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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작품

제목 영웅과 재앙의 양면성
작성자 서지호 작성일 2020-04-13
작성일 2020-04-13

어머니 조마리아, 안중근, 그의 아들 안준생의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이 글을 쓰려고 자료조사를 하면서 흔히 쓰고 있는 안중근 의사라는 호칭은 독립군 장군이었던 안중근을 개인이자 테러리스트로 격하시키기 위해 일본이 사용을 유도한 잘못된 표현이라는 것, 우리가 지금껏 안중근 의사라고 알고 있던 위인은 사실 장군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물론 의로운 일을 한 사람이라는 뜻의 의사는 존경하는 대상의 표현이 될 수 있다.

안중근은 대한 의군 참모중장 특파독립 대장으로서 일본과의 전투를 이끌던 장군이었다.

일본과의 전투 중 안중근은 사로잡은 포로들을 풀어 주며

전쟁에도 법도가 있습니다. 지킬 건 지켜가며 싸워야 하고, 포로는 포로다운 대우를 해줘야 합니다. 만민 공법상 정식 수용소가 없으면 포로를 놓아주게 되어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만민공법은 현재의 국제법이다. 안중근은 천주교 신자가 되어 프랑스어를 공부하면서 국제법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국제법이 제대로 지켜지게 된 것은 1949년이었다. 안중근이 이보다 40년이나 앞선 때에 일본군 포로를 돌려보낸 것은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위한 선택이었다. 여기서 나는 내가 평화를 강조하는 천주교 신자인 것이 자랑스러웠다.

수용소가 없으면 죽이면 되지. 미쳤다고 포로를 그냥 보낸다는 말입니까!” 라는 부대의 불만에 안중근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민간인이나 다름없는 이들을 어떻게 잡는 족족 죽일 수가 있습니까... 그건 그냥 살인입니다. 우리가 숭고한 목적으로 싸우고 있지만, 목적이 과정을 정당화시킬 순 없습니다. 의롭게 싸워야 합니다.”나는 의롭게 싸워내는 안중근의 정의로움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또 안중근이 지금까지도 높이 평가받는 이유는 애국심, 그 마음에서 나온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닌 우리나라, 더 나아가서는 동양평화를 위한다는 목적, 그리고 목적을 이루는 과정에서의 떳떳함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안중근에게 되돌아온 것은 일본 포로들과 그들이 이끌고 온 일본 군사들이었다. 수많은 대원들이 전사했고, 안중근은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이때 안중근의 심정은 말도 못할 정도로 비참하고 괴로웠을 것 같다. 자신은 포로들을 믿고 풀어 줬는데, 자신의 선한 마음, 의도가 악함으로 되갚음 당했다는 배신감, 지휘관으로서 잘못된 판단을 내렸다는 죄책감, 자신의 결정으로 많은 동료들이 죽었는데 자신은 살아남았다는 미안함이 복합적으로 안중근의 마음을 괴롭히지 않았을까 싶다.

개인적이고 지극히 인간적인 측면에서의 안중근의 선택은 선하고 옳은 것이었지만 지휘관으로서의 선택으로 결론적으로는 많은 사람을 죽음에 몰아넣은 것이다. 특히 전사한 부대원들의 가족들은 안중근을 원망하며 눈물로 하루하루를 살아갈 것을 알기에 안중근은 죄책감에 시달리며 깊은 반성과 자기성찰을 하며 괴로워했을 것이다.

나는 이런 안중근의 선택을 옳다 그르다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이 선택이 안중근의, 안중근다운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안중근이 아니라면 그 누가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그렇게 괴로워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를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사살을 계획한다. 동료 2명과 하얼빈 역을 중심으로 서로 다른 역에서 거사를 시도했다. 그리고 안중근은 19091026일 아침 9시경에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 사살을 성공한다. 안중근은 이토와 주변인들을 총으로 쏜 후 꼬레아 우라!” 라고 삼창한다. 이는 대한민국 만세! 라는 뜻이다.

안중근은 그 자리에서 체포된 후 법정에 선다. 안중근이 그 자리에서 도망가지도 않고 하나 남은 총탄으로 자결하지도 않은 채 체포된 것이 존경스러웠다. 나 같으면 무서워서 도망가거나 다른 사람에 의해 죽임 당하느니 그냥 내 손으로 삶을 마감할 텐데 말이다.

그는 법정에서 여러 번 자신은 의병 조직인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서 전투 중 적장을 쏜 것이라고 밝히며 국제법에 의거한 군사재판을 요구하며 자신은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전쟁포로로 대우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판사는 안중근을 군인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사건에 배후 관계는 없으며 범행은 안중근 개인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내용은 일본 정부와 안중근 담당 판사가 재판 전에 모의한 것이었다.

판사는 왜 이토를 죽였냐고 물었고 안중근은 그가 동양의 평화를 깨고 한중일을 위험 속에 밀어 넣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결국 안중근은 1910214일에 사형 선고를 받는다.

모두가 기억하는 214일은 발렌타인 데이지만 나는 이번 기회로 214일은 안중근 장군의 사형선고일임을 잊지 말고 기억하기로 다짐해 본다.

