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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는 아파트 경비원입니다 / 최훈
작성자 노문희 작성일 2021-12-21
작성일 2021-12-21


가끔 집으로 가져오는 음식 중 일부를 아파트 경비 초소에 가져다드린 적이 있다시골에서 가져온 단감 몇 개비타민 음료여름에 집으로 들어오다가 사 온 냉커피일상에서 소소하게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누군가에게 베풀 수 있는 마음이려니 싶었다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지만어려운 일도 아니니 선뜻 보이게 되는 호의다그런데 그렇게 한 번씩 보이는 호의에도 경비 아저씨는 고맙다며 고개 숙여 인사하신다나이가 지긋하신조금 젊으신 분은 어쩌면 나에게 나이 차 있는 큰 오빠 정도로 보이는데굳이 그렇게까지 인사하지 않으셔도 되는데오히려 인사받는 내가 민망할 때가 있다왜 그렇게까지 하실까 궁금했는데이 책을 읽고 보니 경비분들의 고충이 이해되기도 한다.

 

저자는 젊은 날 회사에 소속되어 열심히 일하며 살았다외국 파견을 나가기도 하면서 한국에서 혼자 가정을 책임지는 아내를 힘들게 하기도 했다사업을 하면서 가진 것 모두를 잃기도 했다취업하려고 여기저기 이력서를 냈지만회신을 주는 곳은 없었다스스로 눈높이를 좀 낮춰야겠다고 마음먹고 끝까지 매달린 경비 업무 일을 따내게 되었다경비 교육을 받기 위한 십만 원 남짓의 돈이 없어서 친구에게 빌렸다그렇게 얻은 일터였다쉽게 물러날 곳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었다남들에게 경비 일을 한다고 일부러 말하지는 않지만그는 자기 일을 고마워하며 책임을 다한다그런 그에게 아파트 경비 일은크지 않은 금액이지만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에 감사한 일이기도 하면서스스로 아파트 시설물이라고 주문을 외우며 자존감에 상처받는 일이기도 하다.

 

그의 경험이 낯설지 않은 건이미 비일비재하게 접했던 일이기 때문이다전 입주민 대표에게 아는 척하지 않았다고 경비를 주시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도대체 전 입주민 대표의 존재는 뭐란 말입니까?!), 쓰레기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지 않은 입주민들 때문에 음식물 쓰레기 날벼락을 맞기도 하는(왜 음식물 쓰레기를 일반 쓰레기 속에 몰래 숨겨 버리시는 건가요?!), 밤에 몰래 쓰레기장에 내다 버린 보라색 여행용 가방의 주인을 찾는 일에 시간을 빼앗기고(쓰레기 수거 비용 3천 원 아껴서 부자 되시려고요?!), 입주민 사이의 갈등으로 뿌려진 왕소금을 이물질이라고 부르며 치워달라고 경비를 부르는 일에 허탈해한다.

 

경비원과 입주민 사이에 분쟁이 생기고 나면 어느 편의 옳고 그름은 중요하지 않다무조건 입주자의 승리다경비원과 트러블이 있다고 입주자가 이사를 나가는 경우는 없다나가는 쪽은 언제나 경비원이다말이라도 잘못 덧붙였다가는 그 자리에서 계약 만료다당장이 아니더라도 계약이 끝나는 1~2개월 후에는 무조건 연장 없이 계약 만료즉 해고다정규직이 될 수 없는 모든 사람들의 설움이겠다. (64페이지)

 

굳이 아파트가 아니어도 이런 진상들을 마주하는 일은 흔하다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한 나라의 대통령도 그러면 안 되는데 입주민이라고 갑질 행태로 사람을 자기 발밑에 두려는 사람사람 대 사람이 아니라 계급으로 나누어 하찮게 여기는 사람나는 가방끈의 길이로 상식을 생각하진 않는다이렇게 비매너에 인간답지 못한 행동을 하는 이들이 무식하다고 보인다아파트 경비에게 신경 쓰고 대우해주라는 말이 아니다적어도 이분들이 자기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며 일하는하나의 인격체로 살아가는 당신과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항상 상기하며 살아야 하는 게 맞는 건데왜 그걸 자주 잊고 당신과 똑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식으로 하찮게 여기느냔 말이다혹시 지금 외제차를 타고 비싼 아파트에 산다고 당신이 그 아파트의 경비와 다른 삶으로 인생 마무리할 거로 장담할 수 있을까?

