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백범일지
|
<독후감> 제 3회 백범일지 독서 감상문 쓰기 대회 대학일반부 대상작
민족의 노래가 울리는 그 날까지
-<백범 일지>를 읽고-
하의고등학교 교사 정한성
잠시 북녘 하늘을 말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대통령은 비행기 트랩에서 내려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악수를 나누었다. 북한 주민들의 열렬한 환영.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의 회담. 그리고 이어진 남북이산가족의 만남.
50년 기나긴 분단의 세월 뒤에 이루어진 남북정상회담은 만인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민족의 해빙기라 할 수 있을까? 이데올로기의 견고한 빙산 때문에 서로 얼어붙었던 마음들이 조금씩 풀리고 있는 듯 싶다.
남북을 왕래하며 한 핏줄을 이어받은 동포끼리 손에 손을 잡을 날이 머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직은 너무 섣부른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 감격스러운 만남의 장면은 통일의 그 날을 위해 내딛은 힘찬 발걸음이었다고 생각된다.
그 벅찬 순간들을 보면서 백범을 떠올린 것은 무슨 이유였을까? 두 동강날 위기에 처한 민족을 구하기 위해 결연히 넘어선 38선. 그리고 김일성과의 회담. 그러나 백범의 온 몸을 던진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소련에 의해 이 민족은 분단되고 말았다. 하나의 민족을 꿈꾸었던 백범에게는 그 상황은 자신의 육신이 찢기는 듯한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백범의 꿈이 조금씩 실현되어 가고 있다. 분단 조국의 아픔이 이제 눈물 속에서 조금씩 사그러지고 있는 것이다.
<백범일지>를 펼쳐 본다. 근 20여 년만에 다시 본 셈이다. 80년대의 어둡고 어지러운 대학 생활을 하면서 읽어보았는데 다시 펼쳐 보니 다소 생소한 점도 있으나 그 때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80년대의 그 시절에 이 책을 읽을 때는, 참으로 우리 선조들이 많은 희생을 치르면서 어렵게 되찾은 나라인데 우리 후손들은 과연 이 나라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 있나 하는 안타까움이 앞섰다.
백범은 <정치이념>이란 글에서 어떠한 독재정치도 배격하면서 자신은 '자유의 나라'를 정치 이념으로 삼는다고 했다. '독재의 나라에서는 정권에 참여하는 계급 하나를 제외하고는 다른 국민은 모두 노예가 되고' 말기 때문에 독재를 거부한다는 거였다.
박정희 시대부터 군부에 의한 독재정치는 경제적인 성장이란 미명에도 불구하고 탄압과 고문 등으로 상징되는 인권 탄압을 비롯하여 언론 탄압 등을 자행하여 민주주의 발전을 퇴보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다시 군부에 의한 정권 탈환이 벌여지려는 80년대의 그런 안타까운 상황에서 진정 이 민족을 위해 갖은 고생을 하며 완전한 자주 독립을 위해 한 몸을 바친 김구의 <백범일지>는 다시금 민족과 민주주의를 생각하게 만들었던 거였다.
이 민족의 거대한 뿌리라 할 수 있는 백범의 나라 사랑 정신과 겨례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 그리고 민주주의의 신봉에 대한 그 염원이 우리의 역사에 살아 있었더라면 그런 불행의 역사를 우리는 가지지 않아도 되었을 것인데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그 뒤에 이어진 광주의 비극을 지켜보았던 나로선, 정권을 위해 겨레의 가슴에 서슴없이 총을 겨누는 그런 비민주적이고 반민족적인 행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격동의 세월. 그러나 어찌보면 우리의 역사는 비극의 암울한 색채가 짙게 드러워진 것이 아닌가 싶다.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긴 것을 비롯하여, 6. 25와 남북분단, 백범 암살, 그리고 5,16 쿠테타, 10.26사태. 12.12사태, IMF 등 100년도 채 안 되는 시기에 우리 민족은 너무도 많은 비극을 맛보아야 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는 밝히는 것은 나의 역량 밖의 일이긴 하지만, 그 원인 중의 하나는 백범과 같은 민족의 큰 스승, 큰 지도자가 많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백범은 상해 임시 정부 시절에 안창호에게 임시정부의 문 파수를 보게 해달라고 청원한다. '허명을 탐하기를 두려워하고', '생전에 한 번 우리 정부의 정청의 뜰을 쓸고 유리창을 닦게'해달라고 하느님께 원했다는 말을 하면서. 이런 정신. 명예를 탐하지 않고, 자신의 부귀를 탐하지 않으며 오직 나라를 위해 조그마한 일이라도 성심껏 하겠다는 이런 마음이 있을 때 진정으로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지금의 혼란스러운 정치 현실은 좋은 의미에서 보면 진정한 민주주의로 가기 위한 과도기로 인한 일시적인 것으로 볼 수 있겠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각 정당과 파벌만을 위한 정치가 되고 있지 않나 싶다. 교묘하게 지역주의를 부추기고 민생의 어려움은 뒷전이다. 아울러 사회 각 분야가 집단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듯 싶다. 민중들의 아픔은 안전에 없는 듯한 이런 태도에 심히 걱정이 앞선다.
나보다 민족과 사회를 위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런 작태들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들을 보면서 나라에 큰 스승이 없다는 것이 참으로 불행한 일이구나 싶었다.