그의 어머니 조마리아는 편지로 아들 안중근에게 의로운 일을 했으니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여기지 말고 큰 뜻으로 죽음을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이 편지가 나중에 알려지면서 안중근 모자가 시모시자 라고 불리우는 계기가 된다. 위인전을 읽다 보면 늘 위인들 뒤에는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어머니가 있는데 조마리아 역시 이를 증명해 주는 것 같다.

안중근이 죽고 난 후 안중근의 첫째 아들은 일본군이 준 독이 든 과자를 먹고 죽었다. 그리고 안중근의 아내와 둘째 아들 안준생은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숨어 살다가 안중근의 유족들이 힘들게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김구는 임시 정부가 있는 상해로 안중근의 가족들을 불렀다. 상해에 온지 십여년이 지난 후,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일본은 강경대응을 시작했고, 상해 임시 정부는 사라졌다. 김구는 상해를 떠났다. 여기서 문제가 생기는데, 안준생이 자기 편이라고 믿고 있던 임시 정부 사람들한테까지 버림을 당했다는 것이다.

안준생을 까먹었을 수도 있고, 급한일이 있었을 수도 있다고, 나중에 데리러 오겠지라고 생각하던 안준생은 또다시 버림받고 자기 가족들만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나라보다는 자기와 가족들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라고, 독립운동은 나중 일이라고 여겨졌을 것이다.

하지만 안중근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일제의 탄압때문에 안준생은 안정적인 직업도 없었고, 일을 구할 수도 없었다. 그와 가족들은 정말 목숨만 연명하던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와중에 이토 히로부미 아들 이토 히로쿠니가 이토 히로부미를 추모하는 박문사라는 절에서 이토 히로쿠니에게 사과를 하라고 말한다. 그렇게만 한다면 안준생을 향한 감시망을 모두 없애주고 그가 편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것이다.

안준생은 갈등했다. 그에게 사과하자니 아버지를 부정하고 변절자가 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계속해서 의문이 들었다. 안준생은 그런 의문들을 해결하면서 자기 합리화를 마치고 이토 히로쿠니에게 사과를 한다. 그리고 다시 만난 안준생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수고했다고 한다.

이걸 보면서 든 생각은 안중근이 그렇게 목숨을 바쳐서 죽인 이토 히로부미에게 자신의 아들이 사과를 하면 안중근이 정말 분할 것 같다. 그리고 안준생은 자존심도 없나라는 생각이었다. 또 그런 안준생에게 수고했다며 격려해준 그의 어머니를 보며 그 어머니에 그 아들, 시모시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자리에서 제안을 단호히 거절하고 잡혀 죽어야 했나요? 영웅 아버지처럼 위대하고 영광스럽게? 사실 아버지는 재판도 받고 가시는 날까지 시끌벅적하기라도 했지만, 나는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그야말로 개죽음 아니었을까요? 내 형은 7살 나이에 자기가 왜 당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독을 먹고 죽어버렸죠. 나도 그렇게 죽었어야 했단 말입니까? 아무도 기억 못하고 아무런 의미도 없는 그런 죽음을? ? 내가 안중근의 아들이어서?

아버지는 나라의 영웅이었지만 가족에겐 재앙이었죠.

나는 나라의 재앙이지만 내 가족에겐 영웅입니다.”

이 상황에서 그 당시 사람들은 안준생에게 호부견자라며 손가락질을 했다.

이 부분을 보면서 마음이 복잡했다. 안중근이 포로를 풀어줄 때 인간으로서는 선하지만 지휘관으로서는 옳지 않은 것 같다는 안중근의 양면성처럼, 그의 아들도 가족에게 영웅이 되고 나라에는 재앙이 되느냐? 아니면 나라에 충성을 바친 영웅이 되고 가족들에게는 재앙이 되느냐?의 문제에서 안준생은 아버지 때문에 자기와 가족들이 겪은 고통을 알기에 자신은 가족들에게 만이라도 영웅이 되고자 했던 것 같다.

또 안중근은 자기가 선택해서 독립운동을 하고 자기의 행동에 의해 영웅이 되었고, 그 모든 것이 모두 자기 선택이었지만 안준생은 태어나 보니 안중근 아들이었는데, 그에게 아버지처럼 나라를 위해 죽으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 아니었을까?

결국 선함과 악함, 정당함과 부당함, 영웅과 죄인은 동전의 양면처럼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한 면만 보고 누군가를 판단해서는 안된다. 그 사람에게도 그런 선택, 그런 일을 한 어쩔 수 없는 사연이 있었을 것 이다. 또 확실히 그 사람이 나쁜 사람, 죄인이라고 해도 그런 선택은 그 사람만의 선택이었는지, 사회와 환경이 만든 또 한명의 악인은 아닐지 생각해봐야 한다.

안중근 장군의 마지막 1년을 집중 조명한 뮤지컬<영웅>에서는 안중근 장군이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이유를 말하며 재판장과 방청객에게 던진 누가 죄인인가? 라는 말을 나는 우리 모두에게 던져본다. 영웅을, 또 그의 가족들을 지켜주지 못한 우리 또한 죄인이 아닐 수 있겠는지 한 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과연 누가 죄인인가?


중1 서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