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섭의 '아네모네 마담'이라는 소설을 보면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이 자주 언급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대학생이 아네모네 찻집에 올때면 항상 신청곡으로 부탁하는 음악이 바로 '미완성 교향곡'입니다. 첫사랑의 안타까운 심정과 미완성 교향곡의 미완숙함이 주는 절묘한 사랑의 느낌. 바로 아네모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문뜩 머리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아닌가 합니다.

아네모네는 미나리아재비과의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인 식물입니다. 아네모네는 그리스어인 아네모스(Anemos:바람)에서 비롯된 이름이라고 합니다. 사랑의 괴로움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아네모네. 그 뜻처럼 4~5월경에 피는 꽃을 보고 있노라면 안타까움이 먼저 하는 듯 합니다. 빨간색, 흰색, 분홍색, 하늘색, 노란색 등 다양한 색깔의 꽃이 피며 홑꽃과 여러 겹꽃의 모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햇볕이 잘 들고 통풍이 달되는 곳이면 언제든지 아네모네의 아름다운 자태를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죽음을 앞둔 한 남자에게 삶의 희망을 안겨주려는 여인 그리고 그 여인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불태우려는 남자의 사랑이야기인 소설 '아네모네'(작 최필원) 처럼 진하고 잔잔히 밀려드는 애절한 사랑의 향기를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꽃에 얽힌 이야기

그리스신화를 보면 아네모네에 관한 많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아네모네와 아도니스가 연관된 이야기가 특히나 많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서식하는 곳이 같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고 꽃모양이 비슷하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정확한 이유는 전해지지 않지만 지금부터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주 먼 옛날 지금의 시리아라는 나라가 자리하고 있는 지역에 아도니스라는남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 당시 그 지역을 지배하고 있던 나라의 왕자였다고 합니다. 그는 그 지역에서 아름답기로 유명한 아주 미소년이었습니다. 아도니스의 소문은 가지역으로 퍼졌고 급기야 아름다움과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비너스)에게 까지 들어가 그녀의 마음을 빼앗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말 아도니스의 아름다움을 시기한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를 몰래 납치하여 지하세계의 왕 하데스의 아내 페르세포네에게 맡겨버렸습니다. 그렇게 하여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가 지하세계에 있으니 자신이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유일한 존재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어느 덧 아도니스는 청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하데스의 궁전에서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늠름한 존재였습니다. 한편 그를 맡았던 하데스의 아내 페르세포네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도니스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아도니스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아프로디테는 어느 날 우연히 청년의 모습이 된 아도니스를 보게 되었습니다. 어린시절 보다 더욱 아름다워진 모습의 아도니스를 보자마자 아프로디테는 사랑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지난날의 행동은 벌써 잊어버린 아프로디테. 급기아 그녀는 페르세포네에게 아도니스를 달라고 부탁하게 됩니다. 하지만 페르세포네 역시 아도니스를 사랑하고 있기에 돌려줄리 만무했습니다. 그래서 아프로디테는 모든 사람과 신들이 꺼리는 지하세계로 직접 찾아가 아도니스를 돌려달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끝내 페르세포네는 아프로디테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고 결국 두 여신은 서로 다투며 미워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날이면 날마다 옥산각신 다투는 두 여신을 보다 못한 제우스가 중간에 개입하게 되었습니다. 제우스는 두 여신을 자신의 신전으로 불러 한 가지 제안을 하게 됩니다.
"가을과 겨울에는 아도니스를 페르세포네가 돌보고, 봄이 되거든 땅위로 올려 보내 여름까지 아프로디테와 함께 사는 것이 어떤가?"
두 여신은 만족하지는 못했지만 어쩔수 없이 제우스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하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대지에 새로운 기운이 솟는 봄이 되자 아도니스는 땅 위로 올라가 아프로디테와 함께 지내었습니다. 그리고 아프로디테는 너무나 기뻐 다른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잠시도 자신의 곁에서 아도니스를 떼어놓으려고 하지를 않았습니다.

