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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작품

제목 또 다른 나의 자아에게
작성자 김현진 작성일 2019-06-10
작성일 2019-06-10

안녕, 요즘은 좀 어때? 너의 목을 조르던 불안함도, 너 자신을 짓눌러 한없이 추락시키던 우울함은 이젠 좀 사라졌니? 너를 한없이 괴롭히던 외로움들과, 너 스스로를 죽이려던 자괴감들이 뭉쳐서 구름들을 만들었었잖아. 결국 그게 폭풍우를 끌고 왔고. 넌 일어설 의지조차 떠내려 보냈었지. 그렇지만 요즘은 좀 나아진 것 같아. 실없는 장난도 치고 목소리에 생기가 넘치더라. 정말 다행이야. 난 니가 그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할까봐 엄청 걱정했었거든.

 

그동안 수고했어. 난 니가 충분히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해. 너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니가 의지박약이라고 말하지만, 수년간 해온 노력을 해왔다는 걸 알아. 순간순간 절실히 사라지고 싶었다는 것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했다는 것도 난 잘 알아. 니가 괜찮다고 말할 때마다 시무룩해하며 시들어 가던 너의 마음을 이제서야 마주한 것 같아서 정말 다행이다.

 

더 방치했다면 아예 살리지 못했을지도 몰라. 네 성격이 좀 극단적이잖아. 충동적이지 않아서 놓지 않았다는 거겠지. 넌 니 삶을 굉장히 사랑하니까. 아니라고? 죽을 것 같다가도, 막상 죽음을 생각하면 두려움에 떨잖아. 생각을 못하고, 숨을 못 쉬고 니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마주할 수 없다는 것에 엄청난 슬픔을 느끼잖아. 그 책임이 따갑게 내리쬐어 숨통을 조이던 순간에도 널 잡아줬겠지. 아예 포기해버리기 전에 발견하고 물을 줬으니 조금씩 생기를 찾아가는거야. 이젠 물을 주는 것에 초점을 맞추자.

 

비록 살아온 년도는 발가락을 합쳐서 표현할 수 있을만큼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인생 최대의 결정을 앞두고 있다던데 어때? 생각은 정리 된거야? 그 생각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니 감정들이 다시 찾아와 폭풍우가 되어 널 휩쓸고 가겠지. 그럼 니 생각들은 다 씻겨 내려가고 결국 넌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있을거야. 미친 듯이 괴롭고 절망스러워 하는 거 알아. 앞은 보이지 않고 막상 이 선택을 하려니까 니가 미래에 성공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으니 막막하지. 그렇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잖아. 수많은 불안감들, 주위의 기대감들, 그리고 그 결정으로 인해 받게 될 시선들이 따라오지만 말이야.

 

왜 그랬어? 더 버틸 순 없어? 다시 도전할 생각은 없는거야? 그게 최선이야? 다른 방법은 없었어? 조금이라도 용기를 내볼 수는 없는거야? 너무 뻔한 질문을 한 것 같네. 넌 다시 돌아가도 똑같은 결정을 할텐데 말이야. 사회적 질서를 거스를 생각이 없고, 거스려고 해도 따라올 고통들이 수긍하는 것보다 훨씬 크기가 컸겠지. 그래도 다행이다. 니가 한 선택에 대한 후회는 안 하고 있는거잖아. 그로 인해 따라온 책임을 져야하는 상황에 놓였는데도 과거의 너를 원망하진 않으니.

 

이것보다 더 심한 일들이 닥쳤을 때도 견뎠는데 지금은 왜 무너져버렸는지 알아? 이젠 감정이 너의 생각을 좌우하지 않으니까 이젠 답을 냈을 것 같은데. 맞아, 넌 사람을 너무 좋아해. 상처를 받더라도 또 다시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덜컥 믿어버리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는데도 말야. 멍청한 건지, 순진한 건지. 물론 그게 나쁜 건 아냐.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지. 하지만 넌 정도가 지나치니까 단점들이 더 와닿는거야.


무슨 말이냐고? 넌 의존하려는 성향이 더 강하잖아. 니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건 좋은 게 아냐. 물론 힘들 때, 니가 일어서기 어려을 땐 도움을 받는 건 좋은거야. 그렇지만 넌 그걸 넘어서잖아. 만약 그 사람들이 없다면 그 땐 넌 살아갈 수 없을거야. 그리고 그 사람들도 너의 투정들, 그리고 감정들을 받아주는 것에 한계가 있어. 너부터도 지치잖아. 니가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방법을 익혀보자.

 

넌 워낙 니 선택에 확신이 없고 자신감이 없으니 지금도 고민하고 있을거야. 니 입으로 말하길 꺼려하니, 너의 선택을 누군가 알고 말해주길 원하지. 막상 상대방이 그 선택을 알아채면 부끄러워 피하려고 하고. 앞으론 니가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살아. 어차피 너의 인생이야. 그 누구도 니 인생을 살아주지 않아. 생각이 많으면 많아질수록 무슨 선택을 해도 후회할거야. 두 갈래의 선택지 각자의 장단점을 더 파악할 수 있으니까. 니가 최대한 덜 후회할 것 같은 선택지를 골라. 또한 감당할 수 있는 책임의 무게가 담겨 있는 선택지를 골라줬으면 좋겠어. 이 결정은 니 인생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고, 미래의 너의 숨통을 조일 수도 있어.

 

'이젠 어떻게 할 생각이야?' 라는 질문에 당당해지기 위해서 열심히 계획을 짜던데 실천은 하고 있는거야? 잘 안 되는 것 같던데. 이젠 니 선택으로 인해 따라오는 책임을 이행하기 위해 이 악물고 살아. 미래에, 다시 이 시절을 돌아보았을 때 후회가 없도록. 그리고 앞으론 너 자신을 위해 살아. 남들한테는 자기 자신을 위해 살고, 제일 우선시 하라고 하면서 정작 넌 그렇지 않더라. 말로만 쉬운 거란 걸 이젠 제대로 깨달았을거라고 생각한다.

 

도피라고 생각하지마. 아냐, 도피이긴 하지. 그래도 이번 기회를 통해서 니가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는데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배우는 시간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더 이상 여린, 나쁘게 말하면 약해 빠진 사람이 아닌 강인하고 단단한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이 거치고 험한 세상을 이겨낼 수 있을거야. 너의 자아를 확립하여 이젠 너 자신을 더 아끼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미래에 니가 이 편지를 읽었을 때 당당하고, 후회가 없길 바라. (고등학교 1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