<백범일지>에는 백범의 소탈하고 가식없는 마음, 그리고 나라를 위한 열정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자칫 이런 류의 글은 자신의 업적을 과장하기 쉬운데 백범은 있는 그대로의 심정을 담고 있어 더욱 호감이 간다. 잘못한 것이 있으면 그대로 인정하는 솔직한 태도, 숨기고 싶을 만한 일이라고 생각되는 것도 있는 그대로 진술하는 태도가 무척 마음을 끌게 했다.
가령 자신의 얼굴이 못생겼다고 술회하는 것이나, 자신이 영문(英文)에는 문맹이라는 사실 등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이런 점이 훨씬 친근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일화가 많이 소개되어 있어 읽는 것이 지루하지가 않았다. 파란만장한 백범의 일생을 통해 백범의 민족을 위한 열정을 진하게 느낄 수 있었고, 그의 간절한 소망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백범일지>는 백범이 53세 때인 1929년에 상권이 쓰여졌고, 14년 후에 하권이 쓰여졌다. 백범은 상권의 집필 의도를 자신의 최후를 예감하고 두 아들에게 전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으며, 하권은 자신의 "50년 분투 사정을 보고 허다한 과오을 은감으로 삼아서 복철을 밟지 말기를 원하는 노파심"에서 쓴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상권은 일본인 암살과 파괴 때문에 자신이 죽을 것이라 생각하고 자식에게 자신의 자취 즉 유언을 남긴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백범의 성장기와 일본인 살해로 인한 감옥살이 및 탈옥 후의 방랑 생활과 교육 사업 그리고 상해 임시정부로의 망명을 상권을 다루고 있다.
하권은 50년의 과정이 많은 과오를 남겼다고 말하면서 해외에 있는 동지들에게 자신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기를 바란다는 의미에서 쓴다고 했다. 백범의 독립 운동은 우리 독립 운동사에서 독보적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난 것이고, 그 과정에서의 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였다고 볼 때 이는 지나치게 겸손한 태도라고 볼 수 있겠다.
혹 백범은 우리의 독립 운동이 하나로 뭉치지 못하고 조선독립당이니, 조선혁명당이니, 한국국민당이니, 아나키스트니 하여 분열되었던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그것을 자신의 과오로 돌리고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사실 이 대목은 아쉬움을 준다. 물론 이념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의 우리 독립 운동은 서로를 시기하고 죽이는 일도 발생하는 등 안타까운 점이 많았다. 한 마음으로 뭉쳐 일제라는 공동의 적에 대항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백범은 이런 상황을 몹시 안타까워 했으며 하나로 뭉칠 것을 주장했었고 그것이 결실을 맺기도 했다.
백범은 우리 독립 운동사에 있어 독보적인 인물이다. 백범은 20살 무렵에 국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왜인을 죽인다. 그리고 포고문에 자기의 이름을 분명히 밝혀 길가에 붙인다. 그리고 피신도 하지 않고 집에 있다가 체포된다. 나라를 위한 정정당당한 일이니 비겁하게 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를 유린하고 국모마저 시해하는 일본의 천인공노할 만행에 백범은 왜인을 죽이는 것으로 그 수치를 씻으려 했던 것이다.
그런 정신은 상해 임시정부에서도 이어져 윤봉길, 이봉창 의사들과 함께 일본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의거들을 일으킨다. 한인애국단을 조직하여 이봉창으로 하여금 일본 천황 저격을 시도하게 하였고, 윤봉길 의사로 하여금 홍구 공원에서 폭탄을 던지게 하여 일본인 다수를 즉사하게 하거나 중상을 입힌 것이다. 이런 일련의 의거는 우리 민족의 자존을 세계 만방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중국인으로 하여금 우리 민족을 다시 보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일본이 우리 민족에게 행했던 수많은 만행들을 생각할 때 백범의 이런 저항은 정당성을 획득한다고 볼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우리의 젊은이들이 일본군의 총알받이가 되어 희생되었으며, 얼마나 많은 꽃다운 나이의 처녀들이 일본군의 성적 노리개가 되었던가? 일제의 강권과 탄압은 우리 민족의 정신과 육신을 갈가리 찢어 놓았고, 우리 민족을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게 했다고 볼 때, 백범의 저항은 우리 민족의 의기를 보여준 쾌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저항은 일제의 압제에 시달리고 있던 우리 민족에게 정신적인 위안과 희망을 주었다. 민족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우리가 일본에게 결코 정신적으로 굴복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만천하에 보인 것이다.
아직도 일제의 망령에 사로잡힌 듯한 일부 일본인들의 발언과 교과서 왜곡 등의 현실을 감안할 때 백범의 이런 투쟁 정신은 오늘날 되살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일제 치하의 명백한 과오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일본의 태도,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그들의 인식 등을 생각할 때 좀더 강한 자세로 일본에 맞서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이 극단적인 민족주의적 발상이라고 할 지 모르지만, 우리는 너무 쉽게 일본을 용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직도 일제에 의해 희생당한 할머니들의 눈물이 흐르고 있고, 아직도 곳곳에 일제의 뼈아픈 잔재가 남아 있는데 우리는 왠지 일본에 대해 저자세가 아닌가 싶다. 어떨 때는 도둑에게 매를 맞는 주인의 꼴이 된 것 같아 비참하고 억울한 생각마저 들 때가 많다. 일본에 대해 잘못된 것을 당당하게 요구하는 자세가 아쉽다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물론 시대가 바뀌었고 상황이 바뀌기는 했다. 총칼 대신 경제가 좌우하는 시대이기에 세계적인 경제 대국 일본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정신마저 일본에게 빼앗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 문화의 이름으로 일본이 침투하고 있다. 젊은이들 사이에 왜색 문화가 자리잡은 지 이미 오래라는 말도 나온다. 이런 시기에 우리의 민족혼을 잃어버린다면 제 2의 식민지시대가 올 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조바심일까?
