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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작품

제목 숲과 정원에서 찾은 치유의 방식 <야생의 위로>
작성자 최자민 작성일 2020-05-08
작성일 2020-05-08

"우울한 날에도 나 자신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사실은 확실히 위로가 된다."


장기화 된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사회적 활동이 위축되고, 감염 우려가 높아지면서 발생하는 스트레스와 불안감에서 오는 우울증. 이른바 코로나 블루(Corona Blue, 코로나 트라우마)로 일상은 깨어지고 반복되는 무력감으로 번아웃이 왔을때, 숲의 서사시 같은 이책을 만났다.


이책은 일러스터레이터이자 박물학자인 저자가 25년간 심각한 우울증과 싸우면서 꽃과 식물, 자연물에 관한 열두달을 담은 기록으로, 매일 산책길에서 온전한 자연을 대면하면서 심신의 치유 효과를 생화학과 신경과학 연구에 근거하여 생생하게 기록한 책이다.


담백하고 섬세한 문장들도 좋지만, 에마미첼이 직접 스케치한 그림과 수채화, 사진을 담은 이책은 페이지를 넘길때마다 새들이 재잘거리고 꽂이 노래 하는, 산림욕을 하는 듯한 간접체험을 하게 해준다.


OCTOBER · 10월 _ 낙엽이 땅을 덮고 개똥지빠귀가 철 따라 이동하다

NOVEMBER · 11월 _ 햇빛이 희미해지고 모든 색채가 흐려지다

DECEMBER · 12월 _ 한 해의 가장 짧은 날들, 찌르레기가 모여들다

JANUARY · 1월 _ 무당벌레가 잠들고 스노드롭 꽃망울이 올라오다

FEBRUARY · 2월 _ 자엽꽃자두가 개화하고 첫 번째 꿀벌이 나타나다

MARCH · 3월 _ 산사나무잎이 돋고 가시자두꽃이 피다

APRIL · 4월 _ 숲바람꽃이 만개하고 제비가 돌아오다

MAY · 5월 _ 나이팅게일이 노래하고 사양채꽃이 피다

JUNE · 6월 _ 뱀눈나비가 날아다니고 꿀벌난초가 만발하다

JULY · 7월 _ 야생당근이 꽃을 피우고 점박이나방이 팔랑거리다

AUGUST · 8월 _ 사양채잎이 돋고 야생 자두가 익어가다

SEPTEMBER · 9월 _ 블랙베리가 무르익고 제비가 떠날 채비를 하다


책은 10월부터 시작되지만 봄이라 4월부터 읽었다. 4월은 숲바람꽃이 만개하고 제비가 돌아온다. 저자는 뇌세포를 덮쳤던 자살충동에 대해 상세히 기록해 놓았다.


"온갖 상념이 가파른 언덕길을 구르듯 빠르게 움직이고, 자기소멸을 향한 거세고 긴급한 욕망이 폭주를 부추기는 치명적인 상태에 이르러 뇌세포를 덮침.".


바로 내가 경험한 특정한 상태였다. 물론 자살충동까지는 아니였지만, 코로나 시국에 자영업을 하는 나는 무시무시한 스트레스였다. 정신적폭주와 붕괴, 부정적 사고로 심신은 지칠대로 지쳐 한숨만 나오고 수면제로 하루종일 잠만 잤던날도 있었다. 그나마 책과 SNS로 페르소나인 또다른 나로 견디긴 했지만 쉽지 않은 시간들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면서 조심스럽게 책을 들고 근처 공원숲으로 갔다. 하루하루 천천히, 저자처럼 풀꽃 한포기에서 기쁨을 찾고 지천의 이름모를 꽃들과 대화를 하다보니 어느새 회복과 치유효과는 뚜렸하게 나타났다. 내친김에 베란다에 꽃과 초록의 여러 식물들도 심었다.


책에 따르면 산책을 하는 동안 들이마시게 되는 ‘피톤치드’는 인간의 면역계와 내분비계, 순환계와 신경계에 작용하여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의 감염을 막아준다. 우리는 자연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무의식중에 식물이 생성한 피톤치드를 들이마시며 그야말로 몸을 ‘소독’하는 것이다. 또한 미코박테륨백케이와 아직 밝혀지지 않은 다른 균주들과의 접촉이 뇌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을 맞추고, 흙을 만지는 일은 요가와도 같아서 만족스럽고 은근히 기분을 달래줄뿐아니라, 우울한 생각을 쫒아내는데 분명한 도움을 준다고 한다.


저자가 가르쳐준 자연치료법으로 지금은 코로나 블루는 많이 걷히고 일상을 찾으려 노력중이다. 이책은 자연이 어떻게 마음을 치유하는가에 관해 정교한 문장, 아름다운 사진과 그림으로 마음의 균형을 잡아주는 책이다.


추천사에서 <야생의 위로>는 항 우울제이며, 정신과 영혼을 달래주고 자기 안의 회복탄력성과 스스로 나을 수 있는 힘을 발견하게 해준다고 한다. 따뜻한 햇살 같은 이책으로 삶의 의욕과 내가 가진것에 대한 기쁨을 발견하게 해준 저자에게 무한한 존경과 경외를 보낸다. 참 아름다운 책이다.


P.64

나는 집에 돌아와서 오늘 해변에서 찾은 것들을 지금껏 모은 조개껍질과 화석 옆에 펼쳐 놓는다. 채집한 식물과 화석을 늘어놓고 살펴볼 때 내 마음은 그림을 그리거나 빵을 반죽할 때와 비슷한 상태가 된다. 내면의 갈등이 누그러지고 평온이 찾아든다. 나는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해 선택한 물품을 진열하며 자그마한 임시 박물관을 조성한다. 그 과정은 위안을 주고 우울을 거둬 갈 뿐만 아니라 이 사물들을 찾아낼 때 느꼈던 만족감을 증폭시킨다. 나는 정리하고 진열하는 일과 연결된 정신적 경로에 호기심을 느낀다. 그것이 우리 조상들이 채집 여행 후 손에 넣은 잎과 열매, 씨앗, 견과류와 조개를 처리하던 과정까지 거슬러 올라가는지 궁금하다. 이 연결고리를 제대로 연구하려면 상당한 예산과 고고학자, 뇌신경학자의 작은 군단이 필요하리라. 내가 아는 것은 단지 발견한 것들을 가지런히 늘어놓는 소위 ‘놀링knolling’이라는 행위가 스트레스를 덜어주고 은근한 도취감을 준다는 것이다. ⠀⠀⠀⠀⠀⠀⠀⠀⠀⠀⠀⠀⠀⠀⠀⠀⠀⠀⠀⠀⠀⠀⠀⠀⠀⠀⠀⠀⠀⠀⠀⠀

P.143

검은지빠귀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나는…… 그렇다, 행복하다. 서정적이고 덧없는 그리운 노랫소리가 머릿속에 현란한 색의 불꽃을 터뜨린다. 모든 것이 평온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지난달에 묘사했던 암담한 상태는 끝났다. 나는 어마어마한 안도감을 느끼지만, 살아오면서 이미 몇 차례나 같은 상태에 빠진 적이 있다. 그것은 마치 흑요석 칼날처럼 음침하고 치명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