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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작품

제목 종이가 흩어지던 꿈
작성자 권규린 작성일 2019-11-20
작성일 2019-11-20

꿈 _

예전에 나는 몇 번이고 바람이 세상을 훝고 가는 움직임보다 더 빠르게 바닥으로 떨어지는 종이가 나오는 꿈을 꾸었던 적이 있다.

직접 잉크를 묻힌 펜으로 종잇장에 몇 번이고 글을 다시 쓰려고 했지만, 그때 나는 결국 종이가 바닥을 향해 흩어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

종이는 서로가 서로를 밀어내려는 듯 각자 다른 방향으로 흩어지며 항상 깔끔하지 못한 동선을 유지한 채 허공으로 떠올랐다.

나는 바닥을 향해 고개를 숙여 떠다니는 종잇장 하나하나를 내 두 눈동자에 똑똑히 새기려고 했다. 그게 쓸모없는 짓인 것을 알면서도 나의 뇌리에는 지금이 아니면 저것들을 볼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생각과 그러므로 마지막까지 지켜보아야한다는 생각이 한데 꽂혀있었다.

중력으로 인해 어차피 땅으로 곤두박질쳐서 종이 위에 펜을 두는 것조차 못 할 것을 알면서도, 열심히 보면 종이의 형태는, 매번 똑같이 나온 종이들은 기억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만약 그럴 수 있다면 나라도 그 종이들을 기억해주는 편이 더 애틋하니까 저마다의 속도로 떨어지는 종잇장들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너무나 밝은 빛이 내 눈에 다가오며 강하게 감싸와 나를 깨우려고 해도 나는 눈이 떠질 때 까지 사방으로 흩어지는 종이들을 바라보았다. 꿈에서 깨어나면 무색하게도 오늘 꿈에서 봤던 종잇장은 잊혀 지겠지만, 그렇다면 지금에만 이 종이들을 볼 수 있는 것이니까. 그렇다면 나라도 그 종이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게 된 그 종이들을 기억해 주는 편이 더 좋을 테니까. 오늘 본 종이는 다음에 볼 종이와 똑같아도 다를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조금은 서툴어도 종잇장을 내 눈에, 내 손에, 내 머리에, 내 마음에 하나하나 새기려고 했다. 그게 쓸모없는 짓 인 것을 알면서도 나는 괜히 지금이 아니면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지금이 아니면 볼 수 없을 거라는 걸 알기에 나는 그 꿈을, 그 종이들을 작고 작은 두 눈에 간직하려고 했던 것이다.


나는 요즘도 몇 번이고 비가 땅에 떨어지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바닥으로 떨어져가는 종이들이 나오는 꿈을 꾼다.

그런 나는 아직도 사선으로 떨어지고 땅과 수직을 이루며 떨어지는 종이들을 잡지 못한다. 그렇기에 눈으로 그것들을 담는다. 오늘이 아니면 사라질 수 있기에. 내일이 되면 서로에게 서로가 잊혀 질 수 있기에.

이 시간 이후로 서로가 잊혀 진다 하더라도 이 시간 만큼에는 찬란한 종이들을 머릿속에 눌러 담고 애써 소중히 여기며 간직해야겠다.

종이는 나에게 만큼은 빛 이였다. 종이는 나에게 만큼은 기억되었다.

종이는 나에게 잊혀 지지 않았다. 종이는 나에게 소중한 것 이었다.

그러니 종이가 잊혀 진다고 하더라도, 나의 꿈이 잊혀 진다고 하더라도, 내가 잃어버렸던, 잊어버렸던 꿈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이 너무 마음 아파하며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들은 타인에게 바로 잊혀 질 한낱 먼지와도 같다며, 또는 그것보다 더 못한 존재라며 마음 썩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억하지 못해도 아름다웠던 우리는 그 자리에 분명히 있었으니까. 더 이상 꺼낼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때의 나는 그때의 나로 그때의 그것들을 간절하게 쥐며 잊고 싶지 않다고 애절하게 생각했을 테니까. 잊어버리고 잃어버려도 그것들은 나라는 사람에게 있어 항상 소중한 것들이니까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흩어지는 종이는 내가 꿈을 꾸고 있지 않는 지금 이 시간에도 더 넓은 곳을 향해 흩어지고 있기를 절실하게 바래본다.

소중한 나의 것 이라는 명칭을 받은 나의 소중한 것들은 사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많지만, 사실 그 아무것도 아닌 것들은 예전의 내가 그토록 갈망하고 원하던 것들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나의 꿈은, 나의 종이는 소중했다.

잊혀질지라도 그것들은 언제까지나 소중한 나의 것들이다.


(중학교 2학년 권규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