백범이 갖춘 인품은 뛰어난 것이었지만 특히 신의를 매우 중시했고, 또한 매우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미 언급한 바 있지만 백범은 이봉창, 윤봉길 의사 등으로 하여금 일본 천황과 일본군들을 암살하도록 한다. 그러나 그 암살 후에는 자신의 죽음까지 생각해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 사실 인간이 자신을 죽는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면서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한다는 것은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봉창은 동경에서 일본 천황을 저격하는 일에 기꺼이 참여하고, 윤봉길 역시 일본군을 향해 폭탄을 던진다. 그들이 이런 의거를 행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불타는 애국심이 작용했겠지만 평소 백범에 대한 믿음과 존경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봉창은 백범과 마지막 밤을 둘이 함께 자면서 백범이 자신에게 돈뭉치를 줄 때 눈물이 났다면서 어떻게 나를 믿고 거액의 돈을 주었느냐고 말한다. 그리고 평생에 이처럼 신임을 받아 본 일이 없다고 하며 백범에게 '영웅의 도량'을 가졌다고 말한다. 윤봉길 역시 일본군에 잡혀가 심한 고문을 받으면서 배후를 말하라고 해도 끝내 묵비권을 행사한다. 이와 같은 행동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백범이 그들을 신의를 가지고 대했기 때문이라는 판단이 든다. 인간이 인간을 믿어줄 때 거기에는 또 다른 커다란 힘이 작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목숨까지 버릴 수 있는 그런 엄청난 힘을.
광복 후 백범은 그들의 유가족들을 만나고, 일본에서 처형된 그들의 유해를 본국으로 모셔오게 하여 성대한 봉도식을 거행하고, 효창공원에 안장한다. <윤봉길 의사 일대기>란 책을 보면 이 때 백범은 그들의 유해가 부산에 도착할 때 맨 처음 와서 대성통곡을 했고, 이 행사를 선두 지휘하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는 대목이 나온다. 이는 끝까지 신의를 저버리지 않는 백범의 인격을 알 수 있게 한다.
당시 국민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의 눈에서 나오는 눈물. 그 눈물은 더없이 인간적이란 생각이 든다. 민족을 위해 죽음을 택한 인간을 위해 흘리는 진정한 눈물은 만인의 가슴을 흥건하게 적셨으리라. 그런 인간적인 면이 백범을 더욱 존경스럽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이런 일면은 다음과 같은 일화에서도 나타난다. 백범이 탈옥 후 방랑길에 올랐을 때 함평의 이진사의 육모정이란 곳에 들린 적이 있는데 그 때가 1898년 경이다. 광복 후 백범이 삼남 지방을 순회한 것이 1946년 경이니까 약 48년의 세월이 흐른 뒤다. 그러나 백범은 그것을 기억하고 이 진사 집을 묻는다. 비록 잘못된 기억으로 나주에서 이 진사를 찾는 우를 범하긴 하지만. 훗날 이 진사의 후손이 백범을 찾아오자 백범은 함평을 나주로 잘못 기억하여 찾지 못했다며 사과한다.
일반인들은 조금 지위가 높아지면 안하무인격이 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백범은 옛 정을 소중히 여기는 인간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을 포근하게 감싸는 넓은 아량이 있다. 이러한 것은 진정으로 인간을 위하고 민족을 위하는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 덕목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러한 덕목은 그 어떤 것보다도 높고 강하다고 생각된다.
아울러 백범에게서 강하게 풍겨오는 것은 어떠한 시련에도 굴하지 않는 꿋꿋한 의지다. 어떻게 보면 백범의 인생은 투옥과 방랑, 비참하고 숨막히는 피신의 연속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백범은 어떠한 어려움에도 좌절하지 않았다. 그 어려움 속에서도 오직 나라를 걱정하고 나라를 독립시키려는 의지는 더욱 굳건해져만 갔다.
<윤봉길 의사 일대기>를 보면 윤봉길이 백범에게 바친 한시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온 세상 모두 흐려도 / 선생만은 홀로 깨끗하시다.
늙을수록 더욱 씩씩한 것 / 이것은 선생의 그 의기일 뿐
꿈에도 잊지 못할 것은 / 선생의 붉은 정신이어라."
백범의 의지와 불타는 애국심을 윤봉길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늙을수록 더욱 씩씩"했던 백범의 모습에서 애국충정의 불타는 투지를 엿볼 수 있다.
대개 사람은 나이가 들면 젊음의 기백이 사라지고 안락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일제 시대의 수많은 변절자들이 이를 증명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어야 할 많은 사람들이 일제의 주구 노릇을 했다. 한때 상해에서 독립 운동을 했던 이광수가 그렇고, 최남선, 서정주 역시 민족을 배신해 버렸다.
그러나 백범은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나라 사랑 정신으로 무장되어, 해방의 복음을 전한 윤봉길 의사조차 꿈에도 잊지 못할 존재가 된 것이다. 백범의 이런 굽힐 줄 모르는 투지와 의기가 우리 민족의 자존심과 자부심을 길러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백범의 교육에 대한 철학과 의지는 교편을 잡고 있는 나로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백범은 <내가 원하는 우리 나라>에서 우리 나라가 높은 문화의 힘을 가진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다. 문화는 자신의 행복과 남의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그 문화는 '자유를 확보하는 정치양식의 건립과 국민교육의 완비'에 있다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이런 의견은 백범의 정치 철학과 젊은 시절의 교육활동에 기인한다는 생각이 든다.
