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고의 충신 정몽주가 선죽교에서 살해된 후 공양왕의 심정은 더욱 암담하기만 하였습니다. 언제 어떻게 이성계의 손에 의해 구천을 떠도는 원혼이 될 지 알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우왕과 창왕의 역사가 이 같은 사실을 더욱 실감나게 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은 가속화 되고 있었던 실정이었습니다. 불안과 공포에 쌓인 왕은 목숨이라도 건져보자는 심정으로 이방원과 조용을 불러들였습니다.
 “나는 앞으로 이 시중(이성계)과 동맹을 맺고자 하오. 경들이 나의 말을 이 시중에게 전하고 그 말을    들어 맹서를 작성해 오도록 하오. 아마 그런 선례가 있을 듯싶소.”
조용은 난처한 입장이 되었습니다. 예로부터 나라와 나라끼리 동맹하는 일은 있었지만 임금과 신하 사  이의 동맹은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도 왕은 조용으로 하여금 서로 동맹한다는 내용의    맹서를 작성케 하여 7월 12일 이성계의 집으로 행차하려 하였습니다.

왕이 막 행차하려던 참에 남은과 정희계가 왕을 폐위시킨다는 교서를 가지고 별궁으로 들어가 왕의 그 동안의 여러 가지 죄를 논죄하며 교서를 읽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공양왕은 비참히 왕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성계는 공양왕을 공양군으로 강등시켜 원주로 유배시켰습니다. 원주로 유배된 공양왕은 간성, 삼척 등을 떠돌다 2년 후인 1394년 이성계의 명에 의해 처형되었습니다.

이성계 일파는 공양왕을 내친 후에 왕씨 일가를 모조리 멸족시키려는 계획을 세우고 전국에 방문을 붙여 왕씨들을 한곳에 모아 수장시킨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방문의 내용은 왕씨들에게 섬을 하나 내줄테니 강화 해안에 모두 모이라는 것이었는데, 그렇지 않아도 불안에 떨고 있던 왕씨들은 이러한 약속을 믿고 강화도행 배를 탔다가 모두 수장되고 말았습니다. 이때 이성계 일파의 모략임을 알아차린 일부 왕씨들은 배에 오르지 않았으며, 그들은 산 속에 숨어 살면서 대개 자신들의 성씨를 전(온전할 전)씨, 옥씨, 전(밭 전)씨, 용씨 등으로 속여 목숨을 이어나간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또한 ‘태조실록'에는 왕씨의 후손들이 아버지 성을 따르지 못하고 어머니 성을 따르도록 한 기록이 있어, 이성계가 정책적으로 왕씨들을 멸하려 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려 후기는 내부적으로 권문세족과 신흥사대부 사이의 대립이 격화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밖으로부터의 압력도 가중 되었는데 그것은 왜구 및 홍건적의 침입과 원․명 교체에 따른 대외관계의 변동에서 고려 왕실은 더욱 흔들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마침내 1392년 7월, 이성계는 조준, 정도전, 남은, 이방원 등의 추대에 힘입어 왕으로 등극하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고려 왕조는 개국한지 475년 만에 공양왕을 끝으로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