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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작품

제목 다시 가보고픈 조선의 궁궐
작성자 옥미선 작성일 2019-11-24
작성일 2019-11-24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서울편1권의 제목은 만천명월 주인옹은 말한다이다. 이는 창덕궁 존덕전에 걸려있는 정조대왕의 글에서 빌려온 것이다. 궁궐이 주인이었던 임금들이 어떤 생각으로 어떤 생활을 했는지 들려주고자 이런 제목을 붙였다고 했다. 그래서 궁궐의 이야기가 먼저 나올 줄 알았는데 나의 예상을 깨고 종묘가 먼저 소개되었다.

아이들과 역사수업을 할 때 , 조선의 건국을 이야기하면서 종묘와 사직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다. 아이들에게 이야기할 때는 종묘는 조선왕조 왕들과 왕비의 혼을 모신 사당이고 사직은 토지와 곡식의 신을 모시는 곳이라는 설명이 전부이다.

작년 겨울에 아이와 함께 종묘에 다녀왔다. 해마다 두 번씩 서울에 갈 때면 경복궁을 비롯하여 근처 궁궐을 둘러보거나 박물관을 다녔다. 하지만 종묘에는 가 볼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작년에는 종묘에 꼭 가봐야지 하고 다짐하고서야 갔다올 수 있었다.

종묘는 역대 왕들의 신위를 모신 곳이다. 왕들과 그의 가족들이 생활했던 궁궐과는 반대로 종묘는 죽음의 공간이자 영혼을 위한 공간이다. 이러한 종묘를 유홍준 교수는 조선 왕조를 대표할 만한 문화유산으로 손꼽고 있다. 종묘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우리에게 어떤 매력을 주길래 조선 왕조의 수많은 유산 중 대표할 만한 문화유산으로 손꼽은 것일까?

작년 겨울 명절에 다녀온 종묘는 궁궐보다 훨씬 한적하고 조용했다. 저자는 봄 여름보다는 가을 겨울, 특히 단풍이 끝나는 늦가을과 눈덮인 겨울날이 종묘를 관람하기 더 좋다고 한다. 내가 찾았던 때가 눈은 내리지 않았지만 겨울의 차가운 공기와 더불어 푸르디 푸른 하늘 아래 종묘가 아주 엄숙하고 장엄하게 느껴졌다. 과연 새순이 돋아나고 생기가 가득한 봄이나 산천초목이 푸르른 무더운 여름에 느끼는 종묘는 가을, 겨울과는 다르겠구나, 하는 것을 책을 읽고나서야 뒤늦게 깨달았다. 종묘의 또 다른 관람 포인트는 종묘제례와 춘향대제라고 했다. 수도권에 살지 않는 나로서는 참 관람하기가 힘들다는 점이 아쉽다.

궁궐하면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경복궁보다는 창덕궁이 궁궐로의 역할을 더 많이 했다. 많은 왕들이 창덕궁을 사랑했다고 말한다. 창덕궁의 어떤 점이 왕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서울의 5대 궁궐은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이다. 궁궐은 임금이 정무를 보는 곳이기도 하지만 왕의 가족들이 생활하는 생활공간이다. 그런 이유로 각 궁궐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사실 별 감흥이 없었지만, 궁궐에 담긴 왕들의 이야기를 알고 나니 그래서 궁궐이 좀 더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궁궐 곳곳을 살피며 미처 알지 못했던 임금들의 이야기, 특히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문예군주 헌종이나 왕은 되지 못했지만 문화군주의 자질을 보였던 효명세자등의 이야기를 통해 왕 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삶이 안타까웠다.

창덕궁을 가본 적이 있다. 종묘를 읽고 느꼈던 뒤늦은 깨달음처럼 창덕궁을 다시 간다면 느낄 수 있을까? 역대 임금들이 사랑했다던 창덕궁을?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에 들어서면서 돈화문만 보고 건축물만 보았다. 정문 앞 월대는 살피지 못했었다. 아니, 월대라는 공간 자체를 알지 못했다. 월대는 공식적인 행사의 장이며 왕과 신하가 백성들과 소통하는 곳이고 월대의 유무에 따라 궁궐의 품위와 권위가 달라진다고 한다. 월대뿐만 아니라 궁궐 곳곳을 알아가며 만나는 궁궐은 분명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또한 왜 역대 왕들이 경복궁보다 창덕궁을 사랑했는지를 다시 가서 느껴보고 싶다. 많은 사진자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창덕궁을 다녀온 적이 있지만 책만으로는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기에.

일제 강점기때 한동안 동물원으로 수모를 겪었던 슬픈 역사의 궁궐도 있다. 바로 창경궁이다. 창경궁은 영조대왕의 꿈과 한이 서린 궁궐이다. 다들 아는 사도세자의 비극이 있었던 장소이며 영조의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정신을 느낄 수 있었던 궁궐이다. 중종과 소현세자가 세상을 떠난 환경전이 창경궁에 있고, 정조가 태어난 경춘전이 있다. 또한 내전의 법전인 통명전은 왕과 왕비의 생신을 축하하는 진찬연을 비롯한 수많은 궁중연회가 열렸었고, 수많은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했던 장희빈 사건의 마지막 현장이기도 하다.

조선의 궁궐은 지나간 역사의 증거이기도 하지만 지금도 현대인들과 한 공간에서 숨쉬고 있는 우리의 자랑스런 문화유산이다. 궁궐에 대해 전문가적인 지식을 가질 필요는 없겠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고 내가 관심을 가지는 만큼 나에게 다가오는 의미가 남다를 것이다.

궁궐 곳곳에 역대 왕들의 흔적과 가르침이 가득하다. 이제껏 동네 산책하듯 한바퀴 쭉 걷고 말았던 궁궐을 제대로 한번 다시 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먼 옛날에 있었던 일이지만 기뻐하고 슬퍼하던 옛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상상해볼 수도 있었고, 그들의 삶이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서울편1을 통해 오백년 조선의 궁궐이 우리에게 좀 더 인간적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