백범은 왜인을 죽인 후 감옥에 갇혀있을 때 <태서신사>, <세계지지> 등의 신학문을 열심히 공부하여 사고의 폭을 넓힌다. 그리고 그 곳 감옥을 학교로 바꾸어 버린다. <백범일지> 상권에 보면 '우리 나라에 가장 필요한 것은 저마다 배우고 사람마다 가르치는 것'임을 깨닫고, 무지한 백성을 가지고는 '결코 나라의 수치를 씻을 수도 없고 다른 나라와 겨루어나갈 부강한 힘을 얻을 수' 없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죄수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 후에도 백범은 해서 교육회 총감이 되어 학교 설립을 적극 추진하고, 양산학교를 세우는가 하면, 보강학교에서 교장이 되어 교육을 하는 등 일찍이 교육활동에 전념하였다. 이런 활동과 교육에 대한 신념이 있었기에 부강한 나라, 힘있는 나라보다 높은 문화를 가진 나라, 교육을 중요시 하는 나라를 원했다고 본다.
비록 지금의 교육계는 많은 혼란이 있지만, 교육은 어느 시대에나 중요하다. 그런데 백범이 생각하는 교육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여러 단계 높은 것이다. 백범은 공자도 우리 민족이 사는 데 오고 싶어 했다고 소개하면서 '세계 인류가 모두 우리 민족의 문화를 사모하도록'하자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교육의 힘이 반드시 이 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을 믿는다고 했다. 이 원대하고 높은 교육에 대한 믿음은 오늘의 교육계에서 다시 한 번 새겨들어야 하리라고 본다.
학력 위주의 교육, 출세 지향의 교육으로는 이런 꿈을 이루기는 어려울 것이다. 민족을 보고, 세계를 보는 안목을 기르며, 백범이 주장한 대로 인(仁)과 덕(德) 같은 높은 도덕심을 기르는 교육이 될 때 가능하다고 본다. 요즈음의 교육은 지나치게 실용적인 면으로 가는 경향이 있는데, 인간이 인간을 위하는 교육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결국 이 세상은 인간이 주체가 될 수밖에 없다고 볼 때 인간을 위하는 교육이 절실히 요청된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백범은 뛰어난 교육 사상가이자 훌륭한 실천자 였다고 볼 수 있겠다.
백범의 모친 곽낙원 여사 또한 결코 우리 민족이 잊어서는 안 될 분이다. 평생을 자식의 뒷바라지에 힘쓰고, 이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 백범을 가르쳤던 그 분 역시 이 민족의 또 다른 정신의 하나란 생각이 든다. 백범일지를 보면 여러 곳에 백범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는 모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특히 중국의 남경에서 그 분의 생신을 맞아 동지들이 축하연을 베풀려 하자, 돈을 달라고 해서 그 돈으로 단총 두 자루를 사서 독립운동에 쓰라고 내놓은 이야기는 형용키 어려운 감동을 주었다. 그런 모친의 정신이 있었기에 백범은 더욱 백범다울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든다. 적절한 비유가 될 지 모르지만 호랑이가 호랑이를 낳은 셈이 아닌가 싶다.
어떠한 어려움도 끗끗하게 이겨내고 자식을 이 민족의 지도자로 키워 낸 그 정신과 행동은 요즈음 어려움에 처한 우리들에게 시사하고 있는 바가 크다고 본다. 나라의 경제가 어려운 상황인데도 자신의 사치만을 위해 거액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쓰는 부유층의 여인네들이 있는가 하면, 국가의 지도층에 있는 분들의 사모님들도 이에 뒤질세라 옷로비 사건으로 나라를 온통 시끄럽게 만들었었다. 그들이 조금이라도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런 몰지각한 행동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고위 공직자나 부유층의 사모님들에게 백범 모친의 이런 거룩한 정신을 교육 시켰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개인의 영달이 아닌 민족의 영광을 위한 그 정신은 앞으로도 우리 민족에게 영원히 살아있는 교훈이 되리라 본다.
20년 전을 상기하며 다시 읽어 본 백범일지. 거기에는 거인의 큰 족적이 남아 있었다. 또한 거기에는 오늘을 반성하게 하고, 내일의 우리 민족이 나아가야할 길이 제시되어 있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우리 민족의 영원한 고전이랄 수 있겠다.
우리 민족의 영원한 큰스승이자 위대한 지도자인 백범에게는 참으로 다양한 면모가 있었다.
격동의 세월을 굽힐 줄 모르는 의지와 불타는 애국심으로 무장하여 일제의 압제에 저항한 독립 투사. 인간을 신의로서 대하며 눈물마저 감추지 않는 따스한 인간애. 민족의 앞날은 독재가 아닌 민주주의 길로 나서야 한다고 갈파한 탁월한 정치적 견해. 그리고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한 선각자. 같은 민족이 갈라설 수는 없다며 하나의 조국을 갈망했던 진정한 민족주의자.
이런 모습을 가진 백범이었기에 우리 역사상 가장 빛나는 큰 별이 될 수 있었으며, 오늘날에도 많은 가르침을 우리 민족에게 말없이 전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비록 그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다 지켜보지 못했지만 백범이 뿌린 씨앗은 이제 우리 민족에 의해 그 열매를 맺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문득 이육사의 <광야>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앗을 뿌 려라. ∼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정말이지 백범이 뿌린 그 거룩하고 숭고한 나라 사랑 정신과 통일의 씨앗이 우리 후손들이 마음껏 부르는 노래로 울려 퍼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원고분량 52장)
<독후감> 제3회 백범일지 독서 감상문 쓰기 대회 대학일반부 대상작
민족의 노래가 울리는 그 날까지
-<백범 일지>를 읽고-
하의고등학교 교사
정 한 성
잠시 북녘 하늘을 말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대통령은 비행기 트랩에서 내려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악수를 나누었다. 북한 주민들의 열렬한 환영.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의 회담. 그리고 이어진 남북이산가족의 만남.
