸는 일을 해야만 했다. 너무 굶어서 발을 헛디딘 소년은 한쪽 팔과 다리를 잃었다. 소년의 비명을 어떻게 잊을까.

 

한쪽 팔과 한쪽 다리로 목발을 짚고 또 살아간다. 소년은 꽃제비가 되었고,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국경을 건너 중국과 라오스를 거쳐 대한민국에 왔다. 이 글은 그 소년을 만난 작가가 기록했다. 자칫 정치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내용을, 작가는 한 사람의 생을 들려줌으로써 아직도 그곳에서 살아갈 이들의 굶주림을 먼저 떠올리게 했다. 꿈을 갖기도 전에 생존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삶. 내일이 아니라 오늘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버티는 인생. 소년은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되었다. 자기 몫을 지키기에 혈안이 된 상황에서 자기 것을 타인에게 나눠주며 같이 고통받았던 이들을 떠올린다. 아무 잘못 없이 비참하게 굶어 죽어가야만 했던 이들의 슬픔을 공유하게 된다. 잃은 것이 아닌, 아직 남은 한쪽 팔과 다리로 살아가는 희망을 말한다.

 

읽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들어서 어떻게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겼나 싶을 정도였다. 결국은 살아야겠다는, 살아야 한다는 본능이 그를 다시 일어서게 했다. 그는 북한을 탈출했고, 자유를 갖고,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다. 자본주의 국가의 삶에 적응하면서 그는 또 다른 어려움과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세상은 겪으면 겪을수록 새롭고 어렵고 힘든 일만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가 경험할 시간은 아직도 많이 남았다. 여전히 북한의 인권은 달라지지 않았을 테지. 폐쇄된 그 안에서 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자기 이야기를 한 지성호 씨도, 그 이야기를 이렇게 적어놓은 작가도, 읽고 있는 우리도, 아마 바라는 건 하나가 아닐까 싶다. 북한이 단단하게 쌓아 올린 그 장벽이 조금씩 무너지기를. 그렇게 그 안의 실상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듣게 되기를. 우리에게 있는 팔과 다리로 무엇이든 할 수 있음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