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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혼을 뒤흔들어놓은 책, 《가재가 노래하는 곳》 by 델리아 오언스
작성자 최현영 작성일 2022-06-10
작성일 2022-06-10



이처럼 저의 영혼을 뒤흔들어놓은 책이 또 있을까요?

베스트셀러라는 말은 너무나 팩트 자체의 빈곤한 표현이었습니다.

제가 이 세상에 살아 있어서 이 책을 만나서 지극한 행복을 느낀다면

그것 역시 지나친 감상과 표현 과잉일까요?

아직도 독자인 제가 책 속으로 들어가

갈매기가 날아다니고

희귀한 조개들과 온갖 새들의 깃털이 떨어지는

카야의 습지의 덤불 뒤에서 카야의 일생을 지켜보고 있는 듯해요.

헤어날 수가 없네요.

성장소설이면서 의미심장한 러스브토리이고, 또한 살해 미스터리를 품은 법정소설인 이 기적의 소설은 최단 시간에 밀리언셀러에 등극했지만 지금도 계속 현재 진행형으로 미국을 비롯한 이 책이 번역된 나라에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옮긴이의 말

역자님이 쓰셨듯이 외로움 속에서 바다의 품에서

야생의 숲 속에서 동물들을 벗 삼아 살아온 강인한 인간 카야의

성장소설이면서

그녀의 마음을 산산조각 낸 첫사랑,

한때 잃었다가 다시 찾은 평생의 사랑(love of her life) 이야기이며

허우대만 멀쩡한 마을 최고의 난봉꾼 '체이스'의

시체 발견에서 시작된 후더닛(whodunnit) 미스터리입니다.

한 인간의 숭고함과 강인함,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휴머니즘 소설이라고 표현하고도 싶습니다.

발군의 묘사력

소설 전체에 생동감 있게 살아있는 생물들에 대한 세밀한 관찰력과

그 행동 하나하나를 표사한 아름다운 표현력,

방대한 지식에서 혀를 내둘렀는데,

아프리카에서 7년간 야생동물을 연구한 동물생물학자인

저자의 이력을 보고서야 수긍이 갔습니다.

습지는 늪이 아니다. 습지는 빛의 공간이다. 물속에서 풀이 자라고 물이 하늘로 흐른다. 꾸불꾸불한 실개천이 느릿하게 배회하며 둥근 태양을 바다로 나르고 수천 마리 흰기러기들이 우짖으면 다리가 긴 새들이-애초에 비행이 존재의 목적이 아니라는 듯-뜻밖의 기품을 자랑하며 일제히 날아오른다.

외로움을 아는 이가 있다면 달뿐이었다.

예측 가능한 올챙이들의 순환고리와 반딧불이의 춤 속으로 돌아온 카야는 언어가 없는 야생의 세계로 더 깊이 파고들었다. 한창 냇물을 건너는데 발밑에서 허망하게 쑥 빠져버리는 징검돌처럼 누구도 못 믿을 세상에서 자연만큼은 한결같았다.

이 책의 주요 시대적 배경인 1952~1970년의 차별적 세상에서

여성으로 살면서 과학을 문학의 언어로 승화시킨

<침묵의 봄> 등의 저자 레이첼 카슨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아름다운 언어로 가득 메워진 책을 몇 번이고 다시 읽게 될 듯합니다.

탄탄한 서사

1969년 체이스라는 마을 최고의 난봉꾼의 시체가 발견됩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1969년의 체이스 사망사건 조사와

1952년 카야가 홀로 남게 된 이야기가 교차하며 진행됩니다.

1952년 카야의 엄마는 난폭하고 제멋대로인 남편을 두고 떠납니다.

그리고 몇 주 안 있어 카야의 오빠, 언니들도 떠납니다.

바로 위인 조디 오빠까지 떠나버리자 카야는 아버지와 둘이 남습니다.

엄마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카야는 강인한 생명력으로 살아갑니다.

조디 오빠의 친구인 테이트는

카야의 첫사랑이었고, 보호자였고,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는 카야에게 글을 가르쳐주었고 인생의 빛을 비춰주었습니다.

하지만 대학에 진학하고 넓은 세상을 보며

카야가 자신의 인생에 부담으로 느껴지지요.

카야는 말할 수 없는 상처를 받습니다.