50년 기나긴 분단의 세월 뒤에 이루어진 남북정상회담은 만인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민족의 해빙기라 할 수 있을까? 이데올로기의 견고한 빙산 때문에 서로 얼어붙었던 마음들이 조금씩 풀리고 있는 듯 싶다.
남북을 왕래하며 한 핏줄을 이어받은 동포끼리 손에 손을 잡을 날이 머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직은 너무 섣부른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 감격스러운 만남의 장면은 통일의 그 날을 위해 내딛은 힘찬 발걸음이었다고 생각된다.
그 벅찬 순간들을 보면서 백범을 떠올린 것은 무슨 이유였을까? 두 동강날 위기에 처한 민족을 구하기 위해 결연히 넘어선 38선. 그리고 김일성과의 회담. 그러나 백범의 온 몸을 던진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소련에 의해 이 민족은 분단되고 말았다. 하나의 민족을 꿈꾸었던 백범에게는 그 상황은 자신의 육신이 찢기는 듯한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백범의 꿈이 조금씩 실현되어 가고 있다. 분단 조국의 아픔이 이제 눈물 속에서 조금씩 사그러지고 있는 것이다.
<백범일지>를 펼쳐 본다. 근 20여 년만에 다시 본 셈이다. 80년대의 어둡고 어지러운 대학 생활을 하면서 읽어보았는데 다시 펼쳐 보니 다소 생소한 점도 있으나 그 때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80년대의 그 시절에 이 책을 읽을 때는, 참으로 우리 선조들이 많은 희생을 치르면서 어렵게 되찾은 나라인데 우리 후손들은 과연 이 나라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 있나 하는 안타까움이 앞섰다.
백범은 <정치이념>이란 글에서 어떠한 독재정치도 배격하면서 자신은 '자유의 나라'를 정치 이념으로 삼는다고 했다. '독재의 나라에서는 정권에 참여하는 계급 하나를 제외하고는 다른 국민은 모두 노예가 되고' 말기 때문에 독재를 거부한다는 거였다.
박정희 시대부터 군부에 의한 독재정치는 경제적인 성장이란 미명에도 불구하고 탄압과 고문 등으로 상징되는 인권 탄압을 비롯하여 언론 탄압 등을 자행하여 민주주의 발전을 퇴보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다시 군부에 의한 정권 탈환이 벌여지려는 80년대의 그런 안타까운 상황에서 진정 이 민족을 위해 갖은 고생을 하며 완전한 자주 독립을 위해 한 몸을 바친 김구의 <백범일지>는 다시금 민족과 민주주의를 생각하게 만들었던 거였다.
이 민족의 거대한 뿌리라 할 수 있는 백범의 나라 사랑 정신과 겨례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 그리고 민주주의의 신봉에 대한 그 염원이 우리의 역사에 살아 있었더라면 그런 불행의 역사를 우리는 가지지 않아도 되었을 것인데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그 뒤에 이어진 광주의 비극을 지켜보았던 나로선, 정권을 위해 겨레의 가슴에 서슴없이 총을 겨누는 그런 비민주적이고 반민족적인 행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격동의 세월. 그러나 어찌보면 우리의 역사는 비극의 암울한 색채가 짙게 드러워진 것이 아닌가 싶다.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긴 것을 비롯하여, 6. 25와 남북분단, 백범 암살, 그리고 5,16 쿠테타, 10.26사태. 12.12사태, IMF 등 100년도 채 안 되는 시기에 우리 민족은 너무도 많은 비극을 맛보아야 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는 밝히는 것은 나의 역량 밖의 일이긴 하지만, 그 원인 중의 하나는 백범과 같은 민족의 큰 스승, 큰 지도자가 많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백범은 상해 임시 정부 시절에 안창호에게 임시정부의 문 파수를 보게 해달라고 청원한다. '허명을 탐하기를 두려워하고', '생전에 한 번 우리 정부의 정청의 뜰을 쓸고 유리창을 닦게'해달라고 하느님께 원했다는 말을 하면서. 이런 정신. 명예를 탐하지 않고, 자신의 부귀를 탐하지 않으며 오직 나라를 위해 조그마한 일이라도 성심껏 하겠다는 이런 마음이 있을 때 진정으로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지금의 혼란스러운 정치 현실은 좋은 의미에서 보면 진정한 민주주의로 가기 위한 과도기로 인한 일시적인 것으로 볼 수 있겠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각 정당과 파벌만을 위한 정치가 되고 있지 않나 싶다. 교묘하게 지역주의를 부추기고 민생의 어려움은 뒷전이다. 아울러 사회 각 분야가 집단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듯 싶다. 민중들의 아픔은 안전에 없는 듯한 이런 태도에 심히 걱정이 앞선다.
나보다 민족과 사회를 위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런 작태들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들을 보면서 나라에 큰 스승이 없다는 것이 참으로 불행한 일이구나 싶었다.
<백범일지>에는 백범의 소탈하고 가식없는 마음, 그리고 나라를 위한 열정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자칫 이런 류의 글은 자신의 업적을 과장하기 쉬운데 백범은 있는 그대로의 심정을 담고 있어 더욱 호감이 간다. 잘못한 것이 있으면 그대로 인정하는 솔직한 태도, 숨기고 싶을 만한 일이라고 생각되는 것도 있는 그대로 진술하는 태도가 무척 마음을 끌게 했다.