아도니스는 사냥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걸핏하면 산이나 들로 나가 사냥을 즐겼습니다. 그럴 때면 아프로디테는 백조가 끄는 마차에서 내려 그의 뒤를 따라다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프로디테가 잠시 한눈을 팔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아도니스는 우람한 멧돼지를 사냥개와 함께 쫓고 있었습니다. 멧돼지와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아도니스는 날쌔게 창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창은 멧돼지를 단숨에 죽이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상처를 입은 멧돼지는 산 꼭대기에서부터 굴러 아도니스를 덮쳤습니다. 아도니스는 미처 피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급기야 멧돼지의 날카로운 이빨이 아도니스의 몸을 뚫고 나오고 말았습니다. 참을 수 없는 아픔에 아도니스는 비명을 질렀고 아도니스의 비명소리에 놀란 아프로디테가 재빨리 달려왔을 때는 이미 아도니스의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된 뒤였습니다. 아도니스는 점점 숨을 내쉬지 못한 채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아프로디테는 미친 듯이 몸부림치면서 아도니스를 껴안았습니다. 그러나 아도니스는 조용히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이듬해 봄이 되자 아도니스의 피가 흐른 땅에서 피처럼 새빨간 꽃이 피어났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이 분명 아도니스의 영혼이 깃든 꽃이라 생각하고 아네모네라고 이름 지었다고 합니다. 아네모네라는 말은 그리스말로 아도니스라고 합니다.

알아보기

♤과명 : 미나리아재빗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 : Anemone coronaria
♤별명 : 옹초
♤개화기 : 4∼5월
♤꽃색 : 붉은 색. 흰색. 분홍색. 보라색 등
♤꽃말 : 기대. 덧없는 사랑. 고독

꽃과 관련된 문학작품

아네모네의 마담-주요섭

줄거리

티룸 '아네모네'에 마담으로 있는 영숙이가 귀걸이를 두 귀에 끼고 카운터 뒤에 나타난 날, '아네모네' 단골 손님들은 영숙이가 움직일 때마다 한들한들 춤을 추는 그 자줏빛 귀걸이의 아름다움에 탄복하였다. 아니 그보다도 그 귀걸이가 가져온 영숙이 자신의 아름다움에 황홀하였다.

다방 '아네모네'의 마담으로 있는 영숙이는 매일 여기를 찾아와서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악'을 틀어 달라고 하는 창백한 얼굴에 우수가 서린 사각모의 학생이 기다려지게 되었다.

그녀는 남들이 예쁘다고 탄복하는 자주 빛 귀걸이를 그가 올 때 달까 말까 하고 망설일 정도였다. 그에 대한 그녀의 미묘한 관심은 그가 보이를 통해 "슈베르트 미완성 교향곡을 한 장 틀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라는 쪽지를 전해 받은 뒤부터였다. 말을 한마디도 건네 오지 않는 학생에게 어떻게 기회를 만들어 보려고 궁리한 끝에 귀걸이를 사서 달고 나서게 된 것이었다.

그 학생은 미완성 교향곡이 틀어질 때마다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가끔씩 마담 쪽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런 어느 날 그 학생은 친구 한 사람과 찾아와 거의 발작적으로 고함을 지르고 나가 버렸다. 그리고 몇 시간 뒤 그의 친구가 와서 대신 사과했다. 그 학생은 어느 교수 부인을 사랑하고 있었고, 그래서 미완성 교향곡을 들었던 것인데, 그 부인이 병으로 죽게 되자 거의 미쳐 버렸다는 것이었다. 그 학생이 가끔씩 마담 쪽을 바라본 것도 카운터 뒷벽에 걸려 있는 모나리자를 바라보기 위함 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마담은 마음 어딘가 한 구석이 허전하고 고적해 지는 것이었다.

그 뒤부터 다방 "아네모네"에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미완성 교향곡이 아닌 재즈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마담의 그 자랑스러운 귀걸이는 사라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