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임금 중에 죽어서 왕의 호칭을 받지 못한 사람이 둘 있었는데 연산군과 광해군입니다.

광해군은 선조와 후궁 김씨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아들입니다. 광해군은 서자인데다가 둘째 아들이었지만, 임진왜란 초기였던 1592년에 세자에 지명되었습니다. 광해군이 세자에 지명되었던 것은 당시 위급 한 전쟁 상황으로 말미암은 비상조치였습니다. 선조는 광해군이 서자인데다가 맏아들이 아닌 둘째아들이었기에 광해군을 세자로 세우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임진왜란이 터지고 전황이 위급한 상황으로 몰리자 신하들의 세자 책봉 압력이 심해졌고 선조는 부득이 광해군을 세자로 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자로 책봉된 광해군은 임진왜란 중에 대단히 큰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자신이 직접 전선에 나아가 의병을 조직하고 군량을 조달하며 전투를 독려했습니다. 또 광해군은 전쟁 초기에 불안에 떨던 민심을 수습하였습니다. 이러한 점은 전쟁 중에 의주로 도피하였던 선조와는 대조적이었기에 전쟁 중에 선조는 왕으로서의 위상이 추락했고, 광해군은 백성들의 신임을 얻었습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1602년 선조의 새로운 왕비가 들어왔습니다. 몇 년 후 영창대군이 태어났는데 적장자인 영창대군이 태어나자 광해군의 세자 지위는 위태로워졌습니다. 그러나 선조는 적장자인 영창대군 을 세자에 책봉하기도 전에 그만 병으로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16년간 세자 자리에 있었던 광해군은 드디어 왕으로 즉위했습니다. 왕으로 등극한 광해군은 전란의 피 해를 복구하고 민생안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였습니다. 또 토지와 호구를 조사하여 산업과 국방의 기반 을 강화하였고 불타고 파괴되어버린 궁궐을 재건하는데 힘을 썼습니다. 한편 서적 편찬과 사고 관리에 도 심혈을 기울였는데 허준의 동의보감, 허균의 홍길동전이 이때 편찬되었습니다.

광해군의 업적 중에서 가장 높이 평가되는 것은 그의 실리적인 외교였습니다. 이 무렵 동북아의 국제정세는 급변하고 있었습니다. 명나라는 오랫동안 동아시아의 강자로 군림해왔으나 점차 약화되어 가고 있었고, 후금이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명나라는 후금의 공격을 받게 되었고 다급해 진 명나라는 조선에 지원군의 파병을 요구해왔습니다. 그러나 명나라에 맞서는 후금의 세력을 함부로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광해군은 명나라에서 독촉을 해도 교묘하게 머리를 써서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서 중립적인 외교정책을 펼쳐 나라의 어려움을 극복했습니다.

선조의 신임을 받지 못했던 광해군은 왕으로 즉위해서도 신하들의 신임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왕위 계승 과정에서 계략을 부린 유영경을 유배시켜 죽이는 한편, 왕의 권위에 도전하며 끊임없이 왕권을 위협하던 동복형 임해군도 유배시켜 처형하였습니다. 또 선조의 적자인 영창대군을 살해하고 계모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시키기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행위들은 반대세력의 반발에 불을 붙였습니다.

마침내 광해군 15년(1623) 이귀, 최명길, 김자점, 김류 등의 서인들은 정변을 일으켜 광해군을 몰아내고 광해군의 이복조카인 능량군을 왕위에 오르게 하니, 이가 조선 16대 임금 ‘인조’였습니다.  광혜군이 폐 위 되고 인조가 왕위에 오른 이 사건을 ‘인조반정’이라 합니다. 광해군은 폐위된 후 강화도에 안치되었다가 다시 제주도에 이배되어 18년 동안 생을 연명하다가 1641년 67세를 끝으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인조반정으로 정권을 잡은 서인들은 명나라와 가깝게 지내며 기세를 떨쳤고, 새롭게 일어난 후금과 외교 관계를 끊음으로써 후에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불러들인 결과를 낳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