가령 자신의 얼굴이 못생겼다고 술회하는 것이나, 자신이 영문(英文)에는 문맹이라는 사실 등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이런 점이 훨씬 친근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일화가 많이 소개되어 있어 읽는 것이 지루하지가 않았다. 파란만장한 백범의 일생을 통해 백범의 민족을 위한 열정을 진하게 느낄 수 있었고, 그의 간절한 소망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백범일지>는 백범이 53세 때인 1929년에 상권이 쓰여졌고, 14년 후에 하권이 쓰여졌다. 백범은 상권의 집필 의도를 자신의 최후를 예감하고 두 아들에게 전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으며, 하권은 자신의 "50년 분투 사정을 보고 허다한 과오을 은감으로 삼아서 복철을 밟지 말기를 원하는 노파심"에서 쓴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상권은 일본인 암살과 파괴 때문에 자신이 죽을 것이라 생각하고 자식에게 자신의 자취 즉 유언을 남긴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백범의 성장기와 일본인 살해로 인한 감옥살이 및 탈옥 후의 방랑 생활과 교육 사업 그리고 상해 임시정부로의 망명을 상권을 다루고 있다.
하권은 50년의 과정이 많은 과오를 남겼다고 말하면서 해외에 있는 동지들에게 자신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기를 바란다는 의미에서 쓴다고 했다. 백범의 독립 운동은 우리 독립 운동사에서 독보적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난 것이고, 그 과정에서의 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였다고 볼 때 이는 지나치게 겸손한 태도라고 볼 수 있겠다.
혹 백범은 우리의 독립 운동이 하나로 뭉치지 못하고 조선독립당이니, 조선혁명당이니, 한국국민당이니, 아나키스트니 하여 분열되었던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그것을 자신의 과오로 돌리고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사실 이 대목은 아쉬움을 준다. 물론 이념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의 우리 독립 운동은 서로를 시기하고 죽이는 일도 발생하는 등 안타까운 점이 많았다. 한 마음으로 뭉쳐 일제라는 공동의 적에 대항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백범은 이런 상황을 몹시 안타까워 했으며 하나로 뭉칠 것을 주장했었고 그것이 결실을 맺기도 했다.
백범은 우리 독립 운동사에 있어 독보적인 인물이다. 백범은 20살 무렵에 국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왜인을 죽인다. 그리고 포고문에 자기의 이름을 분명히 밝혀 길가에 붙인다. 그리고 피신도 하지 않고 집에 있다가 체포된다. 나라를 위한 정정당당한 일이니 비겁하게 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를 유린하고 국모마저 시해하는 일본의 천인공노할 만행에 백범은 왜인을 죽이는 것으로 그 수치를 씻으려 했던 것이다.
그런 정신은 상해 임시정부에서도 이어져 윤봉길, 이봉창 의사들과 함께 일본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의거들을 일으킨다. 한인애국단을 조직하여 이봉창으로 하여금 일본 천황 저격을 시도하게 하였고, 윤봉길 의사로 하여금 홍구 공원에서 폭탄을 던지게 하여 일본인 다수를 즉사하게 하거나 중상을 입힌 것이다. 이런 일련의 의거는 우리 민족의 자존을 세계 만방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중국인으로 하여금 우리 민족을 다시 보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일본이 우리 민족에게 행했던 수많은 만행들을 생각할 때 백범의 이런 저항은 정당성을 획득한다고 볼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우리의 젊은이들이 일본군의 총알받이가 되어 희생되었으며, 얼마나 많은 꽃다운 나이의 처녀들이 일본군의 성적 노리개가 되었던가? 일제의 강권과 탄압은 우리 민족의 정신과 육신을 갈가리 찢어 놓았고, 우리 민족을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게 했다고 볼 때, 백범의 저항은 우리 민족의 의기를 보여준 쾌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저항은 일제의 압제에 시달리고 있던 우리 민족에게 정신적인 위안과 희망을 주었다. 민족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우리가 일본에게 결코 정신적으로 굴복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만천하에 보인 것이다.
아직도 일제의 망령에 사로잡힌 듯한 일부 일본인들의 발언과 교과서 왜곡 등의 현실을 감안할 때 백범의 이런 투쟁 정신은 오늘날 되살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일제 치하의 명백한 과오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일본의 태도,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그들의 인식 등을 생각할 때 좀더 강한 자세로 일본에 맞서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이 극단적인 민족주의적 발상이라고 할 지 모르지만, 우리는 너무 쉽게 일본을 용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직도 일제에 의해 희생당한 할머니들의 눈물이 흐르고 있고, 아직도 곳곳에 일제의 뼈아픈 잔재가 남아 있는데 우리는 왠지 일본에 대해 저자세가 아닌가 싶다. 어떨 때는 도둑에게 매를 맞는 주인의 꼴이 된 것 같아 비참하고 억울한 생각마저 들 때가 많다. 일본에 대해 잘못된 것을 당당하게 요구하는 자세가 아쉽다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물론 시대가 바뀌었고 상황이 바뀌기는 했다. 총칼 대신 경제가 좌우하는 시대이기에 세계적인 경제 대국 일본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정신마저 일본에게 빼앗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 문화의 이름으로 일본이 침투하고 있다. 젊은이들 사이에 왜색 문화가 자리잡은 지 이미 오래라는 말도 나온다. 이런 시기에 우리의 민족혼을 잃어버린다면 제 2의 식민지시대가 올 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조바심일까?
