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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작품

제목 거울 <수필>
작성자 박연아 작성일 2019-11-30
작성일 2019-11-30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연아야. 차 조심하고, 오늘은 뚱한 표정으로 있지 말고 좀 웃어. 알겠지?”

오늘도 어김없이 엄마는 똑같은 잔소리를 한다. 벌써 열흘도 넘었다. 모든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차 조심하라고는 하겠지만 웃으라고는 안 할 것이다. 나는 어릴 때는 애교부리기와 귀여운 표정 짓기를 가장 좋아했었는데 이젠 웃으려고 해도 입 꼬리 한 쪽이 들릴 듯 말 듯 잘 웃어지지 않았다. 내가 잘 웃지 않게 된 속상한 일은 이렇다.

몇 주 전 금요일이었다. 음악 수행평가가 있어 나는 앞에 나가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 아이가 소리 없이 웃기는 표정을 짓고 이상한 춤을 추었다. 웃음을 잘 못 참는 나는 너무 웃겨서 웃음을 터트렸고 그 때문에 노래를 제대로 못 불렀다. 선생님은 아무 말씀 없이 넘어가셨지만 평소 노래를 잘 불렀던 나는 매우 속상했고 웃음 때문에 그랬다고 생각되니 잘 웃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그 뒤로 이런 말들이 자꾸만 나를 따라 다녔다.

연아야, 너 표정이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나한테 화났어?”

며칠 뒤, 그 날은 왠지 그 어느 때보다 더 웃고 싶지 않은 날이었다. 나는 몸을 웅크리고 집으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았다. 한숨을 쉬며 천천히 고개를 돌리니 구석에 있던 거울이 보였다. 그 거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잊고 있던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얼굴이 쏙 들어갈 정도로 작고 귀여운 그 거울은 어릴 적 나의 단짝 친구였다. 나는 거울 속의 또 다른 나에게 종알종알 수다를 멈추지 않았고 종종 울면서 슬픈 일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럴 만큼 소중했던 거울이었지만 학교 공부와 학원 숙제 때문에 거울은 내 기억 속에서 사라졌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거울의 투명한 은빛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랬더니 역시나 거울에는 뚱한 표정을 하고 있는 여자아이의 얼굴이 비췄다. 나는 그 모습을 보기 싫어서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잠시 뒤, 거울에 뭔가가 스쳐 가는 느낌이 들어 고개를 돌려 보니 아주 활짝 웃고 있는 예쁜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연아야, 지금 아주 예쁘게 웃고 있는 나는 너의 또다른 모습이야. 네가 앞으로 찾아

갈 네 모습이지. 부끄러워하지 말고 웃어 봐. 웃음은 행복을 만드는 훌륭한 도구야.

난 널 믿어.”

나는 깜짝 놀라 거울을 다시 바라보았지만 그 아이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 대신 뚱한 내 얼굴이 거울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모습을 계속 바라보자 갑자기 머쓱함이 밀려왔다. 나는 내 표정이 그렇게까지 굳어 있는 줄 몰랐다. 나는 거울을 보고 웃어 보았다. 오랜만이라 어색했지만, 씩 웃고 나니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계속 웃으니 기분은 점점 좋아졌다. 거울이 보여주는 나는 이제 더 이상 안 웃는 아이가 아닌 잘 웃는 아이였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연아야. 차 조심하고 오늘도 즐겁게 보내!”

오늘따라 맑고 투명해 꼭 거울 같은 하늘도 날 응원하는 것 같았다.


<초등학교 4학년, 박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