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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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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의 생존 전략 - 한비의 『한비자』
웬만큼 동양 고전을 읽은 사람이면 알고 있는 이 이야기의 출처는 바로 『한비자(韓非子)』이다. 중국 역사상 가장 어지러웠던 시대, 진리와 정의가 간계(간사한 꾀)와 아부에 조롱당했던 전국(戰國)시대, 재능이 다른 재능에 의해 우롱당하여 생명을 바쳐야 했던 혼돈과 암흑의 시대였다.
한비자(? ~ 기원전233, 한비를 높여 흔히‘한비자’라고부름)는 한나라의 먼 왕족으로 태어났으나, 오묘한 통치술과 합리적인 정치 철학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말더듬이로 왕의 신임을 전혀 얻지 못한 재야 인사로 머물러 있었다. 오히려 그의 재능을 알아본 것은 한나라 왕이 아니라, 이웃 강대국으로 천하 통일의 야욕을 가진 진시황이었다. 시황제는 그가 쓴 「고분」과 「오두」 두 편을 읽고, 그 저자와 만날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할 정도였다. 진시황의 측근 이사(李斯)가 한비자와 함께 순자 밑에서 공부한 사이인지라 그의 정체를 말하자, 황제는 한나라 침략전을 개시했다. 열세였던 한나라로서는 화평 조약 사절로 반드시 한비자 같은 인물을 진나라로 보낼 것이라는 예견 때문이었는데, 미녀 하나를 얻기 위한 트로이 전쟁보다는 고색창연한(퍽 오래되어 옛풍치가 그윽한) 운치가 넘친다.
거들떠보지도 않던 한비자를 한나라 왕은 그제서야 나라 존망(존재와 멸망)의 대업을 지워 진나라로 보냈다. 그의 사명은 한나라를 살려 두고 진나라가 다른 지역을 평정토록 하는 것이었는데, 워낙 시황제가 좋아했던 학자인 데다 사리에 맞게 설득력 강한 글을 올렸기에 성공할 듯 보였다. 그러나 막상 적은 항상 가까이에 있었다. 동창생 이사가 그의 재능을 두려워한 나머지 모함하여 투옥시켜 버렸는데, 그것도 불안하여 몰래 독살해 버렸다. 얼마 뒤 시황제는 그 대석학(학문이 매우 깊은 사람)이 그리워 사면했으나 이미 죽고 없었고, 그가 죽은 뒤 3년 만에 한나라도 멸망하고 말았다.
학자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당대의 권력과 밀착하여 부귀 영화를 누릴 수도 있고 공자처럼 여기저기 일생을 기웃거리다 학문에만 전념한 예도 있다. 한비자는 겉보기에는 철저히 실패한 사상가지만, 오히려 그 실패가 역사를 빛내고 있다.
역사는 한비자를 형명 법술(刑名 法術) 사상가로 평가한다. 그 오묘한 이론을 한마디로 풀어내기는 어려우나 요새 말로 쉽게 풀이하자면, 법률에 바탕을 둔 국가 질서의 확립으로 관민일체(관청과 민간이 한마음이 됨)의 강대국을 이룩하는 현실주의적인 정치이론이라 하겠다.
그는,
영구히 강하기만 한 나라는 없고, 그렇다고 언제나 약하기만 한 나라도 없다. 그 나라의 법을 관장하는 사람이 굳고 곧으면 그 나라는 강하고, 법을 관장하는 사람이 약하여 법을 엄하게 집행하지 못하면 그 나라는 약해지는 것이다
- 『한비자』 제 18편 「유도(有度)」중에서 -
라는 말처럼 투철한 법치주의를 주장했다.
바른 법의 집행을 위하여 한비자는 왕의 역할과 신하의 역할을 분명히 구분했는데, 특히 왕이 빠지기 쉬운 오류를 여러 편에서 지적하고 있어, 인류역사에서 정치가 존재하는 한 이 명저는 가장 위대하고 감동적인 스승으로 남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혹 ‘정치 지망생만의 읽을거리구나’ 라고 여길 테지만, 실은 어려운 시대(역사상 언제 안 어려운 때가 있었던가)의 모든 인간이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중국판 『탈무드』역할도 해 준다. 더구나 요즘 매년 입시철이면 『한비자』에서 논술이 출제되는 걸 볼 수 있다. 그만큼 지혜의 보물 창고인 셈이다.
<임헌영/문학평론가, 중앙대학교교수/독서평설/지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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