백범이 갖춘 인품은 뛰어난 것이었지만 특히 신의를 매우 중시했고, 또한 매우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미 언급한 바 있지만 백범은 이봉창, 윤봉길 의사 등으로 하여금 일본 천황과 일본군들을 암살하도록 한다. 그러나 그 암살 후에는 자신의 죽음까지 생각해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 사실 인간이 자신을 죽는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면서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한다는 것은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봉창은 동경에서 일본 천황을 저격하는 일에 기꺼이 참여하고, 윤봉길 역시 일본군을 향해 폭탄을 던진다. 그들이 이런 의거를 행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불타는 애국심이 작용했겠지만 평소 백범에 대한 믿음과 존경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봉창은 백범과 마지막 밤을 둘이 함께 자면서 백범이 자신에게 돈뭉치를 줄 때 눈물이 났다면서 어떻게 나를 믿고 거액의 돈을 주었느냐고 말한다. 그리고 평생에 이처럼 신임을 받아 본 일이 없다고 하며 백범에게 '영웅의 도량'을 가졌다고 말한다. 윤봉길 역시 일본군에 잡혀가 심한 고문을 받으면서 배후를 말하라고 해도 끝내 묵비권을 행사한다. 이와 같은 행동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백범이 그들을 신의를 가지고 대했기 때문이라는 판단이 든다. 인간이 인간을 믿어줄 때 거기에는 또 다른 커다란 힘이 작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목숨까지 버릴 수 있는 그런 엄청난 힘을.
광복 후 백범은 그들의 유가족들을 만나고, 일본에서 처형된 그들의 유해를 본국으로 모셔오게 하여 성대한 봉도식을 거행하고, 효창공원에 안장한다. <윤봉길 의사 일대기>란 책을 보면 이 때 백범은 그들의 유해가 부산에 도착할 때 맨 처음 와서 대성통곡을 했고, 이 행사를 선두 지휘하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는 대목이 나온다. 이는 끝까지 신의를 저버리지 않는 백범의 인격을 알 수 있게 한다.
당시 국민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의 눈에서 나오는 눈물. 그 눈물은 더없이 인간적이란 생각이 든다. 민족을 위해 죽음을 택한 인간을 위해 흘리는 진정한 눈물은 만인의 가슴을 흥건하게 적셨으리라. 그런 인간적인 면이 백범을 더욱 존경스럽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이런 일면은 다음과 같은 일화에서도 나타난다. 백범이 탈옥 후 방랑길에 올랐을 때 함평의 이진사의 육모정이란 곳에 들린 적이 있는데 그 때가 1898년 경이다. 광복 후 백범이 삼남 지방을 순회한 것이 1946년 경이니까 약 48년의 세월이 흐른 뒤다. 그러나 백범은 그것을 기억하고 이 진사 집을 묻는다. 비록 잘못된 기억으로 나주에서 이 진사를 찾는 우를 범하긴 하지만. 훗날 이 진사의 후손이 백범을 찾아오자 백범은 함평을 나주로 잘못 기억하여 찾지 못했다며 사과한다.
일반인들은 조금 지위가 높아지면 안하무인격이 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백범은 옛 정을 소중히 여기는 인간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을 포근하게 감싸는 넓은 아량이 있다. 이러한 것은 진정으로 인간을 위하고 민족을 위하는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 덕목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러한 덕목은 그 어떤 것보다도 높고 강하다고 생각된다.
아울러 백범에게서 강하게 풍겨오는 것은 어떠한 시련에도 굴하지 않는 꿋꿋한 의지다. 어떻게 보면 백범의 인생은 투옥과 방랑, 비참하고 숨막히는 피신의 연속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백범은 어떠한 어려움에도 좌절하지 않았다. 그 어려움 속에서도 오직 나라를 걱정하고 나라를 독립시키려는 의지는 더욱 굳건해져만 갔다.
<윤봉길 의사 일대기>를 보면 윤봉길이 백범에게 바친 한시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온 세상 모두 흐려도 / 선생만은 홀로 깨끗하시다.
늙을수록 더욱 씩씩한 것 / 이것은 선생의 그 의기일 뿐
꿈에도 잊지 못할 것은 / 선생의 붉은 정신이어라."
백범의 의지와 불타는 애국심을 윤봉길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늙을수록 더욱 씩씩"했던 백범의 모습에서 애국충정의 불타는 투지를 엿볼 수 있다.
대개 사람은 나이가 들면 젊음의 기백이 사라지고 안락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일제 시대의 수많은 변절자들이 이를 증명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어야 할 많은 사람들이 일제의 주구 노릇을 했다. 한때 상해에서 독립 운동을 했던 이광수가 그렇고, 최남선, 서정주 역시 민족을 배신해 버렸다.
그러나 백범은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나라 사랑 정신으로 무장되어, 해방의 복음을 전한 윤봉길 의사조차 꿈에도 잊지 못할 존재가 된 것이다. 백범의 이런 굽힐 줄 모르는 투지와 의기가 우리 민족의 자존심과 자부심을 길러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백범의 교육에 대한 철학과 의지는 교편을 잡고 있는 나로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백범은 <내가 원하는 우리 나라>에서 우리 나라가 높은 문화의 힘을 가진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다. 문화는 자신의 행복과 남의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그 문화는 '자유를 확보하는 정치양식의 건립과 국민교육의 완비'에 있다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이런 의견은 백범의 정치 철학과 젊은 시절의 교육활동에 기인한다는 생각이 든다.