 

저자가 3년여의 세월을 아파트 경비로 일하면서 틈틈이 적은 메모 같은 글을 책으로 엮어낸 글이다그도 인생 살아오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시쳇말로 잘 나가던 때도 있었고 실패도 겪었다그런데도 사람을 위아래로 나눠서 보지 않았다그의 아파트 경비 경험은 세상을 다시 배우는 시간이었을 것 같다그가 처음으로 경험하는 일에 많은 생각에 잠겼으리라본인도 아파트에 실거주하면서 입주민과 경비를 동시에 살아가고 있지만인간다움을 잊지 않고 살아가려고 애쓰는 모습이 그의 행동 곳곳에서 보인다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한다세상에는 내가 다 모르는 인간의 모습이 너무 많구나사람이 이렇게 잔인하고 마음이 작을 수가 있을까 싶어 안타깝기까지 했다경비 초소에서 졸고 있는 그를 지적하며 마치 내가 좋은 사람이니까 이런 것도 말해주는 거야다른 사람에게 걸렸으면 너는 끝이야.’라는 뉘앙스로 훈계하는 입주민 때문일까그는 스스로 투명인간이라 표현하며경비원 복장을 하는 순간 자기 안의 모든 감정을 버린다마치 그 자리에 없는 사람처럼입주민이 부당하게 대우해도 그런 일이 없던 것처럼 뒤돌아서야 하는 자세로 일한다.

 

도대체 입주민들이 아파트에서 자기 업무를 하는 경비노동자를 어떻게 대하고 있기에 이런 이야기하는 걸까스스로 아파트의 움직이는 시설물로 주문을 걸면서 하루를 사는 기분이 어떤 건지이 책을 읽고서야 조금 알게 됐다작가 장강명이 이 책을 추천하면서 했던 말이 글을 읽고 자신의 인생이 바뀌었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다. 30년 넘게 아파트에 살면서도 알지 못했던 경비노동자의 삶을 알게 되었다고 말하는 장강명의 추천사에 공감한다혹시라도 내가 하는 한 마디가 그들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고내가 귀찮아서 제대로 하지 않은 일에 그들의 노동이 증가하게 되는 원리가 적용되는 곳이 아파트였다오늘도 분리수거에 시간이 너무 많이 들었다고 투덜대면서 들어왔던 것을 급히 반성한다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을 때 누군가의 일은 더 늘어나고그들의 자존감에 상처가 되는 일을 만든다물론 아파트에 사는 사람 모두가 진상 입주민은 아니다그 안에는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사람근무 위치가 변한 것을 알고 안부를 묻는 입주민도 있다사람 온기를 넣어주는 이들이 훨씬 많겠지만일부 입주민 때문에 받은 상처는 너무 커서 다른 사람이 건넨 온기를 넘어설 때가 많을 거다.

 

나락에 떨어져 보니 전에는 보이지 않고 알지 못했던 타인의 삶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특히 그 거울 앞에 선 나의 모습 또한 눈에 들어온다몸이 낮아지고 난 후에야 비로소 나의 눈높이가 움직인다나의 한심함을 뼈저리게 통감하면서 지금 나의 처지가 나의 선생이 되었음을 느낀다. (130페이지)

 

이분들의 이야기가 낯설게 다가오지 않는 건아마도 내 주변에 아파트나 건물 경비 일을 하시는 분을 종종 봐서 그럴 거다대부분 아파트 경비 일을 하시며꼬박 24시간을 근무하고 24시간을 쉰다퇴근하고 지친 몸을 뉘면 피곤해도 쉽게 잠이 오지 않고혹시라도 개인적인 볼일을 하루가 빠듯하다남들은 하루 일하고 하루 쉬니까 좋겠다고 할지 모르지만하루를 쉰다고 해서 그 하루가 느긋하게 흐르는 것도 아니다가족과 얼굴도 보고 소박한 저녁 식사를 함께할 수도 있는 시간한 개인의 노동 기록이지만누구나 비슷하게 품고 사는 하루의 이야기다무엇보다 아파트 경비노동자의 하루를 들여다보는 일에 누구라도 선뜻 동참해주었으면 싶다그 작은 경비 초소에서의 하루가 어떻게 흐르는지언젠가의 내가내 가족이내 지인이 그 자리에서 보낼 하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공감해주기를.

 

현실적인 경비 업무 교과서가 아닐까 싶다좀 더 깊고 무겁게 얘기해도 되겠지만이 책은 이것으로도 충분했다이론에만 머물지 않은실전 경험담이 그대로 담겼으니어쩌면 누군가에게 전해 들은 말보다 더 적나라하게 다가올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