카야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여인으로 자라납니다.

마음 속에 테이트를 잃은 슬픔과 독을 품지요.

외로움은 그녀를 좀 먹고, 체이스라는 나쁜 남자에게 빠져듭니다.

또 한 번의 배신.

1969년 시체로 발견된 체이스 주위에는 발자국이 하나도 없습니다.

단서로 발견된 빨간 섬유, 그것은 카야의 물건이었고

카야는 살인 용의자로 몰리게 되고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됩니다.

그녀의 편에 서 준 관록 있는 노 변호사 톰과

그녀를 기소한 검사측의 법정 장면 또한 압권입니다.

양쪽의 팽팽한 변론 대결.

성장소설, 연애소설, 미스터리의 요소가

이렇게도 깔끔하고 아름답게 직조될 수가 있다니요.

일흔에 쓴 이 작품이 첫 작품이라는데 천재인가 봅니다.

인간의 위대함은 사랑

어엿한 학자가 된 테이트는 자신이 카야를 배신한 것이

인생의 가장 큰 실수였음을 깨닫고 그녀에게 돌아옵니다.

카야는 마음을 열지 않지만, 테이트는 그녀 곁에 머뭅니다.

테이트, 내 말 들어. 나는 오랫동안 사람들과 함께 살기를 갈망했어. 정말로 누군가 내 곁에 머물러줄 거라고. 실제로 친구와 가족을 갖게 될 거라고 진심으로 믿었어. 집단 어딘가에 소속될 수 있다고 말이야. 하지만 아무도 내 곁에 머물러주지 않았어. 그쪽도 떠나버렸고. 우리 가족도 내 곁에 남지 않았지.

이렇게 말하는 카야의 마음 속에서는 피가 철철 나는 것 같네요.

외로움이 그녀에게 상처는 내었지만, 파괴하지는 못 했습니다.

그녀에게는 은밀한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나이 든 흑인 '점핑', 점핑 씨 부인 메이블이 카야를 딸처럼 보살폈지요.

그들 역시 약자였기 때문에 카야를 구원할 수는 없었지만요.

"내 앞에서 거짓부렁 꾸며내고 하지 말아요, 미스 카야. 순무 트럭에서 갓 굴러떨어진 똥멍청이도 아니고. 누가 이렇게 때렸어요?"

카야는 말없이 서 있었다.

"체이스 씨가 이런 짓을 했어요? 나한테는 얘기해도 되는 거 알잖아요. 아니, 말 안 해주면 여기서 꼼짝도 안 할 겁니다."

언젠가 점핑 씨가 지나갈 때 그를 조롱하며 돌을 던지는 백인 철부지들에게

카야는 홍합을 잔뜩 담은 자루를 휘둘러 혼내줍니다.

어찌나 통쾌하던지... 귀신아, 요괴야, 나쁜 놈들 좀 잡아가라~~

세라는 카야를 슬쩍 쳐다보았고, 까마득히 오래전 맨발로 장을 보러오던 어린 소녀를 기억했다. 아무도 모르겠지만, 카야가 셈을 배우기 전에 세라는 꼬마에게 잔돈을 더 얹어주곤 했다. 그리고 자기 주머니에서 비는 돈을 채웠다. 물론 카야가 들고 온 돈이 워낙 푼돈이라서 기껏 동전 몇 푼밖에 줄 수 없었지만, 그나마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카야는 잔소리꾼으로 기억했던 식료품점의 점원 세라 씨는

카야는 몰랐지만, 몰래 잔돈을 챙겨주곤 했더군요.

그리고, 테이트의 아버지 스커퍼 씨는 처음에는

여느 사람들처럼 카야에게 편견을 가지고

왜 아들이 카야에게 어려서부터 빠져 있는 건지 이해하지 못하지만,

재판이 진행되며 카야에 대한 편견을 벗습니다.

그리고 카야의 편에 선 노련하고 유능한

노변호사 톰의 변론 모습도 인상적이지요.

배심원들도 결국 완전하지 못한 증거들이 꺼림칙하여

카야에게 무죄를 선언합니다.

카야는 드디어 테이트의 진심을 받아들이고

그와 평온한 생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밝혀지는 진실.


※ (사)한국독서문화재단의 독서문화사업으로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