백범은 왜인을 죽인 후 감옥에 갇혀있을 때 <태서신사>, <세계지지> 등의 신학문을 열심히 공부하여 사고의 폭을 넓힌다. 그리고 그 곳 감옥을 학교로 바꾸어 버린다. <백범일지> 상권에 보면 '우리 나라에 가장 필요한 것은 저마다 배우고 사람마다 가르치는 것'임을 깨닫고, 무지한 백성을 가지고는 '결코 나라의 수치를 씻을 수도 없고 다른 나라와 겨루어나갈 부강한 힘을 얻을 수' 없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죄수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 후에도 백범은 해서 교육회 총감이 되어 학교 설립을 적극 추진하고, 양산학교를 세우는가 하면, 보강학교에서 교장이 되어 교육을 하는 등 일찍이 교육활동에 전념하였다. 이런 활동과 교육에 대한 신념이 있었기에 부강한 나라, 힘있는 나라보다 높은 문화를 가진 나라, 교육을 중요시 하는 나라를 원했다고 본다.
비록 지금의 교육계는 많은 혼란이 있지만, 교육은 어느 시대에나 중요하다. 그런데 백범이 생각하는 교육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여러 단계 높은 것이다. 백범은 공자도 우리 민족이 사는 데 오고 싶어 했다고 소개하면서 '세계 인류가 모두 우리 민족의 문화를 사모하도록'하자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교육의 힘이 반드시 이 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을 믿는다고 했다. 이 원대하고 높은 교육에 대한 믿음은 오늘의 교육계에서 다시 한 번 새겨들어야 하리라고 본다.
학력 위주의 교육, 출세 지향의 교육으로는 이런 꿈을 이루기는 어려울 것이다. 민족을 보고, 세계를 보는 안목을 기르며, 백범이 주장한 대로 인(仁)과 덕(德) 같은 높은 도덕심을 기르는 교육이 될 때 가능하다고 본다. 요즈음의 교육은 지나치게 실용적인 면으로 가는 경향이 있는데, 인간이 인간을 위하는 교육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결국 이 세상은 인간이 주체가 될 수밖에 없다고 볼 때 인간을 위하는 교육이 절실히 요청된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백범은 뛰어난 교육 사상가이자 훌륭한 실천자 였다고 볼 수 있겠다.
백범의 모친 곽낙원 여사 또한 결코 우리 민족이 잊어서는 안 될 분이다. 평생을 자식의 뒷바라지에 힘쓰고, 이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 백범을 가르쳤던 그 분 역시 이 민족의 또 다른 정신의 하나란 생각이 든다. 백범일지를 보면 여러 곳에 백범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는 모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특히 중국의 남경에서 그 분의 생신을 맞아 동지들이 축하연을 베풀려 하자, 돈을 달라고 해서 그 돈으로 단총 두 자루를 사서 독립운동에 쓰라고 내놓은 이야기는 형용키 어려운 감동을 주었다. 그런 모친의 정신이 있었기에 백범은 더욱 백범다울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든다. 적절한 비유가 될 지 모르지만 호랑이가 호랑이를 낳은 셈이 아닌가 싶다.
어떠한 어려움도 끗끗하게 이겨내고 자식을 이 민족의 지도자로 키워 낸 그 정신과 행동은 요즈음 어려움에 처한 우리들에게 시사하고 있는 바가 크다고 본다. 나라의 경제가 어려운 상황인데도 자신의 사치만을 위해 거액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쓰는 부유층의 여인네들이 있는가 하면, 국가의 지도층에 있는 분들의 사모님들도 이에 뒤질세라 옷로비 사건으로 나라를 온통 시끄럽게 만들었었다. 그들이 조금이라도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런 몰지각한 행동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고위 공직자나 부유층의 사모님들에게 백범 모친의 이런 거룩한 정신을 교육 시켰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개인의 영달이 아닌 민족의 영광을 위한 그 정신은 앞으로도 우리 민족에게 영원히 살아있는 교훈이 되리라 본다.
20년 전을 상기하며 다시 읽어 본 백범일지. 거기에는 거인의 큰 족적이 남아 있었다. 또한 거기에는 오늘을 반성하게 하고, 내일의 우리 민족이 나아가야할 길이 제시되어 있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우리 민족의 영원한 고전이랄 수 있겠다.
우리 민족의 영원한 큰스승이자 위대한 지도자인 백범에게는 참으로 다양한 면모가 있었다.
격동의 세월을 굽힐 줄 모르는 의지와 불타는 애국심으로 무장하여 일제의 압제에 저항한 독립 투사. 인간을 신의로서 대하며 눈물마저 감추지 않는 따스한 인간애. 민족의 앞날은 독재가 아닌 민주주의 길로 나서야 한다고 갈파한 탁월한 정치적 견해. 그리고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한 선각자. 같은 민족이 갈라설 수는 없다며 하나의 조국을 갈망했던 진정한 민족주의자.
이런 모습을 가진 백범이었기에 우리 역사상 가장 빛나는 큰 별이 될 수 있었으며, 오늘날에도 많은 가르침을 우리 민족에게 말없이 전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비록 그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다 지켜보지 못했지만 백범이 뿌린 씨앗은 이제 우리 민족에 의해 그 열매를 맺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문득 이육사의 <광야>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앗을 뿌 려라. ∼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정말이지 백범이 뿌린 그 거룩하고 숭고한 나라 사랑 정신과 통일의 씨앗이 우리 후손들이 마음껏 부르는 노래로 울려 퍼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
|
|
|